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미용 성형수술, 전쟁터에서 시작됐다
● 통증과 이차감염을 해결하지 못한 고대인들도 수술을 했다
사람들이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7?)가 태어나면서부터다. 그는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사고에서 벗어나 질병이 인체 내부에 있는 구성요소들의 불균형 또는 인체 내부와 외부의 부조화에 의해 발행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 이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은 사람 스스로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그로부터 인류는 질병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의학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그 속도는 아주 느렸고 어떤 약초를 먹는 것이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해서만 지식이 늘어갔을 뿐 근대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치료에 있어서 발전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술법은 꾸준히 발전해 왔고 역사도 기원전으로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 수술이란 몸에 생긴 필요없는 부분을 칼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잘라내는 방법이다. 몸에 칼을 대고 뭔가를 자른다고 가정하면 아프고, 피가 흐르고, 칼로 자른 부위를 싸매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지금도 수술을 한다고 하면 이런 생각이 흔히 들곤 하는데 의학이 발전하지 않는 수천년 전에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날에는 마취제가 이용되고 있다. 수술 후에 몸에 상처가 생겨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이 몸에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균처리를 한다. 이런 일은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 이전에는 수술을 하는 경우 엄청난 통증을 참지 못한 이들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증과 수술후의 이차감염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인 것은 19세기의 일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고대의 성형수술에 대해 소개를 하고자 한다.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의 어원인 “plastikos”는 그리스어로 “모양을 만들다”는 뜻을 지닌다.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성형수술은 정상적인 기능과 외모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재건 시술과 심미적 매력을 높이는 미용 시술을 모두 포함한다.
● 수술역사의 초창기를 장식한 인도의 성형수술
오늘날 성형수술이라 하면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성형수술의 시초는 몸에 생긴 손상을 재건하는 수술이었다. 성형수술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약 29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제3왕조시대에 피라미드를 세운 건축가이자 의사로 알려진, 실존 인물인지 전설속의 인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임호텝(Imhotep)이 썼다고 알려져 있는 파피루스에 코를 재건하는 수술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은 코의 바깥쪽에 외상을 입었을 때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또 기원전 1550년 무렵에 씌어진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조직을 이식하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당시 의학수준을 감안하면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한 조직 이식수술이 얼마나 자주 행해졌으며, 수술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술된 내용을 보면 고대문명의 의학 지식과 기술 수준이 오늘날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수준보다 꽤 높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 성형수술은 인도 문명지역에서 발달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약 600~700년경에 인도에서 코 재건술이 행해졌다. 수술 방법은 코가 손상되는 경우 엉덩이나 사타구니 등의 피부를 떼어서 손상이 생긴 코에 붙여 줌으로써 모양을 좋게 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인도 최초의 외과의사 수쉬루타(Sushruta) 는 자신이 쓴 '수쉬트라 상히타(Sushruta Samhita)'에 코와 귀의 성형술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인도에서 귀와 코 재건술이 발전한 것은 귀와 코 손상이 흔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악한 기운을 물리칠 부적을 지니고 다니기 위해 귀에 구멍을 뚫는 경우가 많았고 절도 등 죄를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코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쉬트라의 책에는 귀를 재건하는 방법이 15가지나 기술되어 있고 코를 재건하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피부이식과 같은 원리를 사용했다. 정교하게 다듬은 나무관을 이용하여 콧구멍을 재건하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이집트와 인도 외에 로마에서도 비슷한 수술이 행해졌다. 셀수스(Aulus Cornelius Celsus, BC 25~50)는 '의학에 관하여(De Medicina)'에 로마에서도 손상받은 귀, 입술, 코를 재건하기 위한 수술 방법을 기록해 놓았다. 또 이 수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자 유럽에서 많은 분야가 그랬듯이 성형수술에 대한 내용도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채 한 밀레니엄을 흘러보냈다.
로마 의학 작가인 오리바시우스(Oribasius, 320~403)는 70권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을 편찬하면서 안면 결함을 복구하기 위한 재건술 등 성형수술에 대한 다양한 예를 소개했다. 그 외에도 인도, 이집트, 그리스 등에서 성형수술에 대한 내용이 발견되곤 한다.
● 근대 이후에 시작된 성형수술의 2차 발전
재건 수술은 중세 초기에도 계속되었지만 로마의 몰락과 기독교의 확산으로 인해 더 이상의 중요한 발전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었다. 기독교 중심의 중세사회는 이성적인 학문 탐구보다 종교에 집중했으므로 어느 분야든 신속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이노첸시오(인노켄티우스) 3세(1161~1216)는 어떤 형태의 수술이든 교회법에 의해 명백히 금지된다고 선언했다. 유럽에서는 발전이 거의 없었지만 이슬람교가 득세를 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10세기에 구순구개열 수술법이 개발되는 등 약간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 시기가 되자 과학과 의학도 서서히 발전을 위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이슬람 지역에서 사번쿠오글로(Serafeddin Sabuncuoglu)가 '장엄한 외과(Imperial Surgery)'를 발행했다. 이 책에 악안면과 눈꺼풀 수술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또 유방 축소 수술법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치료방법도 기술되어 있다.
