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틀어막은 헬스케어 창업 생태계 [긱스]

2023. 11. 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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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에겐 생소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은 의사에겐 너무나 익숙한 도구입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창업가에겐 거대한 장벽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20여년 전 혁신을 불러왔지만, 어느덧 새로운 사업을 막는 기성 시스템으로 자리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다수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경험한 조영훈 에이슬립 이사가, 미국 시장의 사례를 통해 국내 EMR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봅니다. 

병원에 방문하면 의료진들은 바쁘게 진료 기록을 작성한다. 이런 시스템을 전자의무기록(EMR)이라고 불린다. 이를 통해 병원 내에서는 처방, 검사 기록 등을 공유하고 다음번 다시 내원하였을 때 진료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필자가 수련 과정을 거칠 때는 이미 이런 전자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을 때다. 이전 세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이 차트와 엑스레이 사진을 찾기 위해 병원 여기저기 기록실을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한다. 20여년 전에 이루어진 EMR의 도입은 가히 병원 및 의료 서비스 시스템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의 EMR은 세나클소프트 등의 회사의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메디블록의 블록체인 시스템 도입 등 여러 혁신이 도입되고, 여러 EMR 회사들은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도 보인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EMR 시스템 및 제품들은 매우 선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EMR은 병원 내에서의 다양한 건강 기록이 전자화 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결국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미 존재하는 의료 시스템과의 융화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통합 기능과 오픈 이노베이션이, 한국 제품들엔 빠져 있다.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나가야 할 중요한 한 축으로써 한국의 EMR 시스템들은 너무나 갈길이 멀어 보인다.

 폐쇄적인 한국 EMR 시장…美와 반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EMR과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에픽시스템즈나 써너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모두 샌드박스(보호 영역)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자신들의 EMR 시스템을 쓰는 병원과 다양한 서비스를 테스트할 수 있다. 조건에 만족할 경우 EMR 내의 앱마켓에 입점할 수 있다. 또한 여러 회사가 각자의 시스템에 연동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 문서들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누구나 쉽게 통합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EMR 시스템은 매우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의료는 다수의 효용을 추구해야 함에도 그렇다. 한국의 EMR과 가장 잘 통합된 형태는 병원 예약 앱일 텐데, 예컨대 소아과 진료 예약 '필수템'이라 할 수 있는 똑닥은 유비케어의 '의사랑'을 제외하면 다른 예약 시스템과 연동이 쉽지 않다. 결국 병원의 정보가 디지털 헬스케어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경계 없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통합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유비케어는 똑닥의 주요 투자자이기도 하다.

물론 EMR 회사들도 할 말은 있다. 첫째, 복잡한 의료 시스템이나 심사평가원의 심사 정책 변화를 업데이트하기에도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의료 정보의 권한에 대한 이슈도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EMR 회사에서는 핵심 기능 외에도 관련한 모든 것들을 자신들의 통제하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통합 및 오픈 이노베이션이 진행된다면 각 회사에도 EMR 시스템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사업화가 가능하기에, 시스템 자체를 더욱 매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통합과 오픈 이노베이션이 시스템 내에 도입이 된다면 의료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크게는 병원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며,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이 이루어질 것이다. 통합이 이루어지면 다양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들과의 연계가 가능해진다. 채널톡, 세일즈포스, 카카오톡과 같은 다양한 고객 관리형 소프트웨어가 의무 기록 시스템 단위, 혹은 병원 단위로 편리하게 연동 및 관리가 가능하다면 의료기관은 단순문의 등으로 인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환자들은 병원 이용에서 더욱 나은 경험을 가져갈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미 비의료 분야에서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재무 관리, 환자 피드백 시스템, 정보 관리 대시보드 등과 접목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병·의원 의료기관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비용 절감이 이루어질 것이며, 인건비 절감을 통해 전체 의료 지출의 감소로 이루어질 것이다.

