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늪에 빠진 세계경제, 탈출구는 없을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3. 11. 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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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안 되는 부채, 경제위기로 이어져
규제 개혁 통한 경제성장 전략 다시 살펴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5%를 찍었다. 올 4월까지만 해도 3.5%였고 한 달 전만 해도 4.5% 수준이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라는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문제다. 전쟁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 정부는 어느 때보다 돈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의회 예산처(CBO)는 올해 회계연도(10월 시작)의 재정적자가 GDP의 6%를 넘는 1조690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2.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는 적자 국채의 발행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경제가 최근 정부 및 기업, 개인의 부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정부의 가계부채 조정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 퍼포먼스 ⓒ연합뉴스

美 재정적자, 해마다 6.3% 증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2033년까지 해마다 평균 6.3%씩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도 미국의 적자 국채 발행은 늘어나게 된다. 물론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채권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은 갚을 돈이 부족하면 그냥 달러를 찍어 갚으면 되는 나라다. 하지만 누군가 사줘야 팔린다는 건 다른 나라 채권과 마찬가지다. 보통은 미국 연준이 사든가 안전자산을 찾는 은행들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이 많이 산다. 그런데 지금 연준은 국채 보유량을 계속 줄이는 중이고 일본이나 중국은 여유가 별로 없다. 국채 발행은 늘어나는 반면에 수요는 위축된다면 금리가 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어느 나라나 실질금리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 못지않게 채권시장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라면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다른 나라들의 국채 금리는 물론이고 회사채 금리까지 치솟는다. 우리 금융시장에서 한전이 발행하는 채권이 늘면 다른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는 것과 같다. 결국,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늘어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다.

부채 문제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 주요 국가들의 재정 상태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나쁘다. 세계는 지금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부채를 안고 있다. 국제금융연구소(IIF·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지난 2분기까지 세계의 총부채는 사상 최대인 307조 달러를 기록했다. 전 세계의 기업과 정부, 개인들이 진 빚을 모두 합친 숫자다. 지난 10년 동안 100조 달러가 증가했다고 한다. 총부채의 절반 이상은 기업부채다. 기업부채가 53%, 정부가 28%, 가계가 19% 수준이다. 오래 유지된 저금리 속에 기업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채무를 늘려 왔다. 경기 부양이 시급했던 각국 정부도 보조금 지급이나 공공사업 확대를 위해 부채를 급격하게 늘렸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가 '재정적 환각 상태(Fiscal Fantasyland)'에 빠졌다고 썼다.

구체적으로 보면 나라마다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채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물론 미국은 재정적자가 문제다.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33조 달러를 넘어섰다. 부채가 늘면 이자 부담도 늘어난다. 연방정부가 지출하는 순이자 지급액만도 국방비와 맞먹는 6500억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채권 이자 비용의 증가나 복지 프로그램 지출 확대를 생각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의 국가부채는 5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부채 한도 협상이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부채 한도 증액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너무 늘어난 국가부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도 미국이니까 어디선가 빌릴 수는 있겠다. 하지만 과거처럼 낮은 이자로 쉽게 빌릴 수는 없다.

지방정부와 기업 부채로 고민 중인 중국

중국은 지방정부와 기업의 부채가 고민이다. 중국 기업의 부채는 전 세계 기업들이 안고 있는 총부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난해 GDP 대비 중국 기업의 총부채 비율은 157%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는 숨어있는 게 많아 계산하기도 어렵다.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과도한 부동산 투자로 이미 부채가 많이 늘어난 상태에서 지난 3년간 다시 막대한 방역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중국은 현재 랴오닝성, 지린성을 포함해 지방정부 12곳을 채무 불이행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해 지역사업을 규제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지방정부의 총부채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모두 포함하면 약 2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잠재적 위험요소로 꼽히는 것도 역시 가계부채다. 전 세계적으로 가계부채는 2007년 GDP 대비 60%에서 2022년 64%로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GDP 대비 102%로 늘어나 호주, 캐나다와 함께 위험 국가로 꼽히고 있다.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186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한국은행이 적극적인 통화긴축 정책을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덫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가계부채가 지금 수준보다 더 늘어나면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올 1분기 잠시 주춤했던 가계부채는 2분기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 주로 부동산 시장 회복에 따른 주택 관련 대출 증가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앞으로도 주택 가격 상승 폭이나 대출금리 수준 등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3년간 특별한 정책적 대응이 없다면, 가계부채는 해마다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 부채가 경제위기로 이어지지 않고 해결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별로 없었다. 급격한 부채 증가는 세계경제의 침체 위험을 키운다. 빚을 얻는 데는 항상 이유가 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일 때도 있고 미래의 성장을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지나치게 늘어난 빚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고 파산의 위험을 높인다. IMF(국제통화기금)도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든 가계든 빚을 줄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당장은 채권 이자 지급만 해도 미룰 수도 줄일 수도 없는 부담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사정이 훨씬 나은 우리도 정부의 국채 이자 비용이 올해 25조원 가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21조원이었다. 세계는 지금 빚더미 위에 올라 있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 우선 비생산적인 빚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과잉지출을 억제하고,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박수받기 어려운 일들이다. 증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까지 모두가 부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경제의 성장이다. 흔히 규제 개혁을 돈이 들지 않는 대표적인 성장 전략이라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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