[르포] '천혜의 섬' 코타키나발루에 SKC가 9,000억 들여 동박 공장 세운 까닭은
전기요금 절감 등 각종 정책 지원 혜택
"연구 개발 매진해 원가경쟁력 강화할 것"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동쪽에 자리한 사바(Sabah)주의 코타키나발루. 에메랄드빛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관광도시의 항구와 인접한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Kota Kinabalu Industrial Park)에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의 동박 생산 공장이 들어서 있다. 1일(현지시간) 찾은 연면적 16만2,700㎡ 크기의 공장에서는 지름 3m의 거대한 원통형 드럼(제박기)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선을 녹여 만든 황산구리 용액은 드럼을 타고 돌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얇은 막이 된다. 이 막이 이차전지의 핵심 부품 '동박1'이다.
구리로 만들어진 얇은 동박이 뽑아져 나오면 두루마리 휴지처럼 원형 롤에 감긴다. SK넥실리스 관계자는 "구리는 잘 끊어지기 때문에 얇고 길게 뽑아내는 게 기술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2019년 세계 최초로 4마이크로미터(㎛·머리카락의 30분의 1 두께) 전지박(동박)을 개발하는 한편 세계 최장인 77km(서울~충남 천안 거리) 길이의 동박 생산에 성공했다.
저렴한 재생에너지·세제 혜택… 원가경쟁력 확보
이 공장은 지난달 23일 첫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내년 1분기 2공장까지 다 지어지면 이곳에선 연간 5만7,000톤(t)의 동박을 만든다. 전북 정읍공장의 생산량(5만2,000t)을 넘어서는 규모로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전기차 시장에 수출하는 게 목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92116320005417)
한국에선 최고의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곳은 공장을 세우기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어로 '바람 아래의 땅'이라는 뜻으로 지리상 태풍이 생성되는 필리핀 지역보다 아래에 있다. 태풍은 적도 부근에서 만들어져 북상하며 사라지기 때문에 코타키나발루에는 1년 내내 자연재해가 거의 없어 침수 등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SK넥실리스가 공장 건설에 9,000억 원을 투자한 이유는 압도적 원가 경쟁력과 친환경 공정이 가능해서다. 말레이시아 중앙정부와 사바 주 정부는 공장 유치를 위해 전폭 지원했다. 특히 이 공장을 돌리려면 한 달에 사바주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이나 되는 약 80메가와트(MW)가 필요한데 주 정부는 가장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했다. 또 일정 기간 법인세를 100% 깎아줬다. 풍진제(Phoong Jin Zhe) 산업부 장관은 2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최첨단 기술을 가진 한국 기업이 오면 지역의 산업을 성장시키는 마중물이 되리라 기대했다"며 "인허가 등 행정 절차도 7개월 만에 끝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에선 태양광과 수력을 바탕으로 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풍부하다. 2050년까지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 이니셔티브' 가입 기업인 SKC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신동환 말레이시아법인장은 "말레이시아는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재생에너지가 70~80% 저렴"하다며 "주 정부와 장기계약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REC를 미리 확보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채우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강조했다.
고품질 제품 라인업으로 고객 수요 대응
최근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국내 동박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게다가 전기차 시장도 위축되면서 공급 과잉 걱정도 나온다. SK넥실리스는 중국 업체들이 주력하는 폭이 좁은 동박 대신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광폭(폭이 넓은) 동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 법인장은 "정읍 공장을 증설하며 쌓은 노하우를 앞세워 말레이시아 공장에 최적의 공정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였다"며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타키나발루=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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