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공개된 ‘한국형 ARPA-H’ 밑그림...“보건 혁신 추진할 어벤져스 뽑는다”

김명지 기자 2023. 11. 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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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한국형 ARPA-H 공청회
연구자 300여명 참석하며 관심 집중
“연구 자금 지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라”
“CEO처럼 생각하고, 사업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보건복지부가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ARPA-H' 출범 설명회가 열렸다./김명지 기자

#.올해 3월 15일 미국 보건복지부 웹사이트에 ‘보건 의료 혁신 아이디어’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토너먼트 방식의 이 공개 오디션은 세상에서 가장 참신한 의과학적 과제를 뽑는 내용이었다. 선정된 과제에 총 1만 5000달러(약 2000만원)의 상금이 걸렸고, 수천 명이 지원해 총 64명이 공개 토너먼트에 올랐다. 1등은 ‘어떤 암이든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가 차지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보건의료 연구개발(R&D)을 혁신하기 위해 설립한 ARPA-H(의료고등연구계획국) 첫 프로젝트였다. 이 이벤트를 거쳐 ARPA-H는 미국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ARPA-H는 국방부 산하 연구개발 조직인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보건의료 분야에 접목한 것이다. DARPA는 달 착륙 작전처럼 비용이 많이 들고 실패 가능성도 높지만, 연구개발이 성공을 하기만 하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군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관이다.

DARPA가 지난 1960년대 연구하던 군 네트워크가 인류 최초 인터넷(ARPANET)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성공시킨 것도 DARPA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 R&D 체계의 한계를 깨닫고 ‘문제 해결’ 개념의 R&D 기관을 만든 것이 ARPA-H라는 뜻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ARPA-H 출범 당시 “일반 기업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선뜻 기회를 주지 않을 정도로 대담한 아이디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ARPA-H 출범 첫해 예산으로만 10억 달러(약 1조3200억원)를 배정했고, 2년 차인 올해 예산은 15억 달러(약 2조 원)로 늘렸다.

‘DRC 휴보2’가 2015년 6월 6일(현지시각) 미국‘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RC)’ 결선에서 손으로 밸브를 돌리고 있다. / DARPA

◇ ‘문제 해결’ 관점의 ARPA-H “자금을 받으려면 CEO가 돼라”

미국 정부가 ARPA-H를 출범한 지 2년 만인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보건복지부가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ARPA-H’ 출범 설명회가 열렸다. 한국형 ARPA-H는 윤석열 정부가 보건의료 R&D 활성화를 위한 국정과제로 제시한 프로젝트이지만, 그 밑그림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복지부 정은영 보건산업정책국장은 “미국이 ARPA-H를 출범한 지 1년여 만에 한국형 ARPA-H 출범시킬 수 있어 감회가 깊다”며 “세계 최고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한·미 연구 우수병원 간 공동연구 등 다채로운 글로벌 공동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한국형 ARPA-H와 보건의료 국제협력을 위한 보스턴-코리아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국민과 환자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내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수많은 환자 중심 보건의료 연구 사업 과제 중에서 실현된 것이 없었는데, 드디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별도의 초청장도 없이 마련된 설명회에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 북적였다. 국립암센터의 김영우 연구소장 등도 일반 참석자로 자리했고, 범부처 전 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김태형 본부장 등도 청중석에 자리했다.

미국 아르파-H의 프로그램 매니저들/ 아르피-H 홈페이지 캡처

기조 강연은 르네 웨그진 미국 ARPA-H 초대 원장이 맡았다. 영상으로 만난 웨그진 원장은 ARPA-H에 대해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불가능한 장벽을 뛰어넘겠다는 것”이라며 “전통적 R&D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웨그진 소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ARPA-H를 출범한 것은 캔서문샷 이후의 암이 아닌 다른 질병에 대한 ‘차세대 문샷’을 만들고 싶다는 고민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RPA-H를 연구기관이 아니라 자금조달 기관, 기관 투자자라고 표현했다.

웨그진 소장의 소개처럼 ARPA-H는 기존의 연구개발 사업단과 운영 방식과 목적부터 다르다. 기존의 R&D 프로젝트는 특정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정부가 보조금을 신청해 지원하는 방식이었다면, ARPA-H는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사업 주제를 정부가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매니저가 지정하고 주도한다. 유능한 프로그램 매니저를 선발해서, 그가 미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면, 그가 자율적으로 팀을 꾸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식이다. 임기는 3년이다.

웨그진 소장은 “프로그램 매니저는 CEO(최고경영자)처럼 생각하고, 사업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며 “3년 임기가 길어 보이지만, 반대로 2주에 1%씩 임기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길지 않다”고 말했다. 시간제한을 두고,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게 압박하는 식이다. 책임이 무거운 대신 자금 운용에서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또 ARPA-H의 지원 조직마저 수평적으로 설계해서 ‘최고의 인재’를 뽑도록 했다.

◇ “보건 뿐 아니라 복지 문제 가장 도전적인 문제 해결”

복지부는 미국의 프로젝트를 한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했다. 내년에 한국형 ARPA-H를 이끄는 프로젝트 매니저 4명을 선정하고, 4대 임무에 대해 2개 과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별로 3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는데, 프로젝트 과제는 추진 단장과 협의로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윤수현 보건복지부 혁신TF 팀장은 국가신약개발사업단, 범부처치매사업단 등 기존의 R&A 사업단과의 차이점에 대해 “프로젝트매니저가 기획 평가 관리까지 모두 다 관리하고 결정하게 된다”며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그렇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의 R&D예산이 줄였다고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내년 R&D 예산은 7801억 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12% 늘었다. 윤 팀장은 “연구자들은 연봉보다는 과제에 자율성을 주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ARPA-H

한국형 ARPA-H는 대학, 기업, 벤처 캐피털과의 협업을 통해 기초 연구가 의약품으로 전환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한국이 제약·바이오 경쟁력을 갖추려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윤 팀장은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인문학, 법, 특허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선발해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보건 복지 전 분야에 가장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두아 휴레이포지티브 대표는 “복지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의료 AI(인공지능) 분야에서는 ARPA-H가 혁신적 R&D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디지털이 장점이지만, 디지털은 승자독식 구조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의 기업을 이기는 업체가 AI 영역에서 나타나기가 이미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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