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청조 말투' 고민 없는 소비…게을러진 한국 예능 ‘I am 절망한다’[위근우의 리플레이]
다들 작작 좀 하면 좋겠다. 사기꾼 전청조의 말투를 흉내낸 ‘밈(meme)’ 활용에 대한 얘기다. 최근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남현희와의 사기 결혼으로 유명해진 전청조는 또 다른 사기 행각을 위해 어설픈 한영 혼용 말투를 사용한 게 알려지며 한 번 더 화제가 됐다. 재벌가의 숨겨진 3세, 의과대학 졸업, 뉴욕 유학파 컨설턴트 등 다양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모든 프로필을 뒤섞어 자신을 소개하던 그는. 사기 대상에게 “OK.. 그럼 Next time에 놀러갈게요. Wife한테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ok 했어서 물어봤어요. But your friend랑 같이 있으면 I am 신뢰예요”라는 문자를 보내 자신이 한국어에 서툴고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유학파임을 어필했다. 근본 없는 한영 혼용 방식에 개중 쉬운 단어만 영단어를 사용한 것도 우습거니와, 유명인에게 접근해 스케일 큰 거짓말을 늘어놓던 사기꾼이 머리를 쓴 게 겨우 이 수준이라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워낙 단어 조합이 인상적이었던지라. 많은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어처럼 활용했다. 딱 그쯤에서 그쳤어도 괜찮을 뻔했다. 대중에게 화제성을 얻자 기업 마케팅에도 활용됐다. 카카오페이에선 정보성 콘텐츠인 ‘페이로운 생활’에서 OTT 싸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며 ‘I am 알뜰해요’라는 부제를 붙였고, 전자상거래업체 위메프에선 휴지 특가 판매 마케팅에 ‘I am 특가예요’라는 카피를 사용했다. I am 뒤에 원하는 단어만 붙이면 되니 만능이라면 만능이고 만들기는 더없이 쉽다. 바로 그 이유로 해당 밈의 사용이 스스로의 게으름과 안일함을 증명한다는 건 딱히 고려되지 않았다. 머리를 안 써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사고를 멈추고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청조가 변명의 여지없는 사기꾼이고 피해자들이 존재하며, 어설픈 말투가 우스울지언정 사기 행각을 위한 거짓 연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우스갯거리로 소비하긴 찜찜하다. 하지만 모두들 이 유행이 완전히 지나가기 전에 빠르게 한 탕 하고 뜨길 바란 듯하다. 지난 10월29일 방송된 KBS2 <1박2일>에선 연정훈에게 힌트를 보채는 문세윤에게 ‘I am not 신뢰예요’라는 자막을, SBS <런닝맨>에선 가수조와 비가수조를 나누는 과정에서 지석진이 자신은 가수라 하자 ‘I am 가수예요’란 자막을 달았다. 다음날 방송된 JTBC <최강야구>에선 최강 몬스터즈의 김문호 타석에 ‘문어 is going. I am 신뢰예요’란 자막이 붙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 모든 문구들이 ‘I am not 지성이에요’란 자백으로 읽혔다.
전청조 밈의 사용이, 과거 채널A <도시어부>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나온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자막으로 활용했던 것만큼 분노할 일은 아니다(우연이겠으나 앞서 인용한 <최강야구>의 장시원 PD가 당시 연출자였다). 다만 사기 피해에 대한 보상과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직 매조지 되지 않은 채 그저 전청조의 기행만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는다. 저토록 과장되고 허술한 허장성세에도 사람이 속는 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단지 평범한 도덕 관념을 지닌 많은 사람은 세상엔 단 1%의 진실도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미처 예상하지 못할 뿐이다. 전청조의 양심 없음이 아닌 허술함에 방점이 찍힐수록 피해자들은 저런 거에도 속는 이해 못할 사람들로 타자화된다. 최소한 기업이나 방송에서의 공적 발화에선 지양되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난 10월31일 충주시 유튜브에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던 홍보담당자가 ‘I am 충주예요’라며 해당 밈을 사용했다. 기업에, 예능 방송에, 지자체 홍보물까지. 다시 한번, 다들 작작 좀 하면 좋겠다.
