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몰린 상장사, 표 모아 경영권 인수 나선 개미들

홍순빈 기자 2023. 11.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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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뭉치는 개미들 ①]정리매매 No! 차라리 우리가 인수해 정상화 시킬께!
[편집자주] 오너와 경영진들의 범법행위로 상장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을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인수하려는 시도가 잇따른다. 예전에는 의결권 취합이 어려워 개미의 표가 모래알에 그쳤지만 전자투표 도입과 의결권 위임 플랫폼이 등장해 힘을 결집하기 쉬워졌다. 개미들의 표가 모이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넘보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행동주의 개미의 등장은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도 폭풍의 핵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상장폐지 심사대에 오른 기업들을 바로잡기 위해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나선다. 주주들의 지분을 '영끌'해 최대주주 자리를 위협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 분쟁을 주도했다면 이제 개인 투자자들의 행동주의 시대가 펼쳐진다. 실제 기업의 체질 개선을 이룬 사례도 나오는 한편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3일 이화그룹 소액주주연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에 따르면 소액주주들의 이화전기 지분율은 지난 2일까지 22.25%가 모였다. 이화전기 최대주주(이트론 외 1인)의 지분(24.44%)과 약 2.19%포인트(p) 차이다.

소액주주들은 이화그룹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태가 벌어진 지난 5월부터 지분을 모았다. 이화전기는 이화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다. 이화그룹은 '이화전기→이아이디→이트론→이화전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이들 중 이화전기가 최대주주 지분율이 가장 낮다. 소액주주들은 경영권 확보가 비교적 쉬운 이화전기에 화력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날 기준 액트에 모인 이아이디, 이트론의 지분율은 각각 19.69%, 12.39%으로 최대주주와의 지분율 격차는 11.57%p, 17.16%p다.

이화그룹은 현재 소액주주의 지분 모으기 움직임에 맞대응하고 있다. 이화전기의 최대주주는 지난 10월 보유하고 있던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소액주주들은 향후에도 추가 지분 모으기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김현 이화그룹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그간 이화전기 측이 이번 사태 해결과 관련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며 "주주들이 뭉쳐 기업 정상화에 나설 것"라고 했다. 이어 "세 회사 모두 거래재개가 되는 걸 목표로 지분 40~50%까지 모으겠다"고 했다.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로 유출한 혐의 등을 받는 이화그룹 김영준 회장(왼쪽)과 김성규 총괄사장이 지난 5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제공

지분 10% 모으기도 거뜬…개미들, 기업 경영권 분쟁 서막 연다
이화그룹뿐 아니라 다른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의 소액주주들도 집결하고 있다. 액트를 통해 모인 소액주주 지분율은 대유(15.45%), 셀리버리(14.76%), DI동일(12.84%), 위니아에이드(10.93%), 조광ILI(6.52%) 등이다.

주로 상장폐지 심사대에 있거나 지배구조가 복잡해 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는 기업들이 그 대상이 됐다.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9위까지 올랐던 바이오 기업 셀리버리는 지난 3월 감사의견 거절로 상폐 위기에 처했다. 주주들은 경영진이 회사 정상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최대주주 변경을 목표로 지분을 모으고 있다.

과거엔 소액주주들의 지분 10% 모이는 게 힘들었다. 주주연대가 결성된다고 하더라도 주주명부를 확보해 개별 주주에게 일일이 연락해 소액주주운동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제가 도입되고 소액주주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전자투표제는 주주들이 PC, 스마트폰 등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다. 2017년 섀도우보팅 제도가 폐지된 후 의결정족수 확보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전자투표제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소액주주들도 이에 따라 플랫폼을 통해 정족수를 모으고 편리하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개미들의 경영권 분쟁…성공할 수 있을까
내년부턴 소액주주들이 최대주주로 나서며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템임플란트, SM(에스엠)엔터테인먼트 등을 둘러싼 큰손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경영권 분쟁이 주를 이뤘다면 이젠 개인 투자자들이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행동주의가 식상할 정도로 개인 투자자들이 전면에 나서며 기업들에 지배구조 개선 등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기관 투자자 못지 않게 기업의 경영자로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났기에 향후 기업들의 주가 상승, 주주환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사한 성공 사례도 있다. 골판지 제조업체인 아세아제지는 지난 7월 배당 확대, 자사주 취득 및 소각, 중장기적 IR활동 등의 내용을 담은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앞서 아세아제지 소액주주들은 소액주주 행동주의 플랫폼인 '헤이홀더'를 통해 아세아제지 지분 5% 이상을 모았다.

지난해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현재 풍산, SK이노베이션, 후성 등의 소액주주들이 더 모여 '기업지배구조 혁신 주주연합'으로 이름을 바꿔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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