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삼성전기 ‘차세대 반도체 기판 거점’ 세종사업장 가보니… 기판 20층 쌓아도 두께는 ‘2㎜’ 안돼
현재 모바일 반도체 패키지 기판 주력
반도체 기판 전체 매출 중 62.5% 담당
30초마다 이물질 유입 감지...기초 화장도 금지
머리카락 40분의 1 두께 회로 선폭 구현
세계 1위 FC-CSP 생산, 최대 20층 쌓아
내년 5월 완공 신공장서 차세대 기판 생산
지난 2일 세종시 연동면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축구장 24개 규모(약 5만3000평)의 사업장에 들어서니 차세대 반도체 기판을 생산할 다섯번째 공장의 골조 작업이 한창 마무리되고 있었다. 31년 된 세종사업장은 삼성전기의 기판 사업이 태동한 곳이다. 1997년부터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생산하기 시작해 일본산 기판 독점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현재까지도 이곳에선 1855명의 직원들이 반도체 패키지 기판 단일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반도체 성능을 높이기 위한 핵심 부품인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와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고리다. 반도체를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반도체는 두뇌,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뇌를 보호하는 뼈대와 뇌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각 기관에 연결하는 신경에 해당한다. 반도체가 고성능화되면서 반도체 기판의 회로도 점차 미세해지고 층수도 높아지는 추세다. 세계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 규모는 올해 106억달러(약 14조원)에서 연평균 약 10% 성장해 2027년 152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과 함께 반도체 패키지 기판 주요 생산거점인 세종사업장에서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주력으로 양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플래그십(최상위 제품) 스마트폰 AP(두뇌 역할을 하는 칩)용 기판 플립칩 칩스케일 패키지(FC-CSP)는 점유율과 기술력에서 세계 1위다. 이 밖에도 휴대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5G 안테나, 태블릿·노트북용 ARM 중앙처리장치(CPU), 자동차 전장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여기서 생산한다.
임승용 삼성전기 패키지솔루션 부사장은 “지난해 반도체 패키지 기판 매출 2조원 가운데 1조2500억원이 세종사업장에서 나왔다”며 “기존 주력인 모바일 제품 외에도 성장세가 빠른 ARM CPU와 전장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기가 공개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 과정은 고객이 요구한 설계 디자인을 기판에 그리는 회로 형성 공정, 기판을 양방향으로 쌓는 적층 공정, 각 층간 구멍을 뚫고 도금하는 공정 등이다. 공정 대부분이 커다란 장비 내부에서 이뤄져 생산라인에선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사람만한 다관절 로봇팔이 기판을 들어 클린룸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기판은 대개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은 크기에 반도체 칩을 실장(實裝)하는 미세범프(볼)가 수천개 집적돼 있다. 수천개 볼 중에 하나만 잘못돼도 기판은 쓸 수 없게 된다.
A4 용지 두께보다 얇은 기판에 먼지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불량품이 되기 때문에 생산라인은 청정 공간으로 관리된다. 모든 출입자는 방진복과 방진모, 실내화를 신고 신발 바닥 세정기 10초, 에어샤워 10초를 거쳐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선크림, 비비크림, 틴트, 마스카라, 흑채 사용은 일절 금지한다. 라인 내 24시간 가동되는 모니터링룸에선 30초마다 이물질 유입 등 이상 유무를 감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상시 체크한다.
‘미세화’와 ‘다층화’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삼성전기는 머리카락 40분의 1 두께인 3㎛(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수준의 회로 선폭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정된 기판 면적 안에 더 많은 회로를 만들기 위해 층수를 높이는데, 삼성전기는 현재 기판을 최대 20층까지 쌓은 FC-CSP를 생산 중이다. 20층을 쌓아도 기판 두께는 2㎜가 채 안 된다.
기판 다층화엔 미세 가공 기술이 수반돼야 한다. 각 층에 있는 회로를 서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판에 미세한 구멍(비아·Via)을 뚫고 도금해 전기적 신호를 연결한다. 일반적으로 80㎛ 면적에 50㎛ 구멍을 오차 없이 정확히 뚫어야 한다. 삼성전기는 A4 용지 두께 10분의 1 수준인 10㎛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세종사업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임베딩(Embedding·매립) 기술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임베딩 공법은 소자를 기판 위에 실장하지 않고 기판 내부에 내장시키는 기술이다. 신호 경로가 짧아져 전력 손실이 50% 이상 줄고, 고속 신호 전달에 유리하다. 삼성전기는 국내 기판 업체 중 유일하게 임베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심규현 삼성전기 패키지세종제조 기술팀장(상무)은 “10년 전부터 전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며 “현재는 수동 소자가 임베딩된 기판만 생산하고 있지만, 향후 능동 소자가 임베딩된 기판도 생산하기 위해 신공장 건설뿐 아니라 기존 공장을 개보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5월 완공 예정인 새 공장에서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당장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현재 공정률은 57% 정도다. 이곳에선 특히 고성능 반도체 적층 방식인 2.5D 패키징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심 팀장은 “선폭 2㎛의 초미세 공정이 적용된 기판을 새 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신공장의 모든 공정은 이물질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반도체 제조 공정에 준할 정도로 ‘클린룸화’, ‘자동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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