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빨고’ 선보인 노래와 연기, 예술이라면 다 용서될까

한겨레 2023. 11. 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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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이 지난달 28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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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좋아하던 가수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께 마약이 뭔지 물어봤고, 일기까지 썼던 기억이 난다. 약사였던 아버지가 어떤 설명을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팝 음악과 할리우드 영화에 점점 더 빠졌던 나는 그런 뉴스를 계속 접해야 했다. 전설로 추앙받던 아티스트들의 사망 원인이 죄다 마약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블루스록의 여왕 재니스 조플린…. 셋 다 27살에 약에 취해 죽었다.

이런 경험의 절정은 고등학생 때 알게 된 리버 피닉스였다. 우울하고 몽환적인 로드무비이자 청춘 영화 ‘아이다호’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주연을 맡았던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꽃미남이었다. 전성기 시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리버 피닉스의 매력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력도 일품. 리버 피닉스는 영화 속 캐릭터 그 자체였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청춘스타로 떠오르며 나의 우상이 된 그는 겨우 23살 나이에 사망했다. 역시 마약 과다 복용이 원인이었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스타들의 마약 파문이 훨씬 적었고 대부분이 대마초였다. 그러나 마약 청정국이라는 칭호를 잃은 지금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부쩍 마약에 손을 많이 댄다. 필로폰, 코카인, 합성 대마, 케타민, 프로포폴 등 약물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근 배우 이선균도 대마초 외에 다른 마약까지 투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유아인의 경우엔 종류가 많아 종합 마약 세트 수준이었다. 마약 수사 전문가로 검찰에 몸담았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유아인을 변호해,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과정은 씁쓸한 블랙코미디였고.

지드래곤도 이번에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선균보다 파장이 덜하다. 가정적이고 모범적인 이미지였던 이선균과 달리, 자기 노래 제목처럼 삐딱한 이미지로 일관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마약 혐의로 수사받는 게 이번이 두번째여서 대중이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번째여서 더 문제다. 마약 사범이 처음 걸렸을 때 하는 변명은 다들 비슷하다. “호기심에 저지른 실수입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유아인이나 필로폰 상습 투약자였던 돈 스파이크가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도 초범이어서다. 두번째라면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하며 우리 시선도 더 엄격해져야 옳다. 지드래곤은 자신이 투약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으니 일단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자.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지드래곤은 지난달 30일 결백을 주장하며 경찰에 자진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마초에 관해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주장도 있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기준도 다를 수밖에.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장을 한달 정도 갔던 적이 있는데 저녁에 술 마실 곳이 없어 정말 애를 먹었다. 24시간 쉽게 술을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거의 금주법 수준으로 느껴졌다. 술에 대해 이렇게 엄격한 캐나다에서 대마초는 합법이다. 각자 자기 나라 법을 따르면 될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조차 대마초 사범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따가울지라도 실제 법 적용은 국민의 법 감정보다 관대하다. 오히려 마약 사범의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마약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증폭시켜준다는 주장도 있다. ‘약 빨고 만든 노래’ ‘약 빤 연기’ ‘약 빨고 쓴 소설’ 등의 표현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 이런 담론에 경도되어 예술가나 연예인들에게 마약은 필요악일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토록 좋아하고 추앙했던 스타들이 그렇게들 약에 절어 지냈으니 더더욱 그랬다. 지금은 고민이 사라졌다. 마약 사범의 직업이 형량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며 예술가라는 이유로 정상참작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마약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악이 될 수 없다.

다만, 마약을 한 가수나 배우의 창작물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개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나는 이선균이 마약을 했다고 해서 그가 출연했던 ‘기생충’이나 ‘나의 아저씨’의 가치에 흠집이 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다크 나이트’ 시리즈 최고의 조커는 히스 레저이며, 짐 모리슨이 마약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무대에 섰던 공연 실황을 앞으로도 보고 들을 것이다. 빅뱅의 ‘메이드’ 앨범은 지금 들어봐도 웰메이드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떤지?

덧붙이자면, 경찰 발표가 나오기 전에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과 유튜버들의 행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억울하게 이름이 오르내린 당사자의 실추된 이미지는 어떻게 보상해주려고? 대중을 저급한 호기심에 중독시켜 돈 버는 클릭 장사, 이제 그만합시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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