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정 전 인권위원 “그들은 인권위를 짓밟으러 왔다”

정용인·조태형 기자 2023. 11. 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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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원정 노동인권회관 부소장·전 국가인권위 위원 인터뷰

“인권위의 위상을 국민의 기대감, 정권과 정부의 인권위 결정 존중 등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텐데 일단 인권위 내부가 아수라장인 상황이다. 산적해 있는 인권사안에 대해 제대로 연구와 정책 개발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이나 규범, 정책·제도·문화가 제 궤도를 찾아갈 수 있도록 바른 방향을 제시하라고 인권위원회가 독립된 합의제 기구로 있는 것인데…. 지금은 대통령이나 현 정부가 입장을 취하면 그걸 인권위가 그대로 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석원정 전 인권위원이 11월 1일 서울 중구 노동인권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주간경향] 석원정 노동인권회관 부소장(65)은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임명돼 올해 7월 23일까지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윤석열 정부 임기 1년을 지난 시점까지 인권위 내부의 상황변화를 겪고 나온 사람이다. 그는 2023년 인권위의 현 상황을 “아수라장이 됐다”라며 “참담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인권위원 임기를 마치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활동가로 돌아온 석 부소장을 지난 11월 1일 서울 중구 동호로 소재 노동인권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9월 25일과 10월 30일 열린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를 방청했습니다. 저 같은 기자들뿐 아니라 10월 30일엔 인권단체 사람들까지 방청하고 있었는데도 일부 인권위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처에서 월권했다며 ‘비켜라’라는 등의 말을 하고 다른 인권위원은 ‘사무처 직원들에게 대신 사과드린다’고 맞받는 등 공방을 벌였습니다. 석원정 부소장께서는 가장 최근에 인권위 비상임위원을 마쳤습니다. 지금 인권위 내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고 인권위 운영 규정을 바꾸겠다고 하다가 일단 차기 회의로 미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사실 올해 상반기부터 분위기가 영 아니었습니다.”

-올해 상반기부터 이렇게 된 겁니까.

“그전부터 회의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았습니다. 새로 임명된 특정위원이 본인의 주장을 담은 문건을 배포할 때도.”

-어떤 주제였습니까.

“에이즈예방법 전파매개행위 처벌에 대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이 들어오면서 그에 대해 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내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합헌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문건을 돌렸어요. 개인적으로 그분 주장이 놀라웠어요. 우리 내부에서도 한바탕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상임위원회 간담회에서 오간 발언 같은 게 언론에 나기 시작했죠.”

-해군 두발 기준 관련이었던가요.

“네. 초안에 의견을 넣었던 것을 언론이 특정 위원의 혐오발언이라고 보도하면서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그전에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그만둘 때쯤 국가인권위가 소위원회에서 많은 진정 사건을 다루고 실태조사 같은 걸 했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는 결국 전원위원회에서 많이 다루게 되거든요. 전원위원회에서 토론이나 의견·주장, 또 전문가들의 의견이 조사되고 제시되지만 결국 의견이 합치 안 되면 나중에는 표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원위를 구성하는 인권위원이 11명이니 6명이면 과반을 넘기는데 이제 지형이 뚜렷해져 버린 겁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임용된 두 상임위원 중 한 분은 올 때부터 ‘진보가 어떻고 민주당이 어떻고 기존에 있었던 분들은 다 좌파’다, 기존에 나온 결정은 거의 진영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어이가 없어서 일일이 하나하나 대꾸하기도 그랬습니다. 정말 그분들 눈에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 묻고 싶었어요. 서미화 위원님 그만두시고 저도 그만두면서 인적 구성이 확 바뀌니 이후의 상황이 뻔히 예상됐습니다. 남아 있는 분들에겐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합니다. 제가 있을 때 지금 분란이 되는 상임인권위원을 피진정인으로 하는 갑질 진정 같은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상상 이상으로 불편했지만 너무나 빨리 정말 아주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니까 요새는 참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드디어 인권단체들까지 나서서 참….”

-10월 30일 전원회의가 열리던 날 인권단체들이 인권위 앞에서 특정상임위원은 물러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해당 위원들이 구체적 개별사건에서 저렇게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결론도 그렇게 몰고 가니 참 그렇습니다.”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날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에서 의결예정인 ‘인권위원 제출 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에 대해 소위원회 위원 1인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정 개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그만둔 뒤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으로 복귀했는데 인권위 내부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분이 사라진 겁니까.

“인권위원 구성 중에서요? 그런 셈이죠. 저뿐 아니라 소수자에 속하는 장애인 쪽도 서미화 위원이 그만두면서 현재 공백이 된 상태입니다.”

