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재료가 된 행성…지구 역사 뒤흔든 ‘충돌’ 잔재 어디에

곽노필 기자 2023. 11. 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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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억년 전 지구에 충돌한 테이아 잔재
맨틀과 핵 경계에 두 덩어리로 남은듯
45억년 전 지구와 원시행성 테이아의 충돌 상상도. 애리조나주립대 제공

달의 기원에 관한 가설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거대 충돌 가설이다. 45억년 전 지금의 화성 크기만 한 원시 행성 ‘테이아’가 원시 지구와 충돌하면서 생긴 수많은 파편이 우주로 흩어진 뒤 다시 뭉쳐져 달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가설일 뿐, 테이아가 지구에 충돌한 흔적이나 충돌 후 남긴 잔해와 같은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미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이 지구 땅속 2900km의 맨틀과 핵 경계 부근에 있는 거대한 이질적 암석층이 테이아의 잔해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논문 제1저자인 첸 위안 박사후연구원이 애리조나주립대 대학원생 시절인 2019년 미하일 졸로토프 교수가 진행한 행성지구화학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당시 교수가 ‘충돌체 테이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라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이 이번 연구의 아이디어를 촉발한 유레카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구와 충돌한 테이아는 일부는 달이 되고 일부 지구에 남았을 것이다. 또 지구에 남은 테이아는 일부는 녹아버리고 일부는 지구의 광물과 섞였을 것이다. 위안 박사는 그러나 테이아의 또 다른 일부는 거의 온전한 채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위안 박사는 지구의 핵과 맨틀 경계 부근에 있는 두개의 이질적 암석층이 바로 테이아의 잔해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대규모 저속 지역’(LLVP)이라는 이름의 암석층은 하나는 서아프리카 아래, 다른 하나는 서태평양 아래에 있다. 대륙만큼이나 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 이 암석층은 두께도 수백km에 이른다.

철이 풍부한 물질로 이루어진 지구 맨틀과 핵 경계에 있는 두개의 이질적 암석층(LLSVP). 하나는 아프리카 대륙 아래, 다른 하나는 서태평양 아래에 있다. 가운데 짙은 회색은 지구의 핵이다. 캘리포니아공대

‘테이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의 힘

이 암석층은 반세기 전에 지진파가 이 지역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분석 결과 이 암석층은 철분 함량이 높은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밀도가 높아져 지진파가 느려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더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지진 데이터는 초음파 사진과 같아서 구조물의 흐릿한 얼개만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깊숙한 곳에 있어서 드릴을 뚫어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과학자들은 애초 두 암석층이 한때 지구 표면을 덮고 있던 마그마가 굳은 암석의 일부가 다른 맨틀과 섞이지 않은 것이거나 맨틀 속으로 가라앉은 해저지각일 것으로 추정했다.

위안 박사 연구팀은 그러나 두 암석층의 부피가 달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두 암석층이 테이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녹아버린 테이아가 맨틀 하부에서 굳은 듯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테이아와 지구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충돌 후에 이 조각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테이아가 지구에 충돌했을 때 그 충격으로 인해 지구 맨틀 상부와 지각이 녹으면서 테이아 일부와 섞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파편이 우주로 튕겨나간 뒤 뭉쳐 생겨난 것이 달이었다. 테이아 맨틀의 10% 이상은 지구의 깊은 맨틀에 묻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지구보다 철분이 더 풍부했던 것으로 보이는 테이아의 맨틀이, 밀도가 높은 이 테이아 조각이 지구의 핵-맨틀 경계로 가라 앉은 뒤 맨틀의 대류에 의해 현재의 두 암석층으로 나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맨틀로 가라앉은 암석층이 2~3개의 덩어리로 나뉘었다.

테이아의 맨틀은 왜 지구의 암석들과 섞이지 않고 별개의 덩어리로 남게 됐을까? 시뮬레이션 결과, 테이아의 충돌로 인해 전달된 에너지는 지구 맨틀 상부에만 전달됐고,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하부 맨틀로 내려가면서 촛농이 굳듯 덩어리가 됐다는 가설이 도출됐다.

결론적으로 지구와 충돌한 테이아의 대부분은 지구에 흡수되어 이 암석층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달에 합쳐졌다는 것이다.

지구와 다른 암석행성의 결정적 차이일 수도

미국 사우스웨스트연구소의 행성과학자 로빈 카누프는 ‘네이처’에 “이 암석층이 테이아의 잔재라는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논문이 나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폴 태클리 교수(지구물리학)는 ‘뉴욕타임스’에 “매우 흥미롭고 참신한 가설이지만 증거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위안 박사도 이 암석층이 해저 지각이나 원시 지구의 충돌 잔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테이아가 남긴 이질적 암석층은 초기 지구 내부의 역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연구진은 이 질문을 다음 연구 과제로 설정했다.

위안 박사는 ‘뉴사이언티스트’에 “달을 만든 이 거대한 충돌은 지구가 다른 암석 행성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며 “이 충돌은 지구의 대기를 바꾸고, 지각을 바꾸고, 맨틀을 바꾸고, 핵을 바꾼, 아마도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3-06589-1

Moon-forming impactor as a source of Earth’s basal mantle anomalies. Nature(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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