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마스전쟁 한달] ⑤ 숨죽인 글로벌 경제, 확전 여부 촉각
"확전시 유가 150~250달러"…'스태그플레이션 저주'에 빠질 수도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다음 날인 지난달 8일(이하 현지시간).
일요일이었지만 이스라엘 증권시장은 쏟아지는 팔자 주문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이스라엘 35대 기업을 추종하는 TA-35지수는 한때 7.6% 하락해 3년 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다.
이스라엘 증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휴장한다.
주말 휴장 뒤 월요일인 9일에 개장한 원유선물시장 또한 비슷한 모습이었다.
장 초반 국제 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1%, 브렌트유 3.9% 등 급등세를 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 생산지가 아니지만 전쟁이 주변 국가로도 번질 가능성에 대한 경계 심리가 작용했던 탓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사태와 포스트 코로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숨 가쁘게 달려오다 겨우 한숨 돌리던 글로벌 경제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당시는 물가가 어느 정도 잡혀가고 유가도 안정세를 찾아갔으며,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만연했던 상황이었다.
세계은행(WB)의 인더미트 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두 개의 에너지 충격(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동시에 겪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세계 경제는 가장 취약한 시점에 있다"고 평가했다.
오는 7일 전쟁 발발 한달을 이틀 앞둔 5일 현재, 세계 경제는 패닉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면 공세 대신 주요 거점을 한 조각씩 장악하는 '슬라이스 장기전 전술'을 쓰고 있다는 관측이 세계 경제를 소용돌이로 내모는 것을 막았다.
장기전으로 흐를 공산이 크긴 하지만 상황 관리에는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
원유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직전의 가격 수준으로 내려갔고 TA-35 지수도 하락세에서 벗어나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미 뉴욕증시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2회 연속 금리 동결 등으로 반등한 가운데 미국 증시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한때 심리적 저항선인 20을 넘기도 했지만 20 아래에서 하향 추세다.
미국 지역은행 파산 위기가 확산한 지난 3월의 27보다 훨씬 낮다.
물론 국제 금값이 지난달에만 8% 오르는 등 일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현재로서 가장 큰 간접 피해자는 겨울철 난방 수요 증가를 앞둔 유럽인들로 보인다.
중동 충돌 이후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40% 가깝게 올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유럽으로 공급되는 타마르 가스전을 폐쇄한 가운데 지난달 발트해 가스관 파손 등으로 천연가스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세계는 현재 글로벌 경제에 잔뜩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는 확전 가능성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이번 중동 사태가 이스라엘-이란의 대결 구도로 확대될 경우 전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다니는 호르무즈 해협 등 해상통로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무엇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원유 공급 불확실성이 고조될 수 있다.
이란은 2011년 미국의 원유 제재를 받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는데, 충돌 확대시 실제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호르무즈 원유 수송량은 하루 2천100만배럴이지만 우회 수송관 수송 능력은 790만배럴에 그친다.
중동 지역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지금이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본 것 중 가장 위험한 시기일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경에 깔고 있다.
세계은행(WB)은 분쟁의 확산에 따른 석유 공급 차질을 3개의 시나리오로 가정한 뒤 세계 석유 공급량이 하루 600만∼800만 배럴이나 주는 가장 최악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컨설팅업체 EY파르테논과 블룸버그 통신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이코노믹스 등 해외 기관들은 물론 국내 국제금융센터도 150달러대의 '오일 쇼크'를 경고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대 250달러 상승 가능성을 거론했다.
유가 급등은 물가가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다고 보는 각국 중앙은행들에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게 되며,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라는 저주를 내릴 수도 있다.
유가의 고공행진은 무엇보다 가난한 나라에 더 치명적이다.
기름값이 식품 생산 비용을 밀어 올려 개발도상국에서 식량안보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또한 불확실성은 이머징마켓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것이 뻔하다.
아울러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이 올라가고, 중국과 브라질 등 일부 국가의 기업들은 차환(refinancing)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EY파르테논에 따르면 유가가 150달러까지만 올라도 세계가 완만하지만 경기 침체를 겪고 증시는 폭락하며 글로벌 경제에 2조달러(약 2천686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일 기준금리 2회 연속 동결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동 충돌이 중요한 경제적 영향을 끼치는 길로 가는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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