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 [반려인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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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화자로 내세운 작품이다.
그러나 사실 온전한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영화나 소설 같은 서사 장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물결과 무관하게 우리에게 그러한 경험을 간혹 선사해왔다.
당나귀의 수난사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는 단순히 핍박받는 동물을 가엾게 여기는 태도에서 멈추거나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인간의 입장을 설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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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화자로 내세운 작품이다. 고양이는 자신이 함께 살게 된 주인과 그 주변인들을 관찰하며 세상만사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과 한탄을 쏟아낸다. 이름도 없던 이 고양이는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최고의 화자 중 하나가 되었다.
문학사에는 개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도 많다. 그중 단연 멋진 것은 존 버거의 〈킹〉이다. 거리의 개 ‘킹’은 유럽 어느 도시에서 자신이 겪은 노숙인들의 삶을 바라보며 당대 사회를 묘사한다. 이런 소설들이 그리려 시도하는 대상은 물론 동물이 아닌 인간 쪽이다. 동물의 시점을 빌려 인간 군상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세상을 바라보던 익숙한 관점에 어떤 균열을 냄으로써 현실의 이면을 폭로하는 것이다.
인간중심적 사고의 한계에 대한 오늘날의 성찰은 동물이나 사물 같은 비인간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제안한다. 그러나 사실 온전한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 간에도 어려운데 그 타자가 비인간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협소한 시야 속에 살아가더라도, 무언가를 경유해서 타자의 시선에 잠시 깃들어볼 수는 있다. 영화나 소설 같은 서사 장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물결과 무관하게 우리에게 그러한 경험을 간혹 선사해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당나귀 EO〉는 타자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에 관한 한층 진지한 실험이다. 카메라는 ‘EO’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회색 당나귀의 삶을 뒤쫓는다. EO는 서커스단을 떠나 숲과 벌판, 마구간, 축구장, 모피 공장 등을 거치며 뚜벅뚜벅 여정을 이어나간다. 세상을 떠도는 동안 좋은 사람도 만나고 악한 사람도 만난다. EO의 눈을 통해 본 인간 세상은 방향을 잃은 폭력과 욕망으로 가득하다.
당나귀의 수난사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는 단순히 핍박받는 동물을 가엾게 여기는 태도에서 멈추거나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인간의 입장을 설파하지는 않는다. 동물의 시선을 빌리되 여전히 인간 중심의 관점에 머물러 있는 어떤 판단을 내려버리기 전에, 영화는 EO의 맑은 눈동자와 그 눈에 비친 것을 공들여 보여준다. EO의 시선을 경유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간극을 끊임없이 질문한다.
가끔 침대 발치나 소파에 드러누워서 나를 빤히 관찰하고 있는 나의 고양이를 볼 때면, 저 생명체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흘러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표정이 없는 동물이다. 그러나 말없이 주시하는 눈동자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내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종족의 세계다. 그러다 드물게, 그 작은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눈동자를 통해 나를 비춰보는 일이, 내 경험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거울을 통해 나를 보거나 유리처럼 바깥으로 난 창구를 통해 사람들을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다.
개와 놀아줄 때 진심으로 개를 즐겁게 해주려면 나 자신이 개라고 여겨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럴 때 개와 노는 사람은 견고한 기존 인식 체계를 잠시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고 느껴야 할 것이다.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 감각하고 판단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배울 기회를 얻는 것이다. 반려인의 오후는 그런 기이한 순간들과 더불어 흘러간다.
김영글 (미술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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