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건 조작’ 국정원 정보원은 누구?…전과자 ‘야당’에 휘둘린 기관들 [주말엔]
배우 황정민, 류승범 주연의 2006년 개봉 영화 사생결단. 형사(황정민)가 마약계 거물을 잡기 위해, 마약 중간 판매상(류승범)의 마약판매를 눈감아 주는 대신 정보를 제공받는 , 이른바 '야당'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야당'은 수사기관의 정보원 역할을 하는 마약사범을 말하는데요. 과연 영화일 뿐일까요.
■ '마약사건 조작'의 불씨가 된 '야당'
KBS가 연속 보도한 '마약 사범 조작' 사건처럼 현실에도 이런 야당은 존재하고, 심지어 '마약사건 조작'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연관 기사]
[단독] “생사람 잡아 구속 기소”…‘허위 제보’ 뒤엔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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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짜 마약 제보 수사’ 또 있다…이번엔 30일간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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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조작’ 피해자 기소 KBS 보도에 검찰 “공소 취소하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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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마약 밀매 사범으로 몰린 50대 남성 A 씨는 구속기소 돼 재판까지 받았고, 40대 남성 B 씨는 30일간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모든 건 다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한 '야당' 50대 남성 손 모 씨의 '거짓 제보'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취재진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손 모 씨의 정체를 추적해봤습니다.
■ 밀매 사범은 바로 본인…그의 '마약 전과'들
손 씨에게는 마약 관련 전과가 있었습니다. 2014년,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과 상표법 위반, 관세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약류 관련 혐의는 바로 '필로폰 밀매'. 2006년 8월, 손 씨가 중국에 거주하는 필로폰 밀매책 C 씨로부터 필로폰 100.79g을 밀수한 겁니다.
당시 손 씨의 판결문을 보면, 그는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누명을 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면서 C에 대한 첩보를 제공하였던바 이에 C가 앙심을 품고 소위 '던지기' 수법으로 피고인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한다.
- 광주고등법원 2심 판결문(2014년 10월 21일 선고)
그러나 재판부는 여러 증거를 고려했을 때, '누명을 쓴 것'이라는 손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손 씨는 이외에도 2005년 3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 수사기관에 정보 주는 '야당'…전과자라 가능하다?
판결문 내용을 보면, 손 씨는 꽤 오래전부터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전과자를 국가기관의 정보원으로 활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 거래의 특성상, 제보자나 공범의 조력 없이는 수사를 확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보원 역할을 하는 마약사범 '야당', 실제로 조금만 알아보면 드물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KBS와 만난 한 마약 범죄 전과자는 "나에게도 국정원이 제보해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며 "경찰 역시 최근 마약범죄 수사 담당이 아닌 곳에서도 '정보를 달라'고 전화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 그들의 부당거래…'공적' 얻고 '실적' 쌓고
야당은 수사기관에 정보를 주는 대신, '공적'이라는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 피고인의 협조가 다른 마약 수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의 수사 공적서를 쌓으면 재판에서 감형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 손 씨의 2014년 판결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피고인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원으로서 활동한 전력이 있고 중대한 마약 수사에 협조한 공적이 있는 점, (중략) 등의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들에 더하여
- 광주고등법원 2심 판결문(2014년 10월 21일 선고)
손 씨는 이처럼 국정원에 정보를 주는 대가로 본인의 형량을 조절 받은 것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일정한 금액의 활동비를 받은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각 기관은 야당을 통해 어떤 혜택을 얻을까요. 바로 '실적'입니다. 이번 '마약 사범 조작' 사건의 발단도 국정원의 '실적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손 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검찰은 공소장에 이 같은 내용을 적었습니다.
피고인은 국가정보원에 등록된 민간인 정보원으로서, '과거 수년간 피고인을 관리해 친분이 깊은 국가정보원 직원인 '나 과장'(가명)으로부터 '단기적으로 실적이 될 수 있는 정보를 달라.'라는 취지의 요청을 받았다.
-손 씨 공소장
■ "매일 양복 입고 시도 때도 없이 나간다"
손 씨는 현재는 무고 혐의로 구속기소 된 상태입니다.
취재진은 손 씨가 부재중일테지만, 조금이라도 더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의 주소지가 있는 빌라를 찾아갔습니다.
이웃들은 손 씨에 대해 무엇을 하는진 모르지만 매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란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세금 체납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차는 2대나 끌 만큼 자산은 있어 보인다고도 전했습니다.
"매일 양복 입고 시도 때도 없이 나가요."
"(세금 체납이 있는지) 세무서 직원들이 들락날락하고 그랬어요. 그 세무서 직원이 그러더라고요. '전화 잘 안 받고, 아프다 그러고 죽는 시늉한다'고. 그러면서 차는 두 대씩 끌고 다니고."
-손 씨 이웃
■ 억울한 피해자 남겨두고…각 기관은 '책임 떠넘기기'
'야당' 정보에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긴 이번 사건.
엮인 기관은 총 5곳으로 국정원·인천공항 본부세관·검찰·경찰·법원인데, KBS 보도 이후 서로 '책임 떠넘기기'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야당'의 정보로 수사를 한다면 이에 대한 검증 절차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제보가 들어왔으니 수사한 것"·"영장은 검찰이 청구한 것"·"영장은 법원이 발부한 것" 등의 이야기들을 내놨습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별도의 징계나 감찰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도 밝혔습니다.
A 씨 '공소 취소 결정'을 한 인천지검처럼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 기관도 있지만, 증거가 허위라는 것을 밝혀내지 못한 데에 대해서는 누구도 마땅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피해를 본 당사자인 A 씨와 B 씨 모두 "직접적인 사과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전해왔습니다.
A 씨는 수사 과정에서 압수됐던 휴대전화를 아직까지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A 씨는 KBS에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100일간 커피숍 문을 닫아 생계에도 타격이 크다"고 토로했고, B 씨 역시 "당시엔 정말 죽고 싶은 심경이었다"며 "아직도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야당'의 거짓 제보, 그리고 여기에 휘둘린 국가 기관의 '실적 경쟁'에 한순간 마약 밀매 사범으로 몰린 이들.
'열 도둑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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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기자 (in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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