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금 깎아줄게 빈집 부숴라”···지방 폐허 해법 될까
[주간경향] 빈집이 늘수록 사회는 불안해진다. 흉물처럼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안전·범죄 사고 발생, 환경과 위생 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각종 민원과 재산권 침해 논란 등으로 강제 철거도 쉽지 않다. 당국은 고육책으로 ‘철거하면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세 부담 완화로 철거를 유도하되 고의로 빈집을 방치하는 경우엔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빈집의 정의
빈집의 법적 정의는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주택’이다. 1년 이상 전기와 상수도의 사용량 자료 등을 토대로 사전 조사와 현장 조사를 거쳐 빈집(미분양 주택·공공임대주택·별장 등 제외) 여부를 판단한다.
빈집은 그간 소관 부처와 적용되는 법령이 서로 달라 정책 시행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도시는 국토부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정비법)에 따라 관리하고, 농어촌 지역은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촌은 농식품부가, 어촌은 해수부가 각각 맡는 식이었다.
빈집 통계도 서로 달랐다. 법적 빈집은 13만 호를 넘는 수준이지만 통계청이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주택 총조사’ 결과에서의 빈집은 훨씬 많다. 지난 7월 발표된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 빈집은 145만2000호로, 전체 주택의 7.6%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0%(5만6000호), 5년 전인 2017년 대비 14.8%(18만7000호) 각각 늘었다. 다만 통계청 조사는 조사 시점(11월 1일)에 비어 있는 집을 기준으로 집계한다. 매매, 임대, 이사, 미분양, 수리 등 일시적으로 비어 있는 빈집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법률상 빈집의 정의와 다르다.
정부가 지난 6월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3개 중앙 부처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빈집실태조사의 추진 절차와 지방자치단체의 빈집관리 전담부서 지정 등을 담았다.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 산하기관별로 진행한 빈집 현황 조사 등도 주체를 최근 한국부동산원으로 일원화했다. 3개 부처가 이번에 처음으로 취합한 전국의 법적 빈집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3만2000호다. 도시 지역 4만2000호, 농어촌 지역 9만 호(농촌 6만6000호, 어촌 2만4000호)다.
도시와 농어촌의 특성과 차이
장기간 방치된 빈집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건물 붕괴와 화재 등 안전사고, 범죄 발생, 경관 훼손, 악취 발생, 주거환경 악화 등이다. 도시 지역은 지자체장이 빈집정비법에 의거해 노후, 불량, 위생 등 문제로 붕괴, 화재, 범죄 발생 우려가 큰 3∼4등급 판정을 받은 빈집에 대해 집주인에게 정비 또는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반발과 재산권 침해 논란으로 실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철거를 집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투기 목적으로 방치된 빈집들도 있지만, 집주인이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거나 저소득층인 경우도 많다. 이행강제금 부과 조치에 집주인들의 저항이 심하고, 지자체 입장에서도 체납이 되면 실적에 좋지 않기 때문에 집행을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 빈집은 도시 지역의 2배에 달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지난해 4월 펴낸 ‘빈집 정비를 위한 재산세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농어촌·지방 중소도시 지역들은 대도시 지역에 비해 법적 빈집 분포가 높다. 대도시 지역은 빈집 중 18.3%가 법적 빈집인 반면 농어촌·중소도시는 지역 내 빈집 중 33.1%가 법적 빈집이다. 농어촌 지역은 지역산업의 쇠퇴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령화, 저출생, 인구감소 등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 또 건축물대장이 없는 무허가 빈집은 실태 파악조차 어려워 관리가 더 어렵다. 대도시는 소유자가 재건축과 재개발 등을 기대하고 빈집으로 방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주택 상속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도시 지역은 이행강제금이라도 부과할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은 집주인들이 철거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 농촌 지역에서 빈집의 활용률과 철거율이 낮고, 흉물로 방치되는 폐가성 빈집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빈집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귀농·귀촌 유치지원 사업과 농촌공간정비사업 등을 통해 빈집을 최대한 활용하고, 철거가 필요한 빈집은 신속하게 정비하겠다고 밝혀왔으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병길 의원(국민의힘)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빈집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철거 필요 대상으로 파악된 농촌 빈집 중 실제 철거된 빈집의 비율은 2017년 17.2%, 2020년 23.5%, 2021년 18.8%, 2022년 18.5%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빈집 활용률은 2020년 0.81%, 2021년 0.94%, 2022년 0.74%로 1% 아래에 그친다. 정부 관계자는 “도시 지역의 이행강제금 부과처럼 농어촌 지역에서도 철거 명령을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있도록 법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재산세 부담 완화, 배경은
