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신중 기하는 정부…'주 69시간' 논란 벗어날까
'장시간 노동' 논란 재연 부담…구체안 대신 방향성만 제시할 듯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지난 3월 '주 69시간' 논란 역풍에 멈춰 섰던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이 곧 다시 윤곽을 드러낸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13일 근로시간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와 개편 방향을 발표한다. 당초 8일 발표할 예정이었다가 정책 방향에 대한 최종 검토를 이유로 닷새 연기했다.
지난 3월 개편안 발표 당시의 논란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 정부가 신중을 기하는 가운데, '장시간 근로' 논란을 씻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주 52시간제 유연화 개편안, '주 69시간' 논란에 재검토
이번에 발표되는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노동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지난 3월 발표했던 개편안을 '보완'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주 최대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 근로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운영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주 최대 근무 가능시간은 하루 11.5시간씩 6일, 총 69시간으로 늘어난다.
일이 많을 때 몰아서 일하고 적을 때 오래 쉬게 하면서, 주 52시간 초과하는 '공짜 노동' 관행도 없앤다는 취지였지만,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데 대해 반발이 거셌다.
양대 노총은 물론 이른바 'MZ 세대' 노조까지 '과로사 조장법'이며 '역사 퇴행'이라고 비판하는 등 부정 여론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6∼9월 국민 6천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을 진행했으며, 설문결과를 토대로 개편 방향을 다듬고 있다.
노동부 신중 모드…구체안 대신 방향성만 제시 가능성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터라 노동부는 이번 발표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당초 추석 연휴를 전후해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설문 결과 발표는 11월까지 미뤄졌고, 8일로 공지됐던 발표 날짜도 13일로 연기됐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국감 당시 설문지를 제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설문지 구성과 결과 분석, 제도 개편 방안이 일체로 묶여 있는데 일부가 왜곡(돼 먼저 공개)되거나 혼선을 주면 제도 개선 논의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이번에 발표되는 것이 개편안이 아닌 "보완 방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개편을 위한 법 개정안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됐던 3월 발표 때와 달리 방향성만 제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방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제시될지는 불투명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개편안 보완을 지시하면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보완 개편안에서 주 최대 근무시간이 60시간이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69시간이든, 60시간이든 개편 방향 발표에 52시간을 넘는 숫자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다.
'주 52시간제 유연화'라는 기조를 유지한다고 하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 대신 업종별로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설문은 업종별 대상을 안배해 이뤄져 현행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을 업종별로 확인할 수 있다. 업종별로 선호하는 근로시간 제도가 다르면 이것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13일 발표 범위나 내용에 대해 "설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신중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노정관계 경색에 사회적 합의 관건
근로시간 문제는 사실상 전 국민이 이해 관계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경영계는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다수의 근로자는 장시간 노동으로의 역행을 우려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응답자의 46.7%가 주당 최장 근로시간으로 48시간이 적합하다고 답했다. 81.2%가 현행 주 52시간제를 유지하거나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여전히 주요국 대비 길고, 더 적은 근무시간과 더 자유로운 휴가 사용 등에 대한 직장인들의 열망이 큰 만큼 이와는 다른 방향의 개편안이 제시되면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선 정부도 국회도 국민 다수 삶의 질과 직결된 근로시간 개편을 시도하긴 부담이어서 동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노사정 소통이 필요한 사안인데 현재 사회적 대화가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한국노총은 지난 6월 정부의 "노동 탄압"에 항의하며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중단한 상태다.
양대 노총은 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개편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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