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성공'이 부른 참사…"이러다 공중분해" 카카오 제국 '흔들'

최우영 기자, 김승한 기자, 이정현 기자 2023. 11.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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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위기의 카카오, 환골탈태의 시점(上)
[편집자주] 국내 대표 IT기업 카카오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부터 카카오택시의 독과점 논란까지 연일 정부와 수사당국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10여년 동안 급격히 외연을 넓혀온 이면에는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과 윤리 등 기초체력을 충분히 기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카카오가 역경을 딛고 다시금 사랑 받는 국민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尹대통령도 "부도덕"…직원 20명→대기업 됐지만 '형·동생 문화' 여전
-스타트업 문화 벗어나 대기업 걸맞는 시스템·강령 갖춰야
경기 판교의 카카오 아지트. /사진=뉴시스

IT공룡 카카오가 밑바닥부터 요동치고 있다. 창업자는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로에 서고, 주요 계열사 사업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부도덕하다"고 비판했다. 카카오 임직원들은 과거 공중분해됐던 국제그룹을 떠올리며 카카오 공동체 전체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카오가 급격히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부 시스템과 경영진의 의식이 여전히 스타트업 수준에 머물렀던 게 지금의 참사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현 시점에서 사회적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과 윤리·준법 행동강령을 만드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선다면 다시금 국민들에게 사랑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건강한 대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직원 20명 스타트업, 10년만에 IT업계 최초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

업계에서는 '카카오톡'이 출시된 2010년부터 지금의 카카오 그룹이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 카카오의 전신은 2006년 11월 설립된 아이위랩이다. 카카오톡이 나오기 전인 2009년만 해도 아이위랩은 직원 20여명 수준의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2010년 3월 아이폰용 카카오톡이 출시됐고 같은 해 9월 안드로이드폰용 카카오톡이 나오면서 사명도 카카오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2010년 매출은 34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카카오톡 출시 초기만 해도 카카오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스타트업 중 한 곳일 뿐이었던 셈이다.

2010년 출시한 카카오톡이 국민메신저로 자리매김하면서 카카오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4년 10월 플랫폼 양대 기업이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합병하며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이후 모빌리티, 게임, 엔터테인먼트, 금융, 증권, 결제시스템 등 다양한 계열사를 꾸리며 승승장구했다.

2019년 5월엔 네이버보다 앞서서 IT업체 최초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2022년 연간 보고서 기준 본사 직원만 3901명이었다. 17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연결기준 연매출 7조1071억원, 영업이익 5803억원을 거두는 명실상부한 대기업 그룹이 됐다.

스타트업 '형·동생 문화'가 화 불렀다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서비스 불통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남궁훈 전 카카오 각자대표가 올해 스톡옵션을 행사하며 94억원의 차익을 남겨 주주들로부터 질타 받았다. 남궁 전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삼성SDS시절 후배로, 한게임 창업 시기 개발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김범수 의장이 만든 PC방 프로그램을 판매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던 김 의장의 '동생'이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급격히 성장한 외형에 비해 내부 시스템은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미래전략실 등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세웠던 다른 대기업과 달리 카카오는 계열사별 '자율 경영'을 내세웠다. 스타트업 정신에 입각해, 오너십이 계열사 독립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의 스톡옵션 먹튀사태, 개별 경영진의 '실적 지상주의' 등 도덕적 해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아직도 카카오의 마인드는 '형·동생'하며 이끌던 작은 스타트업 수준"이라며 "스타트업에선 형·동생 간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이제는 대기업으로서 사회적으로 용인 받을 수 없게 됐는데, 아직 '태'를 못 바꾸고 옛날 수준의 조직관리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정운오 서울대 경영학 명예교수 역시 "최근 카카오의 위기는 단순한 성장통 수준이 아니라,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내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터져 나온 것"이라며 "한두 건이 아닌 수많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윤리경영 지킬 강령 마련하고 감시기구에 실효성 부여해야

카카오톡 가입자가 2500만명 수준이던 2011년 10월 '스타트업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카카오톡이 꿈이 묶여있는 젊은이들에게 그 꿈을 훨훨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이 됐으면 한다"며 "카카오톡을 통해 음악이건 책이건 동영상이건 콘텐츠 하나로 전 세계에 퍼뜨틸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카카오톡을 젊은 친구들이 활개칠 수 있는 툴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전문가들은 카카오가 한국 사회의 윤리 기준에 맞추고 진정한 대기업 수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덩치에 맞는 행동강령 제정과 함께 준법경영을 감시할 기구를 마련해 전폭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강령 제정과 권한 부여는 결국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에 달려있다는 설명이다.

유병준 교수는 "IT기업들이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갔던 선례가 부족한 만큼 제조업 분야 등 다른 선배 기업들이 그동안 진행해 온 체질 개선 및 쇄신 방안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업 행태 등에 대해 그룹사 전반이 공유할 수 있는 행동강령을 이번 기회에 세우지 못한다면 향후 더 큰 참사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운오 교수는 "외부 자문기구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김범수 의장이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슈 땜질용 기구가 아닌, 실제로 권한을 갖고 신뢰성 있는 감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카카오의 붕괴에 따른 국가 경제의 타격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흙수저 신화'였던 김범수, 고난의 길로… "기반없는 급속성장 허점 전형"
-유니텔·한게임·NHN의 아버지 김범수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에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머니S

국내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롤모델이자 '흙수저 신화'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사태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역대급 위기에 직면했다. 사실상 사면초가다. 단기간에 회사를 폭풍 성장시켜 그룹을 국내 재계 순위 15위까지 끌어올렸지만, 빨랐던 만큼 그 이면에는 후유증과 상처투성이다.

