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전기차 속도 조절에도 성장세 여전…"내실 다질 기회"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는 과도"…K-배터리, 수주잔고 1천조원 돌파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에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혹독한 겨울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잘됐다"는 분위기다.
단기적인 업황 둔화는 전기차 시장이 성숙해지기까지 겪는 일종의 '성장통'인 만큼 차라리 숨을 고르고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오히려 잘 됐다"…숨 고르며 내실 다질 기회
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북미 지역에서만 총 8개(단독 2개, 합작 6개)의 생산 공장을 건설·운영 중이다. 국내 기업 중 북미 지역 내에 이처럼 다수의 공장을 동시에 짓는 경우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SK온도 북미에서 6개(단독 2개, 합작 4개)의 생산 공장을 건설·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에 맞춰 비용, 인력, 원재료 수급 등 여러 면에서 속도를 올려야 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 확보 등 근본적인 경쟁력을 돌아볼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도 지난 1일 '배터리 산업의 날 기념식'에서 "원래대로 갔으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장을 짓는 인력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오히려 잘 됐다"며 "급히 성장하다 보니 간과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다지다 보면 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동섭 SK온 사장도 "중장기적으로 시장은 더 성장할 수 있다"며 "오히려 숨을 고르면서 필요한 준비를 더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배터리 업계는 내년 일시적인 휴식기를 '양질의 시간'으로 만드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 사무직 등 기존 채용 인원들의 재정비와 교육 등 역량 강화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그간 천정부지로 뛰었던 광산 등 투자 검토 대상의 가치가 조정될 것"이라며 "다소 과도했던 시장 경쟁이 잦아들면 빼앗겼던 협상력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빠듯한 생산 가동 일정으로 '비용'보다 '시간 단축'을 우선순위에 뒀던 건설 부문도 장비 반입과 시설 관리 등에 투입할 시간을 벌게 됐다는 반응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는 과도…우상향 그래프 그릴 것"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 계획을 연기하고, 유럽연합(EU) 등에서 전기차 전환을 촉진할 규제를 완화하면서 성장세가 무뎌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려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 전환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 도요타는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에 80억달러(약 10조8천억원)를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후 이뤄진 외국 자동차 업체 투자 중 최대 규모다.
현대차도 지난달 26일 실적 발표에서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답터에서 일반 소비자로 가는 과정"이라며 "전기차 판매 축소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전동화 추진 방침도 유효하다.
앤디 베셔 미국 켄터키 주지사는 지난 2일(현지시간) SK온과 포드의 합작사 블루오벌SK에 배터리 인재 양성을 위해 1천만달러(약 133억6천만원)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삼성SDI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독일의 구매 보조금 축소는 전기차가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만큼 앞으로 충전 인프라 확대를 통해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원 방식 전환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과 임금 협상의 경우 내연기관차 생산라인 중심이어서 전기차에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완성차 업체의 임금 상승이 비용 증가와 신규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전기차 시장에까지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가 고가의 제품이어서 고금리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지만, 전기차는 아직 태동기인 만큼 스마트폰처럼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산업과는 근본적인 상황이 다르다"며 "전기차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K-배터리, 3분기 견조한 성장세…누적 수주 잔고 1천조원 돌파
K-배터리 3사는 올해 3분기 실적에서도 전년 동기 대비 최대 4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0.1% 증가하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삼성SDI의 경우 영업이익은 12.3% 감소했지만 매출은 10.8% 늘어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SK온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고, 영업손실도 861억원으로 적자 폭을 크게 줄였다.
북미 신규 생산라인의 안정적인 증설, 수율 개선 등으로 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수혜도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천155억원을, SK온은 2천99억원을 각각 3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는 신규 수주 소식을 잇달아 밝히면서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도요타와 연간 2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삼성SDI도 현대차와 차세대 유럽용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온도 다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신규 수주를 논의 중이며 연내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아 SK온 글로벌얼라이언스 담당은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각국의 환경정책, 연비규제, 친환경차 인센티브 등으로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전기차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며 "4분기와 내년에도 물량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의 누적 수주 잔고는 1천조원을 넘어섰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10월 기준 500조원에 이르는 수주 잔고를 확보할 만큼 고객 수요가 탄탄하다. 현재 오창 공장과 중국 남경 공장, 미국 미시간 공장 등을 운영하며 연간 300GWh에 달하는 안정적인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가동을 시작한 오하이오 GM 1공장은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75% 이상의 가동률과 90%의 수율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4분기 흑자 전환을 목표로 내건 SK온도 조지아 공장을 비롯한 글로벌 생산공장 수율이 90%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처럼 안정적인 생산 능력, 연구개발(R&D) 역량,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등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는 오히려 경쟁 우위를 점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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