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생일상 받은 ‘기적의 생환’ 광부…“안전한 일터 만들어 주길”

김현수 기자 2023. 11. 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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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광산 매몰사고로 커피믹스와 지하수를 마시며 221시간을 버텨낸 광부 박정하씨(63·오른쪽)가 이철우 경북도지사(왼쪽)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제 첫 번째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북 봉화 광산 매몰사고로 커피믹스와 지하수를 마시며 221시간을 버텨낸 광부 박정하씨(63)가 지난 4일 경북도청을 찾았다. 이날은 박씨가 기적적으로 구조돼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10월4일을 자신의 또 다른 생일로 여기고 있다.

박씨의 이날 방문은 이철우 경북도지사 초청으로 이뤄졌다. 생환 1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로 박씨 가족을 비롯해 사고 당시 갱도에 고립됐던 광부 7명 중 일부도 함께했다.

매몰사고는 지난해 10월26일 봉화군 소천면 광산 한 수직갱도 하부 46m 지점에서 토사 900t가량이 쏟아지며 발생했다. 당시 갱도에는 광부 7명이 있었다. 이 중 2명은 사고 발생 후 2시간쯤 지난 오후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고 3명은 오후 11시쯤 업체 측이 구조했다. 박씨 등 2명은 지하 190m 지점에 고립돼 있었다가 221시간이 지나서야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조 당시 ‘기적의 생환’이라 불리며 이태원 참사의 슬픔을 위로했던 박씨. 1년이 지났지만 그는 사고 트라우마는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가슴이 뛰는 등 불안 증세는 여전하다.

경북 봉화 광산매몰 사고현장에서 지난해 10월4일 생환한 박정하씨 등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소방청 제공

그는 “체력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아직도 갱도 안에 갇혀 있는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거주하는 박씨는 1~2주마다 한 차례씩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에 다니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박씨는 남은 일생을 광산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살기로 했다. 자신을 구해준 동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병원에서 사고 상황을 계속 떠올리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자제하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언론 앞에 서는 이유다.

그는 지난해 11월 안동병원에서 퇴원할 당시 기자회견에도 “동료들이 일하는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씨의 간절함은 정부 정책에도 반영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광산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갱도 안 장거리 광역통신장비 보급, 갱도 밖 재해예방 시설·장비 보급, 광산 자체 구호대 표준 매뉴얼 보급 등이 포함됐다. 광산 안전시설 지원 예산도 지난해보다 72% 늘어난 110억원이 책정됐다.

특히 5인 이상 갱내광산은 ‘생존박스(철제)’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매몰되거나 불이 나면 작업자가 긴급히 대피할 공간으로 박씨가 낸 아이디어다. 산업부는 지난달 강원 삼척 한 석회석 광산에 처음으로 생존박스를 설치한 데 이어 2027년까지 83개 광산에 생존박스를 보급할 방침이다.

박씨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모든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공직자분들이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 광산매몰사고 생환 광부 박정하씨(63)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폐광근로자협의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현수 기자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국가와 지방정부는 역할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또 다른 기적을 바라기보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재난 예방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지난달 31일 봉화 광산 매몰사고를 낸 광산업체 대표 A씨(59) 등 원·하청 관계자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도 지난 5월 이들을 광산안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구노동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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