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개 완투승 투수를 다음 날 또? 일본이라면 그럴지 모른다

백종인 2023. 1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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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 SNS

[OSEN=백종인 객원기자] 일본시리즈가 결국 7차전 승부까지 갔다. 오릭스 버팔로즈가 4일 열린 6차전 홈 게임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5-1로 꺾으면서 3승 3패를 만들었다.

이날 경기에서는 오릭스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25)의 역투가 펼쳐졌다. 그는 9회까지 혼자 책임지며 1실점으로 막아냈다. 홈런 1개를 포함해 안타 9개를 맞고, 사구 1개를 내준 게 전부다. 삼진은 14개나 뽑아냈다. 일본시리즈 역대 최고 기록이다.

놀라운 것은 투구수다. 무려 138개를 던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최고 구속 158㎞가 8회에 나왔고, 마지막 138번째 공도 152㎞를 찍었다. 주무기인 포크볼은 148~149㎞를 유지했다.

이로써 1차전 때 5⅔이닝 동안 7실점 하며 패전투수가 된 것을 만회할 수 있었다. 그는 2021년부터 일본시리즈에 4번 등판했으나, 승리 기록이 없었다. 이번이 첫 승인 셈이다.

경기가 끝난 후 “7회 정도에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투구수를 체크했다. 그랬더니 감독께서 ‘오늘은 투구수 제한 없다’고 하셔서 계속 열심히 던졌다. 9회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고 ‘드디어 끝났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실시된다. 다수의 MLB 전문 매체들은 스토브리그 FA 시장에서 야마모토를 랭킹 2위로 주목하고 있다. 물론 1위는 오타니 쇼헤이다. 때문에 이날이 일본에서의 고별 무대나 다름없었다.

오릭스 버팔로즈 SNS

그러나 오늘 저녁(5일 6시 30분) 7차전을 앞두고 묘한 기류가 생기고 있다. 야마모토의 최종전 등판을 기대하는 여론이 조금씩 높아지는 탓이다. ‘그래도 마지막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팬들의 바람이다.

물론 최종전 선발은 미야기 히로야가 예고됐다. 올해 10승 4패(ERA 2.27)를 올린 좌완 투수다. 나쁘지 않은 마무리도 버티고 있다. 이번 시즌 3승 29세이브(ERA 1.13)로 활약한 히라노 요시히사가 건재하다.

그럼에도 야마모토에게 눈길이 쏠리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상징성이다. 일본에서는 그걸 ‘도아게(どうあげ) 투수’라고 부른다. 헹가래 투수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우승의 마지막 순간에는 에이스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전통이다. 우리도 양현종, 김광현 등이 그런 식으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 등판했다.

만약 그런 예우라면 야마모토가 마땅하다. 그는 오릭스의 에이스로만 한정할 수 없다. NPB 최고의 투수로 평가돼야 한다. 올해 16승 6패, ERA 1.21, 탈삼진 196개를 기록했다. 최초로 3년 연속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을 차지한 인물이다. 만년 약체인 오릭스를 A클래스로 올려놓은 주역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 팬들의 뇌리에 남은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몇몇 유력 매체가 시동을 건다.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나온다.

‘오릭스 야마모토 요시노부, 다나카 마사히로 패턴에 기대 높아진다. 160구 완투 → 다음날 수호신. 전설의 일본 최고 재현될까.’ (주니치 스포츠)

‘7차전, 나카지마 오릭스 감독이 “야마모토!”를 외칠 가능성은? 팬들은 라쿠텐 다나카 마사히로의 명장면을 떠올린다.’ (닛칸 스포츠)

오릭스 버팔로즈 SNS

10년 전(2013년) 일본시리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상대는 라쿠텐 골든이글스였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7차전 9회 말이 시작되자 불펜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외야에서 누군가 힘차게 달려 나온다. 다나카 마사히로였다.

관중석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린다. 어떤 여성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친다. 그럴 법하다. 하루 전 160개를 던진 투수다(4실점 완투패). 24시간도 안 돼 다시 등판한 것이다. 결국 15개를 던지며 3-0 승리를 지켜냈다. 거함 요미우리를 무너트리고, 신생팀 라쿠텐이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이었다.

이틀간 175개는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다나카 역시 시즌을 마치고 MLB 진출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메디칼 체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호시노 센이치(2018년 작고) 라쿠텐 감독의 생애 첫 우승이었다. 그는 그때 이런 얘기를 남겼다. (라쿠텐의 연고지 도호쿠 지역은 2년 전 대지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 우승 따위가 뭐라고… 많은 팬들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임시 거처에서 모여 간절히 우리 팀을 응원해 주셨다. 도호쿠의 어린이들, 실의에 빠진 분들께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마지막은 역시 마사히로 군이어야 했다. 그 녀석만이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었다.”

다나카는 그 해 경이로운 24승 무패(ERA 1.27)의 전적을 올렸다. 별 볼 일 없던 비인기 약체팀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팬들은 그를 ‘우리를 가엽게 여긴 신이 내려 주신 선물’이라고 추앙했다. 그 역시 자신의 등판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굉장한 의기를 느꼈다”고 술회했다.

미국 매체는 이틀간 175개를 ‘미친 짓’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기억은 다르다. 그날 그 순간, 수많은 사람이 TV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관중석은 눈물로 뒤덮였다. 탈진한 에이스도, 머리가 허연 호시노도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라쿠텐 이글스 SNS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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