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는 무덤 된다”…하마스 ‘악마의 땅굴’ 싸움이 위험한 이유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3. 11.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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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늘과 땅이 거대한 전쟁터로 변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공격을 퍼붓고 있다. 

양측간의 전투는 ‘죽음의 시가전’으로 확대될 조짐이 뚜렷하다. 하마스가 만든 지하 터널은 기존에 알려진 시가전 법칙을 무력화한다. 좁은 면적에 인구가 많은 가자지구는 대형 건물이 많다. 이스라엘군 입장에서는 길고 치열한 시가전을 각오해야 하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위험이 있다. 한국군이나 북한군이 시가지에서 전투를 치르게 된다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하철과 터널 등의 지하시설과 고층 건물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 무장조직 이스라믹 지하드 요원이 땅굴에서 소총을 든 채 대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지하 전투, 수중에서 싸우는 것과 같아

하마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자지구를 거대한 요새로 만들었다. 가자지구 지하에는 ‘가자 메트로(metro)’로 불리는 땅굴이 있다. 

길이가 약 500㎞, 깊이는 40m에 달한다. 하마스의 무기고이자 벙커이며 건물 사이를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가자지구 면적은 360㎢로 한국 세종시보다 조금 넓지만 인구는 237만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 다른 아랍 도시보다 대형 건물이 많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땅굴, 시가지 곳곳에 있는 큰 건물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지하에서 싸우는 것은 보병 장비를 지닌 채 수중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과 유사하다. 보병의 무기와 장비가 물속에선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에서도 제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가장 흔히 쓰이는 야간 투시경은 주변에 빛이 있어야 하는데, 땅굴에서는 빛이 차단되어 있다. 

위성 신호나 전파를 수신해서 작동하는 내비게이션과 위성 전화, 무전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교신 거리가 짧아질 수 있다. 지하에선 소부대 단위로 교전해야 하므로 상급부대의 화력지원 또는 인접부대간 지원이 이뤄질 수 없다. 

이는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 조직원들을 제압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지하체계는 통로가 얽혀있고 공간도 좁으며 빛도 없다. 이스라엘군은 적의 활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신속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사상자 후송도 매우 어렵다.

로봇이나 초소형 드론을 사용해 정찰을 해야 하는데, 무선 신호가 약한 지하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땅굴의 깊이나 위치에 따라선 병사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곳도 있다. 저항세력이 총과 실탄, 수류탄, 방독면, 손전등 외에 산소 탱크도 갖춰야 한다. 이는 보병의 전투 하중을 증가시켜 보병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지하는 지상보다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폭이 좁은 땅굴이나 벙커에서 폭발물을 사용하면, 병사의 청력 손상에 따른 인지능력 저하와 더불어 시설물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 결국 소부대의 보병 화기에 의한 근접전 위주가 될 수밖에 없다.

하마스 무장대원이 땅굴 입구에서 소총을 겨눈 채 경계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마스 입장에선 땅굴 전투가 훨씬 유리하다. 현지 지리에 익숙해서 땅굴을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다. 조직원 1명으로도 이스라엘군 부대를 땅굴에 붙잡아두는 것도 가능하다. 부비트랩을 설치하면 이스라엘군의 진격을 늦추면서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게 된다.

후퇴할 때 땅굴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면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이스라엘군의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

땅굴 외에도 시가지 곳곳에 있는 큰 건물은 지상군 진격을 막는 장애물이자 하마스 저항 거점이다. 하마스 저격수나 대전차화기 사수가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다. 

이스라엘 전차와 장갑차, 드론은 기습 위험을 낮출 수는 있다. 

하지만 하마스 조직원들이 건물 내부에 은신한다면, 이스라엘 보병들은 건물에 있는 방 하나하나를 모두 수색하면서 싸워야 한다.

보병들이 하마스 조직원들과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며, 백병전도 치르게 된다.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위험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가 전투기에 의한 공습이다. 벙커버스터를 비롯한 항공폭탄을 여러 발 투하해 지하시설이나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지구 공습 첫 6일 동안 폭탄 6000발을 떨어뜨렸다.

이후 불도저로 콘크리트 잔해를 치우면 하마스 조직원들의 매복 가능성은 줄어든다. 잔해를 그대로 두면 하마스 조직원들이 잔해 틈에 매복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 내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하마스의 주력 대전차화기인 RPG를 방어할 수 있는 이스라엘군의 D9R 불도저는 이같은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이스라엘군은 지하에서의 작전이 가능한 특수전부대도 운용하고 있다. 이들이 가자지구 전투에 나선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현지 정보 수집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특수전부대나 첨단 장비의 위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모술과 시리아 락까 등을 점령했을 때는 IS를 싫어하는 주민들이 이라크군이나 쿠르드 민병대에 정보를 제공했다. 