집주인들이 빈집을 방치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철거 후 불어나는 세금 부담 때문이다. 빈집이 철거되면 일정기간 후엔 주택세가 아닌 토지세를 적용받게 되는데, 토지세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주택 세율은 0.05~0.4%이고, 토지(나대지) 세율은 0.2~0.5%이다. 지방세연구원이 예로 든 사례를 보면, 1944년 지어진 노후 주택에 2020년 부과된 재산세가 2만8940원이라고 했을 때, 현행대로라면 이 주택이 철거된 후 소유주에게 부과되는 재산세는 7만6800원으로 인상된다. 여기에 ‘비사업용 토지’로 분류되면서 양도소득세 부담액이 늘고 경우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빈집 철거를 결정한 집주인에게 재산세 완화 등 세금 감면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25일 밝힌 ‘세 부담 경감’ 주요 내용을 보면, 빈집 철거 후 이를 토지세액이 아니라 철거 전 납부하던 주택세액으로 인정해 주는 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빈집 철거 후에 토지세액의 부과 기준이 되는 기존 주택세액의 연 증가 비율도 기존 30%에서 5%로 내리기로 했다. 이 같은 혜택은 도시 지역에서 읍·면 농어촌 지역까지 확대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11월 중 입법예고하고, 내년에 부과되는 재산세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행안부가 추정한 재산세 내역을 보면, 공시지가가 매년 5%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도시 지역은 2025년 2만3000원, 2028년 17만7000원의 재산세가 각각 줄고, 농어촌은 2024년 8만6000원, 2028년 17만7000원의 재산세가 각각 줄어든다.
현장의 빈집 현황 파악 등 체계적 관리를 위한 인력과 예산의 충원 대책이 추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의 ‘지방정부의 빈집 관리 정책역량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전체 228개 조사대상 지역의 약 24%인 54개 지역이 빈집 관련 조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빈집 업무를 건축, 주택, 도시재생 등 여러 부서에서 혼재해 맡는 등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도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조사에 응답한 200개 시·군·구는 2022년 기준 평균적으로 약 2억8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빈집 한 채를 철거하는 데 소요되는 평균 비용을 2500만원 정도라고 봤을 때 이러한 지자체 예산은 지역 내 전체 빈집 전체를 철거하는 데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의 3.5%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정문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빈집을 철거하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장기간 방치로 공공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당국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빈집 발생 배경과 피해 양상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역할의 재정립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다. 허원제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불가피하게 발생한 빈집에는 인센티브를 통해 철거와 정비를 유도하되, 투기 등 목적의 고의로 방치되는 빈집 소유주들에게는 이행강제금 부과와 같은 패널티를 제대로 부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불가피한 빈집인지, 투기 목적의 빈집인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의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최근 지방세법 개정 등과 같은 조세정책 추진과 더불어 재정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료 공영주차장 알박기 차량에 ‘이것’ 했더니 사라졌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서울시향 이사 위촉에 문화예술계 등 반발
- [전문] 아이유, 악플러 180명 고소…“중학 동문도 있다”
- 미납 과태료 전국 1위는 ‘속도위반 2만번’…16억원 안 내고 ‘씽씽’
- 고작 10만원 때문에…운전자 살해 후 차량 불태우고 달아난 40대
- 평화의 소녀상 모욕한 미국 유튜버, 편의점 난동 부려 검찰 송치
- “내가 죽으면 보험금을 XX에게”···보험금청구권 신탁 내일부터 시행
- 경북 구미서 전 여친 살해한 30대…경찰 “신상공개 검토”
- 가톨릭대 교수들 “윤 대통령, 직 수행할 자격 없어” 시국선언
- 김종인 “윤 대통령, 국정감각 전혀 없어” 혹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