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자네의 드럼을 들으러 온다네” [음란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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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드럼을 배웠다.
3년 정도,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축구를 그만두고 이제 막 드럼을 시작한 생초보 다마다였다.
다른 두 (친구이자) 멤버의 수준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악전고투하던 어느 날, 관객 중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공연이 끝난 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그에게 가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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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드럼을 배웠다. 3년 정도,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훌륭한 선생 덕분이었을 것이다. 매주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게 느껴졌다. 내가 연주 가능했던 가장 어려운 곡은 뮤즈의 ‘타임 이즈 러닝 아웃(Time Is Running Out)’이었다. 물론 뮤즈 원곡에서 여러분이 들을 수 있는 드럼과 나의 연주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겨우 흉내만 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였을까. 〈블루 자이언트〉 원작 만화를 봤을 때도, 얼마 전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도 계속 눈길이 간 건 주인공 다이가 아니었다. 축구를 그만두고 이제 막 드럼을 시작한 생초보 다마다였다. 다른 두 (친구이자) 멤버의 수준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악전고투하던 어느 날, 관객 중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공연이 끝난 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그에게 가서 말한다. “자네… 좋아지고 있어. 난 자네의 드럼을, 성장하는 자네의 드럼을 들으러 온다네. 자네의 드럼은 좋아지고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갓 데뷔한 뮤지션이나 밴드가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건 냉엄한 비판보다는 따스한 격려일 것이라고.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그 사람이 지닌 가능성의 날개를 더욱 크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온기 있는 한마디다. 과학자들도 증명하지 않았나. 인류의 진화를 이끈 건 타인을 대하는 다정함에 있었다고.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만화라는 찬사를 얻은 바 있기에 역시 가장 중요한 성취는 애니메이션 속 음악이 어떻게 구현되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한 뮤지션은 우에하라 히로미다. 만약 당신이 재즈 팬이 아니라면 낯선 이름일 수 있다. 요점만 뽑아서 정리하면 우에하라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저 유명한 스탠리 클라크 트리오의 멤버로 그래미를 수상했고, 엄청 유명한 재즈 클럽 블루노트 뉴욕에서 13년 연속해 공연을 펼쳤다. 베이스 연주자 앤서니 잭슨, 드러머 사이먼 필립스가 참여한 4집 〈스파크(Spark)〉(2016)로 빌보드 재즈 차트 1위에 올랐다.
일단 고증을 통한 재현이 빼어나다. 연주 싱크는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맞춰졌고, 레코딩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수준이다. 최종본을 결정하기까지 테이크를 수십 번 반복했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이지만 상황이 좀 더 여유롭다면 돌비 시스템이 구비된 곳에서 관람하길 강력히 추천한다. 러닝타임의 4분이 1이 라이브 신이다.
굳이 원작 만화를 볼 필요까지는 없다. 한데 만약 원작을 못 본 상태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경험했다면 이후에라도 만화를 꼭 펼쳐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총 10권을 2시간으로 압축했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 여럿인 까닭이다. 하나 더. 도리어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 애니메이션에 추가된 신도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 쓰도록 한다.
혹 나이 먹은 탓일까. 분야가 무엇이든 “자신의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내듯 최선을 경주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괜스레 눈물이 차오른다. 원작과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두근거리는 마음,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일 테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누군가의 눈부신 현재를 바라보는 경험은 언제나 즐겁고, 벅차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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