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④ 남아공 공동 연구 예산 2배로 늘려 놓고…6년째 회의 한 번 못 했다

이병철 기자 2023. 11.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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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R&D 예산 삭감하는 대신 국제 협력 강화한다는 정부
정작 사업 진행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예산 배정
협약 못해 예산 남는데 내년에도 늘리기로

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국제 공동 연구에 대해 예산 낭비라는 우려가 있으나 효율적인 예산 활용을 통해 지원하겠다. 국제 협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들도 국제 공동 연구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못할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0월 25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30·40대 젊은 과학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연구개발(R&D) 현장의 비효율을 뜯어 고치겠다며 예산 삭감을 단행했지만 국가 전략기술이나 국제 공동 연구처럼 중요 분야에는 지원을 줄이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과기정통부의 국제 협력 사업인 ‘국가간협력기반조성(R&D)’ 사업은 전반적인 예산 삭감 기조에서도 내년도 예산이 늘어난 대표적인 사업이다. 올해는 총 222억38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됐고 내년에는 233억8500만원으로 올해보다 4억4700만원이 늘었다. 특히 공동 연구 사업에서 5%, 인력교류에 52%의 증액이 이뤄졌다. 26조원에 달하는 전체 국가 R&D 예산에 비하면 작은 비중이지만, 정부의 국제 협력 강화 기조에 따라 관련 예산도 늘린 것이다.

국가간협력기반조성(R&D) 사업은 ‘과학기술기본법’과 ‘국제과학기술협력 규정’에 명시된 과학기술의 국제화 촉진을 근거로 1992년 본격적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제공동연구, 인력교류, 협력센터, 협력활동, 양자기술협력으로 나눠 예산을 책정한다.

과기정통부는 공동연구 사업 예산 증액의 근거로 “앞서 지원하던 계속과제와 매년 신규과제 선정을 위해 5% 증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계속과제에 필요한 예산은 78억6000만원이 배정됐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아라티 프라바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실장이 지난 4월(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한-미 양자과학기술협력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정부는 이처럼 국제 공동 연구를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사업 기획과 예산 집행은 미흡해 예산 낭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뉴스1

문제는 국제협력 사업이 예산은 배정됐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공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상대국과의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올해 예산을 쓰지도 못했는데 내년 예산은 오히려 늘린 경우도 있다. 심지어 6년 이상 협의가 중단돼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한 국가와의 협력 예산까지 늘었다. 국제협력을 늘리라는 대통령 지시에 과기정통부가 사업성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막무가내로 예산을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2개 과제를 만들어 6개월간 지원하기 위해 5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과학기술공동위원회는 2017년 이후 열린 적이 없다. 만나지도 못하는데 공동연구나 협력 사업이 가능할 리가 없다. 실제로 올해 배정된 예산은 사업이 없어서 전액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반납했다.

문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국제협력 예산이 내년에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내년도 남아공과의 공동연구 사업은 예산이 올해보다 2배 늘어난 1억원이 배정됐다. 과기정통부는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올해 남아공과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개최해 신규 과제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올해 남아공과 과기공동위를 추진하려 했으나 상대국의 사정으로 무산된 상황”이라며 “내년에는 사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예산이 50% 이상 늘어난 인력교류 사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스페인과 신규 과제 4개를 선정해 3개월간 지원한다는 계획으로 3100만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협의회 개최 실적이 전혀 없다. 당연히 올해 신규 과제도 선정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년도 스페인 인력 교류 과제는 ‘계속 과제’ 명목으로 9000만원이 반영돼 있다.

문제는 국제 협력 사업의 진행 부실이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국과의 협의가 지연되면서 예산을 쓰지 못하는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된 신규 과제 247건 중 51%에 해당하는 126건이 12월 말에 착수돼 예산 집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간협력기반조성 사업 예산이 과도하게 편성되거나 실제 추진이 불가능한 만큼 심사 과정에서 감액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예정처는 “상대국과의 협의와 검토 절차, 과제 선정이 지연돼 집행의 불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업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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