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학적 증명 부족해도 업무상 재해 인정 가능"

정채영 2023. 1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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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업무 스트레스 과중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사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 및 악화됐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처분의 위법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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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 사망한 수의사 유족 소송
"주위상황 극단 선택 이르는 경위 고려"

법원이 업무 스트레스 과중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법원이 업무 스트레스 과중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의학적 증명이 부족하더라도 경위를 볼 때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사망한 수의사 A씨의 배우자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B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5월부터 주식회사 유한양행 소속 수의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2년 12월 자신의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A씨의 죽음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업무 압박보다는 업무에 대한 개인적인 완벽주의 성향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현실에 따른 선택"이라며 부지급 결정했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초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업무를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새로 출시한 제품의 주요 성분 표시 문제를 두고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는 수면 장애를 겪고, 심장이 뛰고 불안해하는 증상도 있었다. 사망 전날 A씨는 '자신이 성과를 내지 못해 인사고과가 낮아져 회사에서 더이상 승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승진 못할 경우 견디기 힘들겠지'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법상 업무와 재해 발병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그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는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규범적 관점에서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당사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 및 악화됐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처분의 위법성을 설명했다.

안정적인 가족을 꾸려와 가족의 지지체계가 부족하지 않았고 경제적 형편도 양호한데다 종교적 신념으로 극단적 선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도 법원의 판단에 힘을 보탰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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