◆ 김범수, 경영일선 떠났지만...영향력은 여전

4일 업계에 따르면 김 센터장은 지난해 3월 카카오 의장 자리를 내려놓고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자리만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카카오의 미래 성장, 글로벌 사업에 몰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미래이니셔티브센터는 카카오 공동체의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조직이다.

수사당국의 해석은 달랐다. 김 센터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카카오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에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사태와 관련된 법리적 책임 소재를 김 센터장에게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도 그룹 중대 결정에 있어 김 센터장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이에 따라 주요 경영진에 이어 김 센터장까지 구속되면 카카오의 신사업 및 해외진출은 당분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악의 경우 김 센터장이 처벌받는 것은 물론 금융업 등 계열사에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 1·2인자들이 사법리스크에 휘말리며 리더십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이 우려된다"며 "사실상 주요 투자나 신사업 결정은 최고결정권자인 이들에 의해 이뤄지다 보니 공백이 장기화하면 카카오 투자시계는 당분간 멈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찬란한 1세대 레전드...빠른 성장 만큼 후유증도 커

김 센터장의 과거는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 삼성SDS에서 유니텔을 만든 그는 삼성을 떠나 1998년 한게임을 설립한 뒤 이해진의 네이버와 합병해 NHN을 만들었다. 이후 NHN을 떠났던 김 센터장은 2010년 카카오톡을 세상에 선보이며 '연쇄 창업가'의 대표주자가 됐다.

이후 성장속도는 눈부셨다. 카카오톡 기반으로 성장 틀을 갖춘 카카오는 2014년 '다음' 합병을 시작으로 거침없이 계열사를 늘려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63개였던 카카오 계열사는 올해 8월 기준 174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기업 중 SK그룹(198개)에 이어 두 번째로 계열사를 많이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재계 순위도 쭉쭉 상승해 올해 기준 15위를 기록했다. 시가총액 역시 2021년 6월 기준 75조원까지 오르며 그야말로 '카카오 제국'이 완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이 오히려 독이 됐다. 기반이 약했던 만큼 성장과정에서 여기저기 허점이 드러났다. 툭하면 불거지는 임직원 리스크,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문어발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매년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맞아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그간 카카오의 끊이지 않는 논란은 단단한 지반 없이 빠르게 성장한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 전형적인 예"라며 "카카오가 준비 중인 쇄신안에는 계열사 정리와 도덕적 해이 등을 해결할 문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리스크 지뢰밭, 컨트롤타워로는 '한계'

격랑에 빠진 카카오가 그룹 내 컨트롤타워 강화에 나섰지만 최근 연달아 터진 위기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특유의 자율경영 체제로 그룹을 빠르게 성장시켰으나 계속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등 한계에 부딪혔다. 카카오가 다시 선제적 리스크관리 체계를 세웠지만 또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자율경영 체제 자체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게 아니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 등 근본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9월말 CA(공동체 얼라인먼트) 협의체를 개편했다. 2021년 김범수 당시 이사회 의장이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뒤 CAC(공동체 얼라인먼트 센터)를 설치했던 것을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개편한 것이다.

CA 협의체는 카카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컨센서스를 이루고 고민하는 조직이다.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이사가 사업관리 부문을,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이 경영지원 부문을, 권대열 카카오 정책센터장이 위기관리 부문을, 현재 구속된 배재현 카카오 CIO(투자총괄대표)가 투자 부문을 각각 총괄하기로 했다.

CA 협의체 개편은 그동안 계열사 내부에서 준법감시기구나 컴플라이언스를 각자 운영해온 카카오가 컨트롤타워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동안 자율경영 체제 안에서 계열사별 이슈를 각개전투로 풀어내는 게 힘들어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계열사들이 하나의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각자도생하며 카카오 본사의 통제도 제대로 받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이처럼 카카오가 그룹 컨트롤타워를 강화해 나가자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자율경영 체제를 쉽게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대기업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마다 나오던 쇄신안 중 하나가 계열사별 독립경영 강화 또는 상장을 통해 그룹 오너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던 만큼 자율경영 체제가 갖는 장점도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과거 재벌집단의 경우 오너의 컨트롤이 너무 강했기에 쇄신안으로 자율경영 강화를 외쳤다"며 "이는 오너의 영향력을 희석해 윤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돌아봤다. 유 교수는 반면 "카카오는 자율경영 체제로 좋은 점이 있었다"며 "그룹 리스크 관리를 위한 방안이 반드시 컨트롤타워를 확대·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일을 하지 말자는 가이드라인이 분명해야 하고 임직원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스톡옵션 행사 등을 하지 말자는 등 강령을 세워놓고 못 지키면 물러나는 식으로 해야 한다. 카카오는 지금껏 실적만 내면 된다며 문제가 있어도 슬그머니 넘어갔던 게 문제였다"고 했다.

한편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한계를 느낀 카카오는 외부 감시기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카카오는 김소영 전 대법관을 '준법과 신뢰 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위원회는 카카오와 독립된 외부 조직으로 운영 규정에 따라 카카오 관계사의 주요 위험 요인 선정 및 그에 대한 준법감시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단계에서부터 관여한다.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관계사 상장, 공정거래법 위반, 시장 독과점, 이용자 이익 저해, 최고경영진 준법 의무 위반에 대한 감시 통제 등 카카오가 사회적으로 지적받았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관리 감독과 능동적 조사 권한을 갖는다. 위원회는 개별 관계사의 준법감시 및 내부통제 체계를 일신할 수 있는 강력한 집행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추가 외부 인사 영입 등 조직을 갖춰 연내 공식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지금 카카오는 기존 경영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빠르게 점검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경영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부터 준법과 신뢰 위원회 결정을 존중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계열사들의 행동이나 사업에 대해선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김승한 기자 winone@mt.co.kr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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