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에 1마리' 돼지 잡는 AI 로봇…인력난에 대형 도축장 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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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봇은 연내 전라도 김제 농협목우촌에서 PoC(기술검증)할 예정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1관에서 만난 박재현 로보스 대표는 현장에 전시된 성인 키 2배 높이의 이분도체 로봇을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분도체란 지육(돼지 머리, 내장을 제거한 상태) 돼지를 등뼈 중심으로 이등분하는 것이다.
대구 지역 대표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로보스는 로봇업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도축(屠畜) 자동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박 대표는 "목 절개 로봇, 복부 절개 로봇도 있는 데 지금은 제주, 군위 양돈장에서 PoC를 하고 있어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했다.
도축장은 힘들고 위험해 젊은 인력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다. 현장 인력 노령화도 빠르게 진행돼 현재 평균 연령이 55~63세에 이른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로봇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
이렇다 보니 당장 써보자는 곳이 줄선다. 박 대표는 오는 11월 홍성 도축장에서 이분도체로봇 1차 PoC, 내년 상반기엔 강원과 김제 도축장에서 로봇 3종 PoC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전국 80여개 도축장에서 연간 1800만 마리를 도축하고 있는데 대형 거점 도축장들은 인력난 해소와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공정 자동화에 매우 적극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돼지와 소의 도축 방식은 언뜻 같을 것 같지만 다르다. 박 대표의 말을 빌리면 돼지는 '속도전(戰)', 소는 '정밀전'이다.
돼지는 수요가 워낙 많아 컨베이어(물건을 연속적으로 이동·운반하는 띠 모양의 장치)로 빠르게 실어나르며 필요 부위를 로봇이 절개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돼지의 정밀 해체 공정은 세정 후 살과 뼈를 바르고 냉실에 들어가기까지 한 마리당 5분 정도 걸린다. 대형 도축장은 이 같은 공정을 통해 하루 5000마리 가량 도축할 수 있다.
반면, 소는 공급량이 적고 시장 가격이 높아 천장 레일에 매단 후 숙련된 작업자가 직접 발골하는 형태다. 소고기 한 점 값이 매우 비싸다 보니 세세한 부위까지 도려내 팔아야 하는데 로봇이 아직 그 정도까진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조만간 '소 도축 로봇'도 나올 것"이라며 "AI(인공지능) 생체 머신비전 딥러닝을 통해 인간 못지 않은 발골 실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자동차 생산 공정 로봇은 사람이 정해준 좌표에 따라 같은 규격의 부품을 옮기고 붙이면 된다. 하지만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소·돼지는 '외형 스캔을 통한 생체 측정→3D 입체 이미지 생성→연산→로봇 제어용 좌표 생성→로봇 구동' 프로세서를 밟아야 한다.
박 대표는 "AI 생체 머신비전 로봇은 소·돼지 크기가 제각각이고 혹여 척추나 다리가 휘어지거나 틀어져 있더라도 작업할 생체 부위 좌표를 스스로 판단해 찾는다"며 "매일 4000개 생체데이터를 수집하며 지금까지 누적된 220만개 이상의 생체데이터를 AI가 학습하며 정밀도를 높여 가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기술력은 팀구성원의 역량과 용기가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박 대표와 임화진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현대로보틱스 책임엔지니어 출신, 우태영 CFO(최고재무책임자)는 LG전자 책임연구원과 산화테크 연구소장 출신, 이두열 CIO(최고투자책임자)는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출신, 박원석 비즈니스디렉터는 고령공판장, 부경양돈조합 수의사 출신으로 생체 머신비전 로보틱스와 양돈 생태계를 꿰고 있는 고수들로 이뤄졌다.
박 대표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로봇 개발을 위해 도축장으로 매일 출근할 때 내장, 식도, 근막을 제거하는 도축 현장을 그대로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아 심리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다"면서 "무턱대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분야"라고 회상했다.
도축과 육가공 전체 공정을 압축하면 '방혈→세척→탈모→화염방사→2차 세척→목·복부·항문 절개→내장적출→이분도체→지육검사→검인→냉각' 순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로보스의 로봇이 투입돼 커버하는 공정은 10% 정도로 국내 도축 공정 로봇화는 아직 극초기 단계다. 박 대표는 "내년 항문 절개와 두 절단 로봇, 세정과 검인 로봇 등을 추가 개발할 계획"이라며 "우리가 개발한 로봇 라인업을 통해 공정 자동화율을 80%까지 끌어 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매출 측면에서 보면 로봇 구입가의 약 20%가 유지·보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해 수익성이 제법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표는 "예컨대 원형칼의 경우 3주 정도 쓰면 무뎌져 갈아줘야 하는데 이런 소모품 보수와 같은 전체 유지비가 구매가의 10~20% 사이로 든다. 20%라고 가정하면 5년에 로봇 하나 더 파는 셈"이라고 했다.
로보스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2026년까지 도축로봇을 16종으로 확대한다. 국내 해당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시장은 3600억원 규모다. 또 육가공, 물류로봇 등도 추가 개발할 시 국내 7200억원 규모의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업계는 도축 로봇 관련 국내 기업으로 로보스가 유일한 데다 해외 경쟁사 대비 판매가가 낮은 반면 삼겹살 수율을 결정하는 절단면 정밀도가 높고, 로봇 셋업시간 단축과 유지·보수가 상대적으로 편리하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놨다.
박 대표는 "최근 두산로보틱스의 상장으로 협동로봇 전문 기업들의 상장 붐이 일고 있다"며 "우리도 매출 컨디션이 대략 100억원 이상 되면 상장을 준비하려 했는데 내년부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가시적인 매출이 기대돼 본격적인 준비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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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 기자 j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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