인간중심의 사고가 팽배한 르네상스 재건술과 미용수술 모두 여명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피부 이식술에 대한 개념이 보편화하고 구순열과 구개열을 치료할 가능성도 커져가고 있었다.
1460년에 폴스포인트(Heinrich von Pfolspeundt)는 팔의 뒷부분에서 피부를 잘라 내어 코 부위에 옮겨붙임으로써 코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에게 새로운 코를 만들어 주는 방법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독일 최초로 외과에 대한 책을 남긴 그는 주로 붕대를 감는 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를 책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코 성형술을 비롯하여 수술법에 대해서도 일부 기술해 놓은 것이다.
그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전쟁터를 따라다니며 화살이나 총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테레빈유로 상처부위를 소독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약 100년 후 “외과의학의 아버지” 파레(Ambrois Paré)가 사용하고 발전시킨 방법이기도 하다.
17세기의 소강상태를 벗어난 성형수술은 18세기 후반부터 발전을 시작했다. 1791년에 목의 피부를 이용하여 입술을 수술한 기록이 있고, 1814년에 카르푸에(Joseph Carpue)는 수은을 이용한 치료를 시행하다 독성에 의해 코를 잃은 영국군 장교에게 재건수술을 했다.
1818년에는 그라페(Carl von Graefe)라는 독일 의사가 '코재건술(Rnihoplastik)'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그라페는 포스포인트가 기술한 방법을 변형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한편 미국의 메타워(John Peter Mettauer)는 1827년에 자신이 개발한 수술기구를 이용하여 최초로 선천성 구개열을 수술하는데 성공했다. 1845년에 디펜바흐(Dieffenbach)는 코재건술에 대한 새로운 책을 쓰면서 재건수술을 한 코를 한 번 더 수술하여 미용상 좋게 만드는 방법을 기술함으로써 미용을 위해 성형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주었다.
마취제와 무균처리법이 발견된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향상된 수술법이 많이 개발되어 아래에 기술할 피부를 이식하는 시술이 행해지게 되었다.
● 미용성형수술의 발전
화상 등 몸에 큰 손상을 입는 경우 성형을 통해 원상태로 복구해주는 것이 성형수술의 원래 목적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재건술보다는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이 일반인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은 20세기에 들어선 직후부터 널리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은 피부이식이었고 뼈·연골·신경·근육·점막 등 여러 조직의 이식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성형수술이 크게 발전한 것은 의학발전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중증 전상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쟁중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대상을 처음에는 손상을 치료하여 살리는 일에 집중했지만 수술방법이 발전할수록 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견상 모양을 더 잘 갖추게 해 주기 위한 미용성형수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군의관들은 새로운 무기에 의해 발생하는 인체의 부상을 치료해야 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재건수술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수술방법이 개발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미용을 위한 수술법도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손상된 부위를 재건시키는 것은 물론 이왕이면 더 보기좋게 만드는 것이 환자의 사회복귀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심각한 안면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잘 치료함으로써 “현대 성형외과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길리스(Harold Gillies)는 다양한 성형수술법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길리스는 다른 선구적인 의사들과 협력하여 안면 재건을 전담하는 전문 부서와 병원을 설립했다.
길리스는 피부 이식, 수술과정에서 혈류 유지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성형외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미세수술 기법이 발전하는 등 전상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연간 1200만건이 넘는 미용성형수술이 행해진다는 통계 자료가 있을 정도로 미용성형아 보편화하고 있다. 그래도 몸에 칼을 대야 하니 시술결과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으므로 시술전에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하여 장점과 부작용을 확실히 인지한 후에 시술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형수술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적 사용을 위해 귀와 코를 뚫는 문화가 귀와 코 재건술을 발전시키고, 전상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과정에서 재건술과 미용수술이 동시에 발전했다. 의학의 발전은 역사, 사회, 문화 속에서 발전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1. Philippe Hernigou. Medieval orthopaedic history in Germany: Hieronymus Brunschwig and Hans von Gersdorff. International Orthopaedics (SICOT) (2015) 39:2081–2086
2. American Cosmetic Asssociation(ACA) Reviewers. The History of Plastic Surgery. https://www.cosmeticassociation.org/the-history-of-plastic-surgery/. 2023. 5. 3
3. 엘리자베스 하이켄. 비너스의 유혹-성형수술의 역사. 권복규, 정진영 역 문학과지성사. 2008
4. 쿤트 헤거.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김정미 역. 이룸. 2005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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