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바꾸자" 목소리 높여도 통과율 5%불과한 주주운동

김사무엘 기자 2023. 11. 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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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뭉치는 개미들 ②]소액주주 주주제안 가결율 아직 낮아. 가능성 있지만 갈길도 멀
[편집자주] 오너와 경영진들의 범법행위로 상장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을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인수하려는 시도가 잇따른다. 예전에는 의결권 취합이 어려워 개미의 표가 모래알에 그쳤지만 전자투표 도입과 의결권 위임 플랫폼이 등장해 힘을 결집하기 쉬워졌다. 개미들의 표가 모이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넘보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행동주의 개미의 등장은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도 폭풍의 핵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증시에서도 소액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 지고 있지만 찻잔속 태풍에 그친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소액주주들의 활동이 현저히 적을 뿐더러 목소리를 내더라도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들인 노력과 시간, 비용에 비해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한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한 데 모으기도 쉽지 않다. 소액주주 운동이 기업의 체질 개선보다는 단순히 시세차익만을 노리기 위한 이슈 몰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선진국형 주주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올해 열린 정기·임시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연대의 주주제안이 안건으로 상장된 기업수는 18곳, 개인주주 안건이 상정된 기업수는 14곳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63.6%(7곳), 180%(9곳) 증가했다. 최근 3년간 추이를 보면 소액주주 연대와 개인주주의 주주제안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주주제안은 회사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안건을 상정하는 행위로 대표적인 주주행동주의 중 하나다. 잘못된 경영으로 회사에 피해를 일으킨 경영진에 대해 이사·감사의 선임이나 해임 안건으로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고 배당 확대나 정관변경 등의 요구도 가능하다.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정작 실효성은 떨어진다. 소액주주가 주주제안을 하더라도 실제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은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2021년 주총에서 제안된 소액주주 안건의 가결률은 1.5%뿐이고 개인주주 제안 안건은 3.3%만이 가결됐다. 이마저도 지난해에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올해는 소액주주 연대의 주주제안 가결률이 17.1%, 개인주주 가결률이 13.8%로 확 늘었는데, 개인주주의 경우 SM(에스엠)엔터 주총에서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가 제안한 안건이 통과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21건은 모두 부결됐다.

최근 3년 간 개인 주주제안의 평균 가결률은 5.7%에 불과하고 소액주주 연대가 상정한 주주제안 역시 코스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소액주주 운동이 겉으론 요란하지만 실제론 찻잔속 태풍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결률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지분율이다. '1주1표' 원칙하에서는 지분율 확보가 중요한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유독 높은 국내 증시 특성상 소액주주가 아무리 지분을 모으더라도 표대결에서 이기긴 쉽지 않다. 결집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주주행동이 힘을 얻으려면 충분한 의결권을 모아야 하는데 비용 문제가 또 다른 걸림돌이다. 의결권을 모으기 위한 위임장 대행사 비용부터 변호사 자문비, 각종 행정 절차 등에 소요되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수천만원의 비용 집행을 감수해야 한다. 주주들이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마련 할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부담하지 않으려는 무임승차 주주들 때문에 대부분 소액주주 연대는 자금 부족 문제를 겪는다.

비용 문제는 소액주주 운동의 동기부여와도 직결된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소액주주 운동을 통해 피해보상이나 주가 상승 등으로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면 얼마든 주주행동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주행동을 통한 보상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주주제안의 영향력이 미미할 뿐 아니라 설령 주주제안이 받아들여 져도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피해보상도 마찬가지다. 소액주주의 주주활동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등으로 주주들이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충분히 구제받을 수 있다. 메릴린치 인수 과정에서 회사 부실로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한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주주들에게 24억3000만달러(3조2000억원)를 배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회사를 상대로 한 주주들의 권리 요구가 빈번하기 때문에 투자자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도 많다.

우리나라에도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증권집단소송제는 회사의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주주들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로 국내에선 2005년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후 15년 간 제기된 증권집단소송 건수는 10건에 불과하다. 재판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참여 유인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다.

주총 과정에서도 회사의 불공정한 의사 진행이나 각종 편법 등으로 주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병원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소액주주들이 어렵게 의결권을 모아 주총에 가더라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무효 선언을 해 버리면 그만"이라며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소액주주 운동이 활성화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투자문화를 꼽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증시에 비해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단타나 테마주 위주의 투자가 많다보니 주주 대부분이 기업의 체질 개선보다는 단기적인 주가 상승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소액주주 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액주주 운동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이슈 몰이에 성공하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뛰기도 하는데 이때 소액주주 운동에 참여했던 주주 일부가 이탈해 차익실현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무자본 M&A(기업 인수·합병) 세력이나 최대주주에 반대하는 또 다른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탈을 쓰고 회사를 공격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주제안은 경영권 위협을 목적으로 하는 이사 후보 추천 등의 안건이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다"며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우기 위해 기업의 취약한 고리를 건드려 이슈화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소액주주 운동이 건전한 방향으로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 보완도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기업이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어권도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장사협회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권리가 인정되는 만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3%룰(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로 제한하는 규정)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적절한 규제 완화와 개선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한국의 소액주주 운동은 실패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며 "주주들이 총의를 모으는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에 이를 정당하게 반영시킬 수 있는 절차만 마련된다면 소액주주 운동은 더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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