 원격 진료부터 당뇨 관리까지, EMR이 '핵심'

챗 GPT나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서비스 등 생성 AI 서비스와의 접목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료에 AI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답변을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환각 효과 및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의 검토가 이루어지는 EMR에서 생성 AI는 의료진의 업무 효율 향상을 불러일으키고, AI의 우려를 줄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을 포함한 캐나다, 영국 등의 인허가 기관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AI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인간-AI 원팀(Human-AI Team)' 개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생성 AI 도입을 통해 보험 청구와 같은 서류 작업에서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증가시켰다는 보고가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은 합리적인 수가로 1명의 의사가 많은 환자를 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진료 현장에서 효율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EMR과 의료 영상 저장 전송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시스템 외 다른 창을 띄울 여유가 없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의 다양한 솔루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웹이든 다른 프로그램 화면이든 띄워야 가능한 구조가 된다. EMR과의 통합 없이는 적어도 그렇다.

미 전자의무기록(EMR) 업체 써너의 앱마켓 화면.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연동된 상태다. /써너 서비스 페이지 캡처

앞서 소개한 똑닥과 유비케어 사례처럼 전략적으로 특정 EMR과의 협업을 통해 시스템 내에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포함한 의료 기술은 모두에게 이롭다면 사용을 번거롭게 하는 장벽은 최대한 없애야 한다.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이로운 일이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질병을 진단, 관리, 치료하는 의료 제품인 디지털 치료제도 에임메드, 웰트, 에이슬립 등의 회사에서 불면증 대상으로 한 제품의 상용화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처방 및 진료 기록과 자연스러운 연계가 되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 될 것이다. 삼성 헬스, 애플 헬스, 인바디 등의 제품과 연계를 통해 가정 내 다양한 웰니스 기록이 EMR로 들어온다면 더욱 통합적인 진료 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

미국 EMR 시스템을 제공하는 써너와 그 파트너의 연동 사례에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써너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텔라닥,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줌과의 연동을 통해 원격의료 서비스는 직접적으로 연동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면 진료에서도 암환자 진료에 특화된 로닌, 케어바이브 서비스, 응급실에 특화된 케이트(AI 기반 예진 시스템), ADHD에 특화된  미헬스 등이 EMR과 바로 연동돼 앱마켓에서 접근할 수 있다. 어펌(결제)뿐만 아니라, 페이스메이트(심장 박동 관리 및 원격 모니터링), 당뇨병 관리(리미디), 상처 관리(인텔리큐어) 등 특화 임상 지원 서비스도 국내서 날개를 달 것이다. AI 기반 음성 지원을 하는 수키, 진료 청구서를 효율적으로 작성하도록 도와주는 인지니어스 등의 행정 지원 앱들도 연동이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특화된 서비스는 절대 EMR 회사 혼자서는 할 수가 없으며, 전문적일 수도 없다.

 표준화 이해·보안 강화는 관건

이런 미래가 오기 위해서는 무엇이 준비돼야 할까? 예시로 든 미국의 경우 이런 통합 및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EMR이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의 혁신 중심이 됐다. 우리도 참고가 가능한 형태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 보험 시스템도 다르며 서비스 소비자인 환자의 행태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자와 의료진, 환자, 정부의 요구사항은 미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의료 시스템을 둘러싼 다양한 참여자들 각자의 요구사항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표준화다. 'HL7' 'FHIR'와 같은 EMR 국제 표준을 국내 헬스케어 산업계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기대 요소다. 세 번째로는 보안 강화다. 건강 정보 데이터는 단순한 개인정보를 넘어선 민감 정보로 처리가 된다. 정부에서 이런 중요성을 인지하고 민감 정보에 대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시했으며,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의 모든 서비스 제공자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정부 실증 사업을 통해 3차 병원 대상으로 한정적으로 이런 통합 및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시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미래가 근시일 내에도 의료 현장에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EMR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도입된다면, EMR 중심의 다양한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생태계 내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도 구상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를 열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조영훈 에이슬립 이사·이비인후과 전문의
 
서울대 의과대학을 학·석사 졸업하고, 동 대학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수련 과정을 마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다. 창업과 더불어 메디컬에이아이, 바디프랜드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실리콘밸리에서 미국 사업 개발을 경험이 있다. 수면 클리닉을 개원하여 의료 및 헬스케어의 디지털 전환을 접목 중이며, 스타트업 에이슬립에서 의료 AI를 활용한 슬립테크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의 인허가 및 글로벌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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