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현장] "즐거운 축구만으론 안 돼" 주변 만류에도…확고한 철학 끝 트로피 안은 김기동 감독

박대성 기자 2023. 11. 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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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김기동이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 이후 헹가레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포항이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포항, 박대성 기자] "그런 철학만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어떻게든 우승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지 않겠냐."

김기동 감독이 포항 스틸러스에 트로피를 안겼다. 포항 스틸러스 지휘봉을 잡은 이후 곧은 철학으로 팀을 만들었고 컵 대회 정상을 밟았다.

포항은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를 만났다. 리그에서 라이벌 울산 현대가 조기 우승을 차지해 준우승 경쟁을 하고 있지만, FA컵 파이널은 또 다른 이야기. 김기동 감독 입장에선 커리어 첫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결승전엔 꽤 많은 이야기가 얽혔다. 포항 창단 50주년을 앞두고 10년 만에 FA컵 트로피를 들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2013년 FA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기면서 FA컵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당시 K리그 최초 더블(2관왕)을 달성한 이후 지독히도 우승과 연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만났던 상대도 4일에 마주한 전북이었다.

김기동 감독도 이번만은 꼭 우승컵을 들고 싶었다. 결승전을 앞둔 인터뷰에서 "올해가 창립 50주년이다. 우승컵을 들고픈 의지를 보였는데 리그는 울산이 가져갔다. 우리의 노력 끝에 FA컵 결승까지 왔다. FA컵 우승컵을 든지도 10년이 지났다. 홈에서 결승전이다. 홈 팬들 앞에서 뛸 준비를 끝냈다. 올시즌 전북에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FA컵 결승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진 모르겠다.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기에 자신은 있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어떤 시선에선 객관적 전력상 근소하게 열세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 팀으로 뭉친 팀과 스틸야드 홈 분위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포항은 초반부터 전북을 밀어 붙였다. 오른쪽 측면에서 김인성 스피드를 살려 전북을 흔들었다.

▲ 포항과 전북이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다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 포항과 전북이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다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초장에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출발은 생각처럼 되진 않았다. 전북은 포항 공격을 막아낸 이후 한교원을 중심으로 위협적이었다. 전반 13분엔 백승호의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한 차례 더 포항 골문을 조준했다. 결국 전반 16분 송민규에게 골망을 허락하면서 리드를 허용했다.

잠시 스틸야드 분위기가 멈칫했지만 전반 45분 안에 흐름을 바꿨다. 포기하지 않던 포항이 동점골을 뽑아냈다. 왼쪽 측면에서 공격 템포를 올린 이후 고영준이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찔러 넣었다. 전북 수비 숲을 통과한 볼이 한찬희 발에 걸렸고 지체 없는 슈팅으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후반전엔 더 불타올랐다. 이번에도 출발은 전북 쪽이었다. 정우재가 포항 박스 안에서 볼을 잡았고 신광훈의 태클이 있었다. 비디오판독시스템(VAR) 판정이 이어졌고 페널티 킥이 선언됐다. 키커는 구스타보였고 포항 골대 왼쪽으로 밀어 넣어 환호했다.

김기동 감독은 실점 이후 분위기를 살핀 뒤 승부수를 꺼냈다. 심상민, 홍윤상을 투입해 일찍이 변화를 줬다. 포항은 전북 측면을 공략했고,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기회가 생기면 슈팅을 시도했다. 슈팅 시도를 늘려 전북을 압박하고, 세컨볼 이후 득점하는 패턴이 가능했다. 흐름을 만들던 후반 30분 제카의 묵직한 한 방이 터졌고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 포항 제카가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 후반전 동점골을 뽑아냈다 ⓒ대한축구협회
▲ 포항 김종우가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역전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스틸야드 속 포항 홈 팬들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동점골이 들어간 시점, 전북이 조금씩 흔들렸다. 동점골 뒤 포항의 공격은 더 매서워졌고 전북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방에서 피지컬로 공중볼 싸움 등을 할 수 있는 구스타보도 교체로 빠졌다.

포항은 넘어온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김종우의 낮고 빠른 슈팅 한 방이 전북 골망을 뒤흔들며 스코어를 뒤집었다. 이후 추가시간엔 홍윤상이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골망을 찢을 듯한 슈팅으로 전북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FA컵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코치부터 감독까지 한 지도자다. 2019년 포항 지휘봉을 잡은 이후 조직적인 전방 압박에 공격적인 전술 색깔을 팀에 입혔다. 광주FC 이정효 감독이 돌풍을 일으키기 전, 현대 축구를 발 빠르게 팀에 이식한 몇 안되는 감독이었다.

리그 우승 경쟁 팀과 달리 빠듯한 현실에도 상위권에 머물며 고춧가루를 뿌렸다. 여름에 핵심 선수들이 빠져나가도 뚝심 있게 팀 중심을 잡았다. 2021년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넘어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저력을 보였다.

▲ 2021년 포항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을 밟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2021년 포항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을 밟았지만 아쉬운 준우승이었다. 팀을 지휘하는 김기동 감독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매력적인 팀을 만들었지만 트로피를 따진 못했다. 김기동 감독은 "커리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들과 팬들을 위해 좋은 축구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어떻게 선수들이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 주변에선 "그런 철학만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우승을 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김기동 감독도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욕심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기에 '즐기는 축구를 하다보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란 신념을 가졌다.

김기동 감독은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우승할 것 같으니까 무조건 날 믿어라"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선수들은 김 감독의 곧은 신념에 100%를 다해 뛰었다. 김기동 감독도 그런 선수들을 믿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내 선수들을 믿었고 날 믿었다. 그래서 오히려 덤덤했다"며 웃었다.

▲ 김기동 감독이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 김기동 감독 "이제야 '킹'종우 된 것 같습니다", 김종우가 FA컵 결승전 MVP를 수상했다 ⓒ대한축구협회

환상적인 골로 결승전 MVP를 수상한 김종우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김종우는 "원래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서 뛰고 있지만 김기동 감독님께서 믿음을 주셨다. 수비를 돕고 많이 뛰는 걸 감독님께서 원하신다. 감독님의 믿음 아래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종우 인터뷰 이후 김기동 감독 반응에서 현재 포항 팀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김 감독은 김종우 말을 듣더니 "6번을 달고 뛴 선수 중 참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선수"라며 농담을 던지면서 "마지막 경기에선 무언가 할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골을 넣어 킹이 되어라고 했는데 골을 넣었다. 이제야 킹이 된 것 같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기동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확고한 팀 철학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포항 스틸러스 최인석 대표이사를 포함한 프런트들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김 감독 철학이 구현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김기동 감독이 가고자 할 길에 필요한 걸 최대한 지원하되 그 이상은 관여하지 않았다.

우승엔 행운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포항이 10년 만에 FA컵 우승컵을 든 건 우연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은 김기동 감독을 중심으로 모두가 '원 팀'이 된 결과였다.

▲ 포항 스틸러스는 필드부터 내부까지 모두 '원 팀'이 돼 FA컵 정상을 밟았다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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