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탓"이라며 극단선택 산재신청 거부…法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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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낯선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단적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어도 업무상 재해가 인정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는 수의사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올해 9월14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6년 5월부터 국내 대형 제약사에서 근무하다 2020년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같은해 12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수산·양봉·축산 업무를 담당하다 승진 후 반려동물 사료 신제품 개발 등에 투입됐는데, 업무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우울증·수면장애를 진단받아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승진 이후 아내에게 '상사가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것 같다', '내가 일에 전문성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신제품의 포장지에 주요성분 함량이 잘못 기재되는 오류가 발생하자 A씨는 "더 이상 승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내에게 재차 불안감을 호소했다.

공단은 A씨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업무 압박보다 개인적인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한 것이어서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2021년 10월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처분이 부당하다고 봤다.

과거 대법원은 "망인의 내성적 성격 등이 자살을 결의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정신병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서 업무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반드시 인정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는 판례를 내놨다. 재판부는 A씨의 사건이 이에 부합한다며 "극심한 우울증의 병적 발현으로 인해 인식·행위선택 능력과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원 감정의는 A씨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업무상 스트레스와 피로 등이 우울증 악화의 원인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단일한 요인은 아니다"라는 소견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그 자체로 A씨의 업무상 스트레스가 하나의 원인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 성향과 결합했거나 개인적 성향을 한층 더 강화시켜 우울증을 악화시켰다"고 판시했다.

공단은 올해 10월4일 항소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