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직행 적법” 결론 [김진성의 판례 읽기]
노란봉투법은 전원일치 기각
[법알못 판례 읽기]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곧바로 올린 것이 유효하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리자고 요구하는 행위가 국회법을 지키면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노란봉투법은 당장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이 법은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도급 노동조합이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법안 시행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회법 준수해 본회의 직회부”
헌재는 지난 10월 26일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상정과 관련한 국민의힘이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권한쟁의 심판은 헌법에 근거를 둔 국가기관 간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놓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유권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민주당은 지난 5월 국회 환노위에서 노란봉투법의 직회부 요구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요구안은 무기명 투표를 거쳐 정식으로 본회의에 부의됐다.
민주당 측은 ‘법안이 법사위에 이유 없이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국회법 86조 3항 내용을 직회부의 근거로 댔다.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민주당이 소관 상임위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해 법률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면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국민의힘은 “쟁점이 된 법안이 모두 법사위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만큼 ‘이유 없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의도적으로 심사를 지연했다”고 반박했다.
헌재는 민주당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절차를 반복하면서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본회의 부의 요구 행위는 국회법을 준수해 이뤄졌고 그 정당성이 본회의 표결 절차를 통해 인정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국회법이 정하는 절차를 준수해 법률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결정했다면 헌법적 원칙이 현저히 훼손됐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회 이외의 기관이 그 판단에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본회의서 가결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 듯
헌재가 절차상의 적법성을 인정하면서 노란봉투법은 11월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가결을 막겠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하고 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가 일찍이 반대 의사를 밝혔던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법안이 재의결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칠 때는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제정이 가능해서다. 3분의 1을 약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한 국민의힘에서 이탈 표가 안 나오면 입법이 무산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란봉투법 제정이 현실화하면 산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노란봉투법 2조는 사용자의 개념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하도급 근로자가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렇게 되면 CJ대한통운, HD현대중공업,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제철 등 하청 노조와 분쟁 중인 기업들이 줄줄이 하청 근로자들과 교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파업에 힘을 보태줄 가능성도 있다. 노란봉투법 3조는 쟁의행위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는 참여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을 묻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계에선 이 같은 법 조항이 시행되면 생산라인을 점거당해 손해를 보더라도 파업을 한 노조원들에게 책임을 묻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돋보기]
헌재 ‘검수완박법’ 입법절차도 유효 인정
헌법재판소는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다수당이 강행해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을 인정하는 기조를 보여왔다. 더불어민주당의 강행으로 2022년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두고 내린 판단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지난 3월 23일 대심 판정에서 연 권한쟁의 심판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일부 검사가 각각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 침해 확인 및 법개정 무효 확인 청구를 5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다수 의견인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국회는 입법을 통해 국가기관에 ‘법률상 권한’을 부여한다”며 “국가기관의 ‘법률상 권한’은 다른 국가기관의 행위로 침해될 수는 있지만 국회의 입법 행위로는 침해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재판관들은 검사의 수사권과 소추권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수사·소추 자체는 원칙적으로 입법·사법권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 기능으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부여된 ‘헌법상 권한’”이라며 “이 권한을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한 장관 등이 헌법이 영장 청구권자로 검사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수사권 역시 헌법상 검찰의 권한”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배치된다.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됐다. 헌재는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에서 5대 4 의견으로 국회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 권한이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다음 비교섭 단체 몫의 조정위원이 되려는 것을 당시 법사위원장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알고도 묵인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5대 4 의견으로 법안 가결 선포 자체는 유효하다고 결론이 났다.
민 의원은 2021년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는 입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2022년 4월 15일 검수완박법 발의에도 민주당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던 그는 4월 18일 법사위에 보임됐고 이틀 후인 20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민 의원은 이 같은 수법으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의 비교섭 단체 몫 위원이 되면서 민주당은 검수완박법이 법사위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 찬성표(위원의 3분의 2 이상)를 확보했다. 당시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국민의힘 2명·비교섭 단체 1명으로 구성됐다.
다수 의견은 “민 위원은 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함께 안건조정위의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킬 의도로 민주당과 협의해 탈당했다”며 “회의 주재자인 법사위원장은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놨다”고 지적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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