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에 비룟값 폭등… 곡물 생산 감소, 국내서도 우려 확산
중국 요소 수출 제한에 이-팔 사태로 불안감 더 키워
국내선 ‘비료가격안정지원’ 예산 백지화
“비료 사용 줄면, 생산량 줄 수밖에”
미국 등 선진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 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세계적으로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국제시장에서 기름과 곡물, 그리고 비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작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발적으로 뛰었던 비료 가격은 작년 하반기부터 안정세를 보이다, 최근 들어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무기질 비료는 현대 농업의 생산량을 끌어올린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비룟값 폭등으로 농민들이 비료 사용량을 줄이면 농업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 시장 공급량이 감소하면 농작물의 가격도 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농가의 비료 구입비를 보조하는 ‘비료가격안정지원’ 사업 예산이 내년도에 전액 삭감되면서 농가의 비룟값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흑해곡물협정 파기 등으로 국제곡물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진정 조짐을 보이던 비료 가격도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비료의 3대 핵심 요소는 질소·인·칼륨이다. 최근 들어선 해당 료를 조합한 복합비료를 농가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복합비료의 가격은 요소와 탄산칼륨 등 원자재의 가격과 비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중앙회가 신정훈 의원실에 제출한 비료 원자재 가격 현황에 따르면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의 국제 시세는 지난 1월 418달러(1톤 기준)에서 지난 6월 279달러로 내림세를 보이다, 7월부터 상승 전환했다. 지난 9월 요소 국제 시세는 392달러를 기록했다. 세 달 만에 40.5%가 올랐다. 우리나라는 요소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계에서는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 영향으로 비룟값이 당분간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예산 삭감으로 비료 가격 인상분에 대한 농가 보조금 지원도 끊길 전망이다.
비료가격 인상에 따른 농민들의 부담은 얼마나 될까. 2021년 8월 요소비료인 ‘요소그레뉼’ (20㎏ 기준)의 가격은 1만600원에서 2022년 상반기 28900원으로 뛰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 농협이 비료 가격 상승분의 80%(1만4650원)를 보조하면서 농가의 실 구매가는 1만4250원이 됐다.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되면서 요소그레뉼의 가격은 2만700원(2023년 1분기) → 1만7700원(2023년 2분기)으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3분기 이후 다시 상승 전환하고 있다. 비료 가격이 올해 1분기 수준으로만 올라도, 비료 보조금이 사라진다면 농가의 실 구매가는 2년 만에 2배 수준으로 뛰게 된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최범진 정책실장은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으로 농가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보조금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농가에선 결국 비료 시비량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비료 사용이 줄면 결국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 소비자 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외신에서도 글로벌 비료 가격 상승에 따른 농작물 생산량 감소와 이에 따른 기아 확산을 우려하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지난달 15일 ‘비료 부족은 어떻게 기아를 확산하는가’(How a Fertilizer Shortage Is Spreading Desperate Hunger)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월 이후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비료 가격은 2배 이상 올랐다”는 국제구호단체 ‘액션에이드‘(ActionAid)의 관측과 함께 “서부 ·중부 아프리카의 식량안보 위기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세계은행(WB)의 전망을 전했다.
NYT에 따르면 비룟값은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공급망 불안을 계기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비료의 핵심 원료 중 하나인 탄산칼륨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세계 생산량의 40%를 생산하는데, 서방권의 러시아에 대한 통제로 탄산칼륨 공급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방국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국가의 제재를 받고 있다.
비료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 미국 등 주요국이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강달러’ 현상이 확산한 것도 농가의 비료 확보 부담을 키웠다. 비기축통화국인 개도국에선 달러 강세로 비룟값 상승 충격이 더 컸던 탓이다.
이에 대해 NYT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적극적인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높아졌다”면서 “국제 시장에선 비료 등의 가격은 달러로 책정이 돼 나이지리아와 같은 나라 입장에선 훨씬 비싸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룟값 부담에 농민들이 비료 사용을 줄이면서 농업 생산량이 현격히 줄어들 게 되고, 이는 식량 가격 상승과 대규모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NYT는 강조했다.
농업 보호를 위해 곡물 수입량을 통제하고 있는 한국에선 세계 곡물 가격 상승이 국내산 농작물 가격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는다. 하지만 비룟값 부담으로 농가가 비료를 적게 사용해 쌀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급감하게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시장에 쌀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쌀값이 확 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정세와 공급망 현황은 비룟값 상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장기화로 국제 유가 변동성이 커졌고,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중단 조치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해상 운임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 실장은 “지난 8월과 2021년 8월을 비교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폭만 17%에 달한다. 원재료 수입 부담이 상당히 늘었다”며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분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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