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터치] 북한, 러시아에 SRBM 주고 미그-29 받나
옛소련 합작 미그-29 조립생산공장 중단으로 부품 조달도 못해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하는 무기·장비류 가운데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이 탄약과 포탄 등을 대거 반출하는 정황이 위성사진 등에 포착되는 상황에서 SRBM 지원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국제사회의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북한이 최근 개발한 SRBM은 고위력 탄두뿐 아니라 소형 전술핵탄두까지 장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에 속해 살상 및 파괴 능력 등에서 그간 지원된 탄약류와는 비교할 수 없어서다.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와 호환이 가능한 방사포탄과 T계열 전차 포탄 등을 주로 지원한다고 봤지만, 우리 군 당국은 SRBM도 지목했다. 북한의 러시아 지원 품목에 SRBM이 지목된 것은 처음이다.
정부 소식통은 5일 "(SRBM 지원 가능성은) 다양한 출처를 종합해 볼 때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최근 개발해 양산 단계에 있는 KN-23(이스칸데르), KN-24(에이테큼스), KN-25(초대형 방사포) 등 신종 SRBM 3종 세트의 일부 지원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사거리 400∼800㎞ 이상의 이들 SRBM은 대남 공격용으로 개발됐으며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군은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공개한 전술핵탄두 '화산-31'이 SRBM 등 10종 이상의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직경 40∼50㎝로 위력은 10kt(킬로톤·1kt는 TNT 1천t 폭발력) 안팎으로 추정되는 화산-31은 발사할 미사일 탄두부에 끼워 넣도록 표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3종 세트는 발사 후 정점 고도에서 하강하면서 변칙기동도 가능해 지상에서 요격이 쉽지 않을뿐더러 유도 기능까지 탑재해 정밀도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 신형 SRBM 지원했다면 전장서 검증 기회…무기운용 전문가 파견 정황
북한이 SRBM을 러시아에 지원했다면 수송 방법 또한 관심거리다.
KN-23은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모방해 개발했지만, 길이가 9m 이상으로 러시아 미사일(7.2m)보다 길다. 사거리나 속도 또한 러시아 이스칸데르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KN-24와 KN-25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미사일이다.
3종 모두 차량형(일부 궤도형 포함) 발사대에서 발사되는데 북한은 KN-23을 열차에서도 쏜 장면을 공개했다.
이들 미사일의 발사대와 발사차량이 러시아와 호환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차량까지 제공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군 관계자들은 발사대를 차량에서 분리해 선박의 컨테이너로 이송했거나 화물열차와 대형 수송기에 발사차량까지 통째로 실어 러시아로 보냈을 수 있다고 봤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8월 초부터 러시아 선박, 수송기를 활용해 포탄 등 각종 무기를 10여차례 수송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혀 러시아 대형 수송기 활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약 SRBM이 '한 세트'로 지원됐다면 이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교육과 정비 등을 맡을 인력도 러시아에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도 "10월 중순경 북한이 무기 운영법 전수를 위해 방사포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대표단을 러시아에 파견한 정황도 입수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최근 개발한 방사포는 탄도미사일과 매우 유사한 비행 특성과 위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 SRBM이 현재까지 포착되지 않아 실제 지원됐는지, 제공했다면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SRBM이 실제 지원됐다면 러시아와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북한의 SRBM 궤도형 발사차량은 진흙밭 같은 야지에서도 기동하므로 질퍽한 우크라이나 지형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로서는 반가울 수 있다. 러시아는 칼리브르 장거리 순항미사일, P-800 오릭스와 Kh-22(부랴) 초음속 순항미사일, kh-47(킨잘)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우크라이나 전략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신형 SRBM을 실제 전장에서 검증해볼 기회가 될 수 있다.
발사차량의 기동력이나 탄두 파괴력, 미사일 정밀도 등을 실제 전장에서 평가 분석할 수 있어 북한 측이 더 적극적인 지원 의향을 표시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군력 현대화 주력 북한, 미그-29 원했을 가능성…부품 돌려막기도 한계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장비류를 지원하면서 대가로 받게 될 무기나 군사기술 등도 주목된다.
군은 북한이 두차례 발사 실패한 위성 관련 기술과 핵 관련 기술이전 및 협력, 전투기 또는 관련 부품, 방공시스템, 노획한 서방 무기 및 장비 등을 대가로 추정했다. 국정원의 분석도 군의 이런 추정과 같다고 한다.
국정원은 특히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전투기, 여객기 등 항공기를 들여오기 위해 러시아에서 비행 정비 위탁교육을 받을 대상자를 선발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 전투기 또는 관련 부품이 북한에 제공될 수 있다는 정보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공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그-29나 관련 부품을 우선 희망할 것으로 분석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의 전투기는 부품 수급의 문제로 가동률이 떨어지고 미그-29기는 동류전환(돌려막기)으로 10여대 정도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로부터 부품 공급이 이뤄지면 운영 대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미그-29 초기형의 항전장비와 성능개량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옛소련과 합작으로 평북 구성시에 미그-29 조립생산공장을 건설해 1988년 부품을 가져다가 조립 생산했다. 1993년 4월 김일성 주석 생일을 기념해 첫 2대에 이어 모두 20대를 조립 생산했다. 이 가운데 몇 대가 추락했고 현재 10여대를 운용 중이다.
옛소련 붕괴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미그-29 부품 조달에 애를 먹고 있고 그나마 부품 돌려막기도 한계에 달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머지 미그 계열 전투기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미그기 1대를 해체해 관련 부품을 빼내 다른 미그기에 채워 넣는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다.
북한 미그-29는 출력과 기동성, 장거리 항속 능력, 공대공 및 공대지 무기체계 등에서 우리 공군 F-15K에 뒤진다. 탑재된 레이더 탐지거리와 AA-10 공대공 미사일 등의 사거리도 짧아 최소한 F-15K와 공중전을 벌이려면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 등을 교체해야 한다.
공군이 과거 미그-29를 가상 적기로 선정해 훈련하다가 수호이(Su) 전투기로 바꾼 지 오래된 것도 미그-29의 이런 열악한 성능 때문이다.
F-15K에 이어 F-35A 스텔스 전투기까지 실전 배치한 한국의 공군력에 절대적으로 열세인 북한으로서는 그나마 자신들에게 최신형인 미그-29에 목을 맬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9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있는 유리 가가린 항공기 공장을 방문해 다목적 초음속 전투기 Su-35와 스텔스 전투기 Su-57 등의 공정을 시찰하고, Su-35 시험 비행을 지켜본 것도 공군력 강화를 위한 행보로 분석됐다.
그렇다고 북한은 Su-35나 Su-57과 같은 고성능 전투기를 들여와 운용할 형편이 못 된다. 이들 전투기를 운용하려면 조종사 교육용 시뮬레이터 도입과 수리부속 등 천문학적인 운영 유지비 등을 감당해야 하는데 경제 사정이 형편없는 상황에서 고성능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전투기 등 도입을 위해 러시아에서 교육받을 조종사와 정비사 등을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조만간 러시아에 파견되는 북한 인력의 행보를 보면 기종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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