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두 1000기 갖자” 증강 나선 중국, 군축회담 응한 속내는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3. 11.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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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미·러 이어 3대 핵 강대국 지위 인정받겠다는 의도
”핵 대국 못 건드린다” 우크라이나전 이후 핵 증강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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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국 70주년인 2019년10월 열병식에 등장한 중국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41. 10개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국의 주력 ICBM이다. /조선일보DB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중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2017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만난 이후 6년 만의 미국 방문이죠.

양국 관계는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올 2월 중국 정찰풍선 격추 사건으로 군사 핫라인이 끊길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이런 관계를 소통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이번 정상회담의 목적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현안과 양국 군사관계 등에 대한 깊숙한 얘기도 오갈 것으로 보여요.

그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양국 간 핵 군축 논의입니다. 말로리 스튜어트 미 국무부 차관보와 쑨샤오보 중국 외교부 군축국장이 6일 만나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인 핵 군축 문제를 논의한다고 해요.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여러 차례 중국에 핵 군축 논의를 제안했지만, 중국은 일절 응하지 않았습니다. 핵탄두 숫자가 미국과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데, 무슨 얘기냐는 식이었죠. 그랬던 중국이 핵 군축 논의를 하겠다는 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이후 첫 회담

미 군축협회(ACA) 집계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 숫자는 각각 5244기, 5888기에 이르는 반면, 중국은 410기라고 해요. 미 국방부는 지난 10월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올 5월 현재 중국 핵탄두 숫자가 500기를 넘은 것으로 보이고, 2030년에는 1000기를 돌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러시아보다 뒤처지는 핵전략 확충을 위해 부심해 왔죠. 2016년 전략 핵무기를 담당하는 로켓군을 신설했고, 수년 전부터 핵탄두 숫자를 빠르게 늘려왔습니다. 2014년 250기였던 핵탄두가 올 5월 500기를 넘었으니 9년 만에 두배가 된 셈이죠.

핵무기를 쏠 수 있는 발사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왔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를 3대 핵전력으로 꼽는데,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죠.

작년 7월에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극초음속활공체(HGV)를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해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HGV는 현재 미국의 방공망으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하죠. 마크 밀리 당시 미 합참의장이 “‘스푸트니크 순간(sputnik moment)에 근접했다”며 당혹스러워했을 정도입니다.

◇“핵탄두 1000기 이상으로 확대”

중국이 핵무기 증강에 나서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G2(주요 2개국)의 일원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전략적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뜻이죠.

‘공산당의 입’이라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2020년5월 소셜미디어 글에서 “단시간 내에 핵탄두 수량을 1000기 수준으로 늘리고, 그중 최소한 100기는 둥펑(東風)-41 전략미사일에 장착해 미국의 전략적 야심과 중국에 대한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작년 10월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강력한 전략적 억지 능력 체계를 만들라”고 중국군에 주문했죠. 중국군에서 ‘전략적 억지 능력’이라는 말은 ICBM과 SLBM, 전략폭격기 같은 전략 무기를 뜻합니다.

올 2월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 하미 지역에 새로 만든 핵미사일 지하저장고(silo). /미 국방부 '중국 군사력 보고서'(2023)

◇우크라이나전쟁의 교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험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와요. 러시아가 핵 강대국이다 보니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하는 무기에도 한계를 뒀다는 겁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미국과 러시아 간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협정(New START)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공개적으로 핵위협을 가하기도 했죠. 교도통신은 연초 “작년 11월 중국군 최고위층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핵 억지 능력이 나토와 러시아의 정면 충돌을 막았다. 치명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만 침공에 대한 고려도 있겠죠. 그동안 견지해온 ‘핵 선제 사용 금지’ 원칙을 포기하고, 미국 개입 차단을 위해 핵위협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을 겁니다.

미국도 두 개의 핵 강대국이 등장하는 체제에 맞춰 군비 경쟁에 돌입한 분위기에요. 2024년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8420억 달러로 늘려 잡고, 앞으로 25년 동안 핵개발에 2조 달러를 투입한다는 계획입니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중국의 전략 폭격기 H-6. /조선일보DB

◇핵 강대국 대접에 반색

이번 정상회담에서 당장 가시적인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월스트리트저널은 11월2일 핵 군축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 당국자로부터 중국의 핵무기 증강 현황과 핵전략 관련 구상을 듣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탐색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중국으로서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겁니다. 미국이 핵 강대국 러시아를 대하듯 중국을 대하는 것 자체가 시 주석으로서는 체면이 서는 일이죠.

사실 이번 군축회담 소식을 먼저 공개한 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었습니다. 10월30일 브리핑에서 “수일 내에 중미 간 군축과 확산 방지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했어요. 핵 군축 회담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거죠. 미·러 양대 핵 강대국 체제가 미·중·러 3국 체제로 바뀌어가는 분위기인데, 우리나라로서도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변화입니다.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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