-최근 새로 온 분 중에 북한 인권을 전문으로 다루는 분도 있던데요. 최근 소위원회 운영규칙을 위원 중 한 사람이라도 기각하면 기각하는 거로 변경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요. 탈북자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인데 이들 중 누가 만약 침해구제 진정을 넣었는데 소위원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기각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구제가 이뤄지기 어렵게 되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방향으로의 운영규칙 변경안 상정에 동의한 6명 중 한 명으로 그분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그것은 아주 안 좋은 선례이고 관행이 돼버리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데 그분이 진짜 어떤 입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운영규칙 개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알려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실무 규정 같은데 사실 그 개정이 미치는 영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무슨 생각으로 소수자 운동을 하는 분이 그런 결정에 동참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분들이 회의 석상에서 ‘좌파민주당 논리’, ‘진영논리에 오염돼 있다’는 등의 언급을 많이 하는데 실상은 반대 아닙니까. 예컨대 많이 거론된 반례가 과거 보수 쪽 추천으로 왔던 홍진표 상임위원인데, 이분은 보수를 대표해서 왔고 또 보수적 시각을 견지했지만 적어도 사무처와 갈등관계는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거든요. 전원회의 방청을 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취재기자 방청석 뒷줄에 그날 안건과 관련된 인권위 사무처 직원들이 앉아 있었는데, 특정 위원들이 언성을 높일 때마다 뒤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요.

“지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발언이 생각납니다. 인권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 문명의 문제라고요. 저는 그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현 윤석열 정부 이전에 임명된 상임위원 중에도 정말 보수 인사가 있었는데, 사무처 직원 중에는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물론 아주 예민한 문제는 전원위에서 각자 주장을 내세우면서 티격태격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인권위의 권위나 기존의 관행을 짓밟는 방식으로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어요. 인권위의 위상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국민의 기대감, 그다음으로 정권과 정부에서 인권위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 등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텐데 일단 인권위 내부가 저렇게 아수라장이 돼 있는 상황이고요. 현재 산적해 있는 인권사안에 대해 제대로 연구라든가 정책개발 같은 것이 될까 싶습니다. 인권위원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아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상황 아닐까요.”

-자괴감도 많이 들 듯하고요. 문재인 정부 때 인권위원으로 임명됐는데, 지금 상황과 뚜렷이 대비되는 당시 성과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나요.

“하도 여럿이라 특별한 기억은 안 나는데…. 스텔라데이지호 재수색 관련해 진정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한번 수색은 했는데 인양은 안 했잖아요. 예산 편성해서 인양해 달라, 그런 진정이 들어왔는데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기각인가 각하됐던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해 네다섯 분의 인권위원이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그때 우리가 주장한 것이 신원권이었거든요. 세월호도 그렇고 이태원도 그렇지만….”

-신원권이 뭡니까.

“가족의 한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유가족들이 진상을 규명하고 또 원상회복을 요구한다든가 진상을 파악하고, 손해배상을 받거나 치유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걸 신원권이라고 이름을 붙였더라고요. 그게 딱히 국내 어떤 법규나 이런 데 명시돼 있지 않지만, 국제인권규약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세월호 때 신원권 이야기가 등장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이게 딱 맞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이태원 특별법이 도대체 무슨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냐고 할 때 가족들·유족들에겐 신원권인 거죠.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고, 그다음에 수습할 수 있는 권리·치유의 과정 이런 것들을 다 전체적으로 신원권으로 보는 건데, 스텔라데이지호의 사례도 거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거죠. 인용은 안 됐지만 우리는 적어도 소수의견을 담았고, 그 과정에서 진정을 낸 유족 측으로부터도 당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했고, 그리고 또 소수의견이었지만 그 설파된 논리로 위안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태원 건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다른 많은 진정 사건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떻게 보면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이 많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나 세월호 같은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 하는 점은 정확히 기록해둬야 합니다. 인용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이해를 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어찌됐든 유족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런 역할은 사실 거의 최소한의 역할이에요. 하여튼 인권위가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인권침해가 기존법이나 법을 포함한 규범, 정책·제도·문화 이런 것이 완전히 잘못돼 있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는 그런 것이 형성돼 있어도 거의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도 어딘가에서는 그 부분을 짚어주면서 이게 제자리, 제 궤도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예컨대 정부나 정부기관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이게 잘 안 되니 누군가는 지적해주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하고요. 결국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독립된 합의제 기구로 만들어놓은 거죠.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나 현 정부가 어떤 특정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면 인권위가 그걸 그대로 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집회방해 구제 진정 기각 건도 그렇고 ‘윤석열차’ 논란도 그렇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석원정 전 인권위원/조태형 기자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로 오는 인권위원들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된 문제였습니다. 인권위의 미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논란이 됐던 ‘현병철 인권위 2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비관론도 있었고요. 문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이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건데….

“어떤 특정한 이슈를 놓고 위원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게 인권적이냐 반인권적이냐는 분명히 다른 결의 문제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게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분들의 인권 감수성이에요. 물론 모든 사람이 이걸 다 갖출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적어도 인권위원 직을 맡았으면 최소한 그때부터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분들이 왜 인권위원회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여기에 온 게 인권위를 짓밟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달리 어떻게 해석할 방도가 없는 거죠.”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빨리 쫓아내고 자신 중 한명이 위원장이 되거나 다른 인물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는 건가요.

“본인들이 인권위원장을 맡고 싶어서 그러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현재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조기에 사퇴시키려 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위원장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공개적인 회의 석상에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데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글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 |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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