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K-무리뉴' 아냐, 선수성장이 우선"... 이정효 축구엔 '부성애' 있다[스한 위클리]
[광주=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감독 경력 첫 해에 2부리그에 있던 팀을 1부로 승격시키고, 2년차에는 K리그판을 흔들며 1부 상위권에서 노는 감독이 있다. 성적, 전술, 화법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그는 '효버지', 'K-무리뉴', '노란 안경의 사나이' 등 보유한 별명도 많다.
하지만 이 축구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적도, 화려한 기자회견도 아닌 '선수의 성장'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키워내듯 말이다.
스포츠한국은 프로축구 K리그1 광주FC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이정효(48) 감독을 광주 축구전용구장에서 만나 그의 지도 철학과 삶의 태도, 선수를 생각하는 진심을 들어봤다.
▶'5% 성장' 갈망하던 선수, '언더독 반란' 이끄는 감독으로
2022시즌 이정효 감독 체제로 새롭게 시작한 광주는 해당 시즌 K리그2(2부리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우승을 거두고 2023시즌 K리그1(1부리그)으로 자동 승격했다. 하지만 광주가 K리그1에서도 선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광주는 선수 연봉 지출 현황에서 2022시즌 K리그2 11팀 중 6위에 그쳤다. K리그1에서는 당연히 최하위.
하지만 2023시즌 K리그1에서 가장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팀이 바로 광주다. 승격팀임에도 '전 구단(11팀) 상대 승리'를 거두고 종료까지 3경기를 남겨둔 35라운드 현재 리그 3위(승점 57)를 달리고 있다. 구단 역사상 K리그1 최다승 기록(16승)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정효 감독은 "소신을 꺾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당장의 성적이 좋지 않아도 일관성 있게 공격축구를 하자'고 말했다"며 "외부에서는 광주가 얇은 선수층으로 인해 K리그1에서 부진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맞춰온 축구가 효과를 내며 시즌 중반에 더 좋아질 것이라고 봤다.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라와 준 덕에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력상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통상적으로 수비에 많은 비중을 둔다. 시민구단 광주를 이끌고 울산, 전북 등 국가대표 선수가 즐비한 기업구단을 상대로 공격축구를 펼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선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원동력이 된다. 나는 '5% 부족한 선수'였다. '더 좋은 지도자를 만나 잘 배웠다면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감독이 됐을 때 선수들을 위해 내린 답이 '공격'이었다. 계속 부딪히다 보면 실패에서 학습한다. 선수들이 훈련이나 경기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팀이 하고자 하는 축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계속 용기 있게 시도하자고 말한다. 선수가 축구에 흥미를 잃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신나게 하다 보면 날 새는 지도 모른다. 수비를 탄탄히 만든 상태에서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축구를 가장 신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더라."
▶"선수를 아들 키워내듯, 나는 무리뉴와 다르다"
이정효 감독은 축구 스타일만큼이나 거침없는 입담으로도 올 시즌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오죽하면 '직설 화법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제 무리뉴 감독의 이름을 딴 'K-무리뉴(한국의 무리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
"(직설적인 발언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팀과 선수들이 중요하지, 상대 구단에 잘 보일 필요는 없다. 감독으로서 능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인연도 많이 만들지 않는다. 2~3시간씩 사람 만나고 술 마시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축구에 전념하자는 마음이다. 능력이 없으면 기본도 안 된다."
이 감독은 "그래서 'K-무리뉴'라는 별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리뉴는 결과에만 집중하고 본인의 커리어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지 선수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름에 효도 효(孝) 자를 쓰기도 하고, 별명 중에서는 '효버지'를 가장 좋아한다.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길러내고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게 좋다"고 웃었다.
이정효 감독과 광주FC의 선전과 별개로, 팀의 훈련 환경은 좋지 않은 쪽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연습구장인 광주축구센터의 잔디 상태는 배수 불량으로 최악의 수준을 보였으며, 광주월드컵경기장과 광주축구전용구장은 이용 시간에 제한이 있어 선수들이 마음 놓고 연습하기 힘들었다. 이 감독은 다행히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 분들은 서명 운동을 펼쳐주시고, 시장님과 구단 대표님도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많이 애써주신다. 시 체육회는 운동장에 물도 뿌려주고, 밤에 조명을 켜주는 것은 물론 훈련 시간도 넉넉하게 편성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다. 광주FC가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광주체육센터 훈련장 잔디도 보수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광주FC가 창단한 지 13년차인데, 선수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훈련장이 아직 없다. 이제 바뀌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흙수저도 노력하면 금수저 될수있어", 이정효의 '축구 연금술'
이정효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발전하려는 의지와 '큰 꿈'을 모두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국내에서 경력을 더 쌓고 언어를 배워 아시아를 벗어나보고 싶다. 힘든 여정이 될 것이고, 위기도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성장한 만큼 지도자도 성장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배움을 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과의 미팅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선수들에게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질문하고, 이에 답을 하면 다시 여러 경우의 수를 제시해준다. 그렇게 계속 주고받는 거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이해하기 더 좋은 단어로 설명해줄 수 있었는데'하며 후회한다."
이정효 감독은 본인을 '흙수저'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자책의 말이 아니다. '노력 끝에 길이 있다'는 자세와 함께 좋아하는 배우의 명대사를 읊었다.
"남궁민 배우를 참 좋아한다. 토크쇼 출연 영상을 통해 무명시절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며 '더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배우 대사 중에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고서 본인이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3루타를 치고 3루에 갈 수 있다. '선수 이정효'는 프로에서 뛰긴 했어도 한 번도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는 등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독 이정효'를 보고 꿈을 키우는 젊은 지도자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로서 하나씩 노력하다보면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흙만 파라는 법은 없다. 땅을 파다 보면 가끔 금도 캘 수 있고, 금수저로 가공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선수들을 그렇게 한 명씩 발전시키는 보람은 엄청난 것이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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