반면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에 하마스 땅굴 위치 등의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하마스에 이스라엘군의 동향을 알릴 가능성이 더 높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스스로의 힘 외에는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악전고투를 할 수밖에 없다. 하마스는 땅굴을 이용해 버티면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견뎌낼 전망이다. 

강원 인제에서 열린 제1회 국제과학화전투경연대회에 참가한 한국군 장병이 건물 안에서 소총을 겨누고 있다. 육군 제공
◆한반도에서 시가전 벌어지면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직면한 상황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일반적인 시가전이라면 다수의 드론을 띄워 정찰을 실시하면서 공중공격을 감행, 적군을 제압한 뒤 장갑차와 헬기 등의 지원을 받는 보병이 진입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드론의 눈이 미치지 않는 지하에 벙커와 땅굴을 만들고 은신한 적군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은 수도 평양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 수많은 지하시설을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도 건설했다. 깊이도 매우 깊다. 평양 지하철의 경우 평균 깊이가 100m에 달한다. 지하공동구나 수로 등도 있다. 

미군은 지하도시 기능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지하 군사시설이 세계적으로 약 1만개가 있으며, 이중 4800개 이상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하마스처럼 지하세계 전투를 준비한다면, 이스라엘군이 직면한 문제점을 한미 연합군도 겪을 위험이 높다. 한미 연합군의 강력한 화력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지하세계에선 북한군과 한미 연합군 보병이 근접전, 백병전을 치를 수 있다.

가자지구보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북한의 지하세계에선 위성 장비나 무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이 조명도 차단한다면, 열화상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환기나 제습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거나, 발전기가 멈춰 시설 가동이 중단된 지하시설에 진입하면 산소 공급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전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북한군은 현지 지리에 밝다는 점을 활용해 지하세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한미 연합군 보병의 인명피해 증가로 이어진다.

평양 내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처럼 초고층빌딩이 있는 지역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십층 높이의 건물 전체를 수색하면서 북한군과 교전하게 되는데,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이므로 한미 연합군 보병의 강점인 첨단 장비가 제 성능을 온전히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 

강원 인제에서 열린 제1회 국제과학화전투경연대회에 참가한 미군 장병들이 건물 계단을 오르면서 경계를 취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이스라엘처럼 벙커버스터 등에 의한 공습으로 파괴하는 방법도 있으나, 초고층빌딩 파괴에 투입할 공군력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가자지구보다 면적이 훨씬 넓다. 핵과 미사일 관련 시설, 공군기지 등 공중공격으로 타격해야 할 표적이 수만개에 달한다.

남은 방법은 보병들이 건물 1층과 옥상으로 동시 돌입, 건물 내 구역을 나눠서 샅샅이 수색하는 것뿐이다. 저격수가 탑승한 헬기와 각종 드론이 건물 주변을 비행하며 지원한다. 이 방법은 인명 피해와 더불어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할 위험이 있다.

군 안팎에선 이같은 상황에 대처할 군 조직과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고층빌딩이나 지하시설 등에서의 작전은 일반 보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철과 초고층건물, 지하공동구, 지하수로 등에서 작전을 펼칠 특수작전 전문부대를 운영하면서 정예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시설 점령이나 수도 방위 등의 차원에서 일부 훈련이 이뤄지고 있지만, 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첨단 장비와 전술을 사용하는 부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대가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차륜형장갑차나 소형전술차량 등을 함께 갖추며, 유사시 헬기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지표 투과 레이더나 초소형드론, 지하 탐사 로봇 등의 장비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인 장비 운용과 통신 등을 위해 스타링크와 유사한 위성인터넷 서비스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이같은 조치는 수도방위사령부나 제2작전사령부의 방어 작전에도 유용하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군이 매복지에 설치한 스타링크 단말기. 한국군도 지하세계 및 초고층빌딩 전투에 대비, 네트워크 연결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서울, 부산, 대구, 울산 등의 광역시는 국가 기능과 사회 안정 유지에 필수인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 고층건물과 지하시설이 많아서 전문화된 작전이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시설과 초고층건물 작전에 특화된 부대를 만들면 유사시 공격과 방어 작전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작전 소요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 일반 보병에게도 지하전투나 초고층빌딩 전투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육군은 수년전부터 보병의 다음 전장은 거대 도시에서의 지하 시설이라고 판단, 전투여단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교리 개발을 진행해왔다.

가자지구에서의 시가전은 새로운 차원의 싸움이다. 이스라엘군이 구사할 전술은 한반도 유사시 북한 지하시설과 대형 건물에 직면할 한미 연합군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가자지구의 교전을 지켜보며 ‘지하 전쟁’에 대비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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