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출 챌린지' 누군가에겐 놀이 아닌 생존의 문제[만원의 한숨]⑤

이기범 기자 김유승 기자 홍유진 기자 2023. 11.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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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 인상에 걷기 바쁜 노인들…"장 보러 가는데만 3000원"
고물가 피해, 취약층에 먼저 집중…대중교통 공공성 강화·핀셋지원 필요

[편집자주] 2000년 '서민 음식의 대명사' 자장면 평균 가격은 2742원이었다. 만원이 있으면 세 끼를 먹고도 돈이 남았다. 그래서 한때 '만원의 행복'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으나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2023년 '자장면 7000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중에 있는 돈이 만원뿐이라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고물가 시대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뉴스1>이 집중 진단해봤다.

1일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2023.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김유승 홍유진 기자 = "교통비 안 쓰고 걸어서 무지출 성공했어요."

고물가 시대에 각종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 '현금 챌린지' 등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챌린지를 관통하는 정서는 '궁핍'의 놀이화다.

소비를 줄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을 통해 전시하고 즐기는 방식이다. 고물가 시대를 버텨내는 MZ세대식 '웃픈(웃기지만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 해법인 셈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 같은 챌린지가 '웃픈 해법' 차원을 넘어, 생존이 달린 문제로 다가온다. 바로 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우리사회의 취약계층인 사람들이다.

◇버스비 인상에 걸어다니는 노인들

"병원 다녀오는데 버스비가 너무 비싸서 걸어왔다."

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에 거주하는 조모씨(83·여)는 치솟는 교통비에 한숨을 쉬었다. 조씨는 허리가 불편한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이제 버스 탈 돈이면 두부 한모나 콩나물을 하나 사고 만다"고 말했다.

지난 8월12일부터 서울 버스 요금은 300~700원 올랐다. 서울시는 적자 해소와 해외 주요 도시 대비 낮은 요금을 인상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지하철이 닿지 않는 버스 교통권의 취약계층이 요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같은 동네 주민인 문모씨(65·여)도 "장을 보려고 해도 버스 타고 왔다갔다 하면 벌써 3000원이 없어져 버린다"며 "맨날 동네만 뱅뱅 돌아다닌다.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호주머니에서 돈이 없어지는데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문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노령연금과 합쳐 매달 62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모습. 2023.2.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고물가 고통

전문가들은 고물가에 따른 피해가 가장 먼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2021년 및 2022년 가구특성별 소비자물가 작성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5.1% 수준이었다. 그러나 '1인 및 지출상위 가구'에서 물가상승률은 4.8%, '60세 이상 및 지출중위 가구'에선 5.3%로 조건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교통비 인상은 취약계층의 경제 활동 범위를 좁혀 또 다른 복지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은 지난달 7일 1250원에서 1400원으로 12% 올랐다. 그럼에도 노인 무임승차 제도 폐지 여론은 여전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4년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보고서를 통해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해 2012년 기준 3361억원의 사회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는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해외 대중교통 요금정책 변화와 무제한 정기권 도입방향' 보고서에서 대중교통 비용부담의 계층성을 지적했다. "소득분위별 소득 대비 지출 비율을 보면 공공 교통 비용은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대비 지출비율이 높아지는 역진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또 "해외 각국에서 고물가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저렴한 무제한 정기권 도입, 대폭적인 요금할인 그리고 무상교통 등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통 요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전월보다 확대됐다. 정부는 계절적 요인이 완화되는 10월부터 물가가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고물가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남은 기간 물가 상승률이 희망적인 경우에도 3%대 중반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취약 계층의 난방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고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에게 에너지·소비 바우처를 핀셋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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