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리 없이 달리는 ‘바다 위 전기차’...환경오염 꼬리표 떼는 연안용 선박 기술
전기차 26대 분량 배터리로 30㎞ 운항
해상 테스트베드 구축…“안전성·신뢰도가 생명”
‘필수 기술’ 친환경 선박 수출 기반 마련
전남 목포의 삽진산업단지는 대형 조선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지만 최근 국내 조선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친환경 선박을 만들기 위한 첨단 기술이 이 곳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포시는 해양수산부, 전라남도, 조선사들과 힘을 합쳐 친환경 선박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미래 기술인 친환경 선박의 연구개발 중심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친환경연료추진연구본부가 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내년 5월 목포에 친환경연료추진연구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연구진이 상주하며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에 매진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친환경연료추진연구본부 연구팀은 목포의 중소 조선사와 함께 친환경 선박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친환경 선박 클러스터의 신호탄으로 ‘이동교체식 전원 기반 전기추진 차도선’을 실증하고 있다. 배터리와 연료전지, 혼소 엔진을 모두 실험해 친환경 선박 개발에 속도를 올릴 수 있는 ‘친환경 선박 해상 테스트베드’도 건조 중이다. 지난 3일 목포 삽진산업단지를 방문해 전기추진 차도선을 직접 타봤다.
◇전기차 26대가 선박 한 대에…이동식 전지로 거친 파도 극복
이날 목포 삽진산단에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것은 ‘이동교체식 전원 기반 전기추진 차도선’이다. 전기추진 차도선은 250kWh 용량의 고정식 배터리 두 개에, 트럭에 실은 800kWh 용량의 이동식 배터리 두 개를 추가로 사용한다. 무게 420t, 길이 60m, 폭 13m로, 120명을 태우고 차량 20대를 실을 수 있다.
친환경 선박 기술에 앞선 나라는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다. 노르웨이의 경우 2015년부터 전기추진 차도선을 만들어 운영해왔는데, 대부분 항만 충전 방식을 사용한다. 연구팀이 북유럽과 달리 이동교체 충전 방식을 선택한 건 해양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빙하 침식으로 만들어진 피오르 지형으로 바다가 잔잔하고 조차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주기적으로 들이닥치는 태풍과 조차의 영향이 심하다. 선박이 항만에서 충전하다간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동식 배터리인 트럭 화물칸에는 총 4158개의 배터리 셀이 들어간다. 국내 배터리 기업 SK온에서 공급한 배터리로, 원래는 기아의 전기차 니로EV에 장착되는 모델이다. 전기차 한 대에 배터리 셀 320개 정도가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니로EV 26대가 선박 한 대에 올라가는 셈이다. 전기추진 차도선은 이동식 배터리 덕분에 두 시간 동안 따로 충전할 필요 없이 운항할 수 있다.
힘차게 출발한 전기추진 차도선은 꽤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차도선은 500㎾급 고출력 인버터와 전동기로 최대 12노트(시속 22.224㎞)로 속력을 낼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실증 운항은 목포 앞바다에 있는 압해도와 장좌도를 지나 달리도까지 30㎞ 정도의 왕복 코스로 이어졌다. 전동기로 프로펠러가 돌아가다 보니 기존 선박과 달리 소음도 거의 없었다.
실증 운항의 목적은 친환경 선박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다. 전기추진 차도선에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적용됐다. 선장이 선박을 조작하는 조타실에는 배전반과 배터리 셀의 상태를 감시하는 제어 콘솔과 화면이 있다. 프로펠러의 동력원인 전동기는 진동과 충격을 고려한 내구성이 높은 구조로 설계됐다. 인버터도 선급 인증을 거쳐 신뢰성을 확보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영식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차도선 실증뿐 아니라 주요 부품을 국산화해 신뢰도를 높여 수출도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내년에 실증이 끝난 뒤에는 전기추진 차도선을 민간으로 이양해 상업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선박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기술이다. 5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 대형 컨테이너가 배출하는 황산화물이 경유 승용차 5000만대 분량에 달하는 만큼, 선박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탄소 중립 달성 시기를 2100년에서 2050년으로 변경했다. 조선업계와 해운업계가 친환경 선박을 확보해야만 하는 시기가 무려 50년이나 당겨진 셈이다.
◇연료전지·혼소 엔진… 최고의 친환경 선박 찾아라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는 것도 친환경연료추진연구본부의 숙제다. 이동식 배터리에 머물지 않고 연료전지나 혼소 엔진을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친환경 선박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성과 효율성, 부품의 신뢰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느냐다. 연료가 바뀔 때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선박을 새로 건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박 개발의 난관을 허물기 위해 고안된 게 세계 최초의 ‘해상 테스트베드(K-GTB)’다. 해상 테스트베드는 무게 2600t, 길이 82.6m, 폭 18m로 꽤 큰 크기로 제작된다. 중소 조선사인 한국메이드가 건조를 맡아 올해 9월 용골거치식(선박 하단 중앙부를 앞뒤로 가로지르는 배의 중심축을 놓는 행사)을 열었다.
해상 테스트베드는 평소엔 액화천연가스(LNG)로 발전기를 가동해 추진력을 얻는다. 선박 중간에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배터리나 연료전지를 넣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수소와 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대체연료를 섞는 혼소 엔진도 실험이 가능하다. 해상 테스트베드에서 세 가지 종류의 대체연료를 1㎿급으로 실증할 수 있다. 연구팀은 해상실증 기법과 절차를 IMO에 의제로 제출하고 국제표준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기추진 차도선 선착장에서 500m 떨어진 한국메이드 조선소에서는 해상 테스트베드를 건조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년 10월쯤 완전한 모습을 보일 테스트베드 선체는 골격을 갖추는 선행작업 중이었다. 블록별로 만들어 결합한 후 발전기와 추진기, 케이블, 배전반 등이 들어갈 예정이다.
심형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새로 개발되는 대체연료는 해상 실증과 운용 실적 확보를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며 “해상 테스트베드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실증에 투입되는 시험 비용이 연간 670억원 이상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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