I am 뒤에 원하는 단어 붙이면 완성
만들기도 쉽고 활용도는 만능 수준
공중파 방송 자막에도 앞다퉈 등장
번뜩임 없이 찰나의 유행 좇는 행태
한국에서의 밈은 대부분 탈맥락화
원조의 취지는 상실, 가볍게 부유
화제성 타고 기업 마케팅에도 사용
지자체 홍보물까지…작작 좀 하자
이들의 전청조 밈 사용이 게으른 건 윤리적 고민이 부재해서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에게 웃음의 윤리를 질문하는 건 좀 과하기도 한데, 너무 과도한 윤리적 부담을 지어서가 아니라 웃음의 윤리를 따지기엔 조금도 웃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밈 활용엔 어떤 번뜩임도 없이 찰나의 유행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증만 있을 뿐이다. 월요일이 오기 전 이번 주말까진 써야 해! 코미디언 엄지윤이 본인의 SNS에 역시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전청조와 경호원의 사진을 흉내(패러디라고 하기엔 아무런 아이디어도 더해지지 않았다)내며 위의 유행어를 썼다가 외려 네티즌들의 지적이 따르자 게시물을 지운 건 필연적인 귀결처럼 보인다. ‘진격의 ○○○’, ‘○○야 나 지금 되게 신나’ 같은 유행어들이 지상파 예능이나 정책 홍보에 등장하는 건, 그것이 대세라는 것뿐 아니라 이제 그 표현에 대중이 질려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윤리적 의구심 때문이든 미적 지루함 때문이든 전청조 밈의 효용은 이제 거의 다 됐다. 무려 BTS의 RM이 귀국하며 ‘I am 한국이에요’라며 이 행렬에 동참했어도 그러하다. 손절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이제 어련히 알아서 작작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된 걸까.
앞서 전청조 밈의 사용이 게으르다고도 했지만, 밈의 사용은 본질적으로 게으름을 조장한다. 언어든 이미지든 한국에서의 밈이란 거의 대부분 원래의 문맥에서 떨어져 나와 탈맥락화된 상태로 소비된다. 가령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나온 ‘연진아 나 너무 신나’라는 표현은 학교폭력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지만, 밈으로 사용될 땐 전체 문맥에서 지녔던 비판적 힘을 모두 잃는다. 말 그대로 ‘신나’는 일에 사용된다. 말은 단지 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지시하고 현실에 대해 사유하고 현실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다분히 물질적인 도구다. 밈이 된 언어는 이러한 물질성을 잃고 한없이 가볍게 부유한다. 이러한 부유가 한 땐 자유롭고 탈권위적인 유희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시체를 잃은 언어는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그저 웃자고 하는 말, 웃자고 올리는 ‘짤방’이니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 하지만 전청조 밈에서 알 수 있듯, 탈맥락화된 언어는 정말로 도덕적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아니다. 질문을 회피하고 숨기고 사유를 멈추는 방식으로서 그것은 밈이 된다. 이보다 더 게으를 수 있을까.
이렇게 보면 도덕적 접근이 세상을 ‘노잼’으로 만든다는 오래된, 그리고 현재 더 강력해진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원래의 문맥에서 벗어나 아무 말이나 가져다 붙이는 ‘I am’ 타령에 어떤 위트가 있는가. 사기꾼을 향한 최소한의 풍자적 맥락조차 없다. 반면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제목에 사용되었던 ‘member yuji(회원 유지)’의 yuji는 전청조의 그것보다 더 엉뚱한 동시에 그 자체 풍자적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겨레 칼럼에 김소민 자유기고가가 “(박사 논문 쓰는 것) Hal su it da”고 전유할 때 더없이 강렬하게 웃겼다.
도덕적 질문은 상상력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할 우회로로서의 좋은 유머를 개발한다. 도덕적 상상력이라 해도 좋겠다. 표현의 첨단에서 대중의 마음을 유혹하고 언어의 기발한 전유를 보여줘야 할 기업의 마케터들과 예능 제작진, 지자체 홍보 담당자가 ‘yuji’의 비판적이고 폭로하는 힘을 끌어내는 길 대신, 한없이 가볍게 ‘I am’으로 무책임하게 유희하는 길을 선택할수록 우리의 언어는 빈곤해지고 세상은 ‘노잼’이 된다. 생명력 없는 언어의 빠른 순환으로 ‘유잼’인 척할 뿐. 전청조 밈의 삼일천하처럼.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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