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⅓이닝 3002구’ 많이 던졌다…20승 에이스에게 ‘투혼’을 기대할 수 없었나 [PO]
[OSEN=조형래 기자] 많이 던지긴 했다. 그래도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쉽게 오르기 힘든 무대 앞에서 ‘투혼’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NC 다이노스의 에이스 에릭 페디는 어쩌면 가을야구 여정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 나서지 못한다.
NC는 5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성 열리는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 KT 위즈와 운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시리즈 전적 2승2패로 맞서 있고 1승만 더하면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올라설 수 있다. 반면 1패를 하면 가을야구 탈락이다.
정규시즌 막판 치열한 3위 경쟁을 펼치다가 4위로 주저 앉았다. 이 때부터 NC는 사실상 포스트시즌 모드였다. 강인권 감독은 “10월 초부터 순위 경쟁을 하면서 사실상 한 달 정도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현재 NC 선수단의 힘든 여정을 설명했다.
사실 꼴찌 후보로도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NC가 가을야구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에이스 에릭 페디 덕분이었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다가 NC 유니폼을 입은 페디는 한국 리그를 압도하고 교란시킨 ‘외래종’으로 불렸다. 150km 초중반의 투심, 반대의 궤적으로 멀리 휘어나가는 스위퍼로 한국 타자들을 손쉽게 상대했다.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구종도 위력적이었다.
정규시즌 30경기 20승6패 평균자책점(180⅓이닝 40자책점) 209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페디가 팀의 75승(67패2무) 중 20승, 비율로 따지면 26.7%를 책임졌다.
그리고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모두 1위를 차지, 역대 7번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선수로는 역대 4번째 선수다. 선동열이 1986년과 1989~1991년까지, 총 4차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다. 이후 2006년 한화 류현진, 2011년 KIA 윤석민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다. 12년 만에 페디가 대기록을 세웠다.
아울러 20승 200탈삼진 기록 역시 역대 5번째로 달성했다. 1983년 삼미 장명부(30승 220탈삼진), 1984년 롯데 최동원( 27승 223탈삼진), 1985년 삼성 김시진(25승 201탈삼진), 1986년 해태 선동열(24승 214탈삼진)이 이 기록을 달성했다. 페디는 선동열 이후 37년 만에 21세기 최초, 외국인 선수 최초의 20승 200탈삼진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광주 KIA전에서 우측 전완부에 강습 타구를 맞으면서 주저 앉았다. 회복에 전념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건너뛰었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기에 피로도는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커리어 최다 이닝을 돌파했던 상황. 준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 등판을 준비했지만 우측 팔꿈치 충돌 증후군 증세로 등판이 미뤄졌다. 팀은 준플레이오프를 3경기 만에 끝내면서 페디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줬다.
결국 약 2주 가량의 휴식 끝에 지난달 30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정규시즌보다 더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최고 155km의 투심 패스트볼(37개)이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파고 들었고 주무기 스위퍼(49개)도 날카롭게 꺾였다. 페디는 KT 타자들을 정신 없이 만들었고 6이닝 98구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12탈삼진 1실점으로 혼신투를 선보였다. 12탈삼진은 플레이오프 역대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이었다.
NC는 시리즈 2승을 선점, 한국시리즈까지 단 1승만 남겨두게 됐다. 기세를 몰아서 4차전 내에 시리즈를 끝냈으면 페디는 6일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3,4차전을 내리 패하며 2승2패로 시리즈가 원점이 됐고 5일 휴식 후 페디가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러나 페디는 5차전 선발 투수로 나서지 못한다. NC는 올해 포스트시즌 2경기 12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인 신민혁을 5차전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신민혁에게 기대치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인 페디만큼 상대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존재는 아니다.
4차전이 끝나고 강인권 감독은 “페디의 컨디션이 100%로 회복이 되지 않았다. 현재 신민혁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라면서 “내일(4일) 아침 컨디션을 체크해보고 결정하다록 하겠다”라면서 페디의 등판 여부를 확정짓지 않았고 결국 신민혁이 5차전 마운드를 책임지게 됐다. 5일 휴식으로도 해소가 되는 피로의 정도가 아닌 듯 하다.
사실 페디는 많이 던졌다. 커리어에서 이 정도로 많이 던진 시즌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2021년 133⅓이닝이 최다 이닝이었다. 정규시즌에서도 팔꿈치 전완부 통증으로 20일 가량 휴식을 취한 바 있다. 그리고 정규시즌 막판에는 강인권 감독과 트레이닝 파트가 지속적으로 피로도 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결국 누적된 피로를 완전히 회복하기는 힘든 것 같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도합 186⅓이닝(정규시즌 180⅓이닝+포스트시즌 6이닝)을 소화했고 3002구(정규시즌 2904구+포스트시즌 98구)를 던졌다.
그러나 동료들이 포스트시즌 가장 낮은 단계부터 기적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포스트시즌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정규시즌을 훨씬 상회한다. 그렇기에 야수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박건우는 감기 몸살 증세를 달고도 플레이오프 2차전 선제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박민우는 정규시즌 막판부터 어깨 다리 등 잔부상을 달고 경기를 뛰고 있다. 서호철도 정규시즌 막판 코뼈 골절에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트시즌 경기를 뛰고 있다. 모두 ‘가을야구’라는 무대 아래에서 ‘투혼’이라는 단어를 몸소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페디는 동료들인 일군 기적과 기회의 무대에 나서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상대팀인 KT의의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는 1차전에서 페디와 맞대결을 펼쳤다. 4이닝 7실점(4자책점)으로 75구를 던졌지만 3일 휴식을 취하고 4차전 마운드에 올라와 6이닝 1피안타 무실점 73구의 공을 던지는 투혼으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비교될 수밖에 없는 에이스들의 모습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몸을 사리고 더 높은 가치 평가를 받기 위해 에이전트(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관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NC 임선남 단장은 “그런 일은 전혀 없고, 그런 말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면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과연 페디의 가을야구는 플레이오프 1경기로 끝날 것일까. 동료들은 페디에게 다시 한 번 가을야구 등판의 기회를 줄 수 있을까. 그 무대는 한국시리즈가 되어야 한.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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