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자극한 美 함정의 제주 기항…복잡한 동맹 셈법 [취재파일]

미군과 중국군의 항공기와 함정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벌이는 마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주로 중국군의 함정, 항공기가 미군의 함정, 항공기에 근접해 위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 사례는 잘 안 알려졌는데 중국 국방부가 최근 미군 함정이 중국군 함정들 앞에서 위험하게 기동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같은 미군 함정은 이어 중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타이완해협 가로지르기까지 감행함으로써 중국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중국 주변 바다를 휘젓고 다닌 주인공은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랄프 존슨함입니다. 랄프 존슨함이 중국을 상대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닻을 내린 곳은 제주 해군 기지입니다. 미군은 랄프 존슨함 승조원들이 제주에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색다른 음식을 즐겼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제주 해군 기지를 얄미운 존재이자, 때에 따라 시비 또는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중심축입니다. 미국의 안보적 기여가 커지면 우리도 미국에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미 해군 함정들의 제주 해군 기지 기항은 미국의 안보 기여에 따르는 대가 중 하나입니다. 제주가 미군의 대중국 전진기지 역할을 함으로써 미중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공짜 동맹은 없습니다.

랄프 존슨에 발끈한 중국

중국 국방부는 미 해군 랄프 존슨함의 위협적 기동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달 26일 중국 국방부는 언론 브리핑실에 대형 화면을 설치했습니다. 8월 19일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랄프 존슨함이 중국 해군의 구이린(桂林)함, 후앙샨(黃山)함 주변을 기동하는 영상이 틀어졌습니다. 랄프 존슨함이 구이린함 앞으로 급변침해 가속하며 지나치는 장면, 후양산함과 구이린함 사이를 꿰뚫는 장면이 생생하게 공개됐습니다.

중국 국방부 우첸 대변인은 미국을 진정한 도발자, 말썽꾼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도발과 말썽은 중국 문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도발과 괴롭힘으로 중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을 본 우리 해군 장교들도 "랄프 존슨함이 위협적으로 기동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영관급 장교는 "사이가 안 좋은 나라의 함정이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움직여도 공격 의도를 느낀다", "원래 방향에서 각도를 꺾어 접근하면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영관급 장교는 "중국 함정이 미국 함정을 위협할 때 쓰는 전형적 수법을 랄프 존슨함이 그대로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촌평했습니다.

9월 초 랄프 존슨함은 캐나다 해군의 호위함 오타와함과 함께 타이완해협을 가로질렀습니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라고 부르는 작전의 일환으로, 중국은 도발로 받아들입니다. 중국은 랄프 존슨함을 괘씸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미 해군 랄프 존슨함의 위협 기동 영상

 

랄프 존슨의 제주 기항

제주 해군 기지에 기항한 미 해군 랄프 존슨함

8월 남중국해, 9월 타이완해협에 이은 랄프 존슨함의 행선지는 제주도였습니다. 추석과 국군의날이 이어지는 엿새 황금연휴 기간 제주 해군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랄프 존슨함 승조원들은 미군 매체와 인터뷰에서 "거의 두 달간 항해한 후라 제주 여행에 몹시 들떠있다", "해산물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한 제주도에 기항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지난달 6일 제주를 떠났습니다.

동맹국 함정의 기항은 마땅히 환영해야 합니다. 다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랄프 존슨함의 기항은 미중의 고래 싸움에 제주 기지가 끼어드는 꼴이라 우리로서는 불편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미 해군 함정들의 제주 해군 기지 기항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1~2년에 한 척 올까 말까 하더니 지난달에는 이지스 구축함 존 핀함과 랄프 존슨함이, 지난 3월에는 라파엘 페랄타함이 제주에 들렀습니다. 미중 분쟁 시 주한미군 파견이 한미 동맹의 난제인데 미 해군 함정의 제주 기지 기항도 동맹의 새로운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은 대북 핵우산을 강화함으로써 동맹의 기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지난 3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미의 핵 협력이 미일 동맹을 넘어 나토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어떤 동맹이든 일방적 관계는 없습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많이 받고 적게 주는 것이 최선이고, 적어도 주고받기의 균형은 놓칠 수 없어 동맹의 셈법은 복잡합니다. 한미 동맹을 축으로 북한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중국, 러시아를 관리해야 하는 우리 처지의 셈법은 더욱 복잡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