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판 다윗의 기적' 포항-김기동 감독, 넘어지고 쓰러져도 '결국 우승했다'[초점]
[포항=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작은 몸집으로 거구의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을 K리그 팀과 감독에 비유하자면 포항 스틸러스와 김기동 감독일 것이다. 크지 않은 선수단 규모에도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마침내 FA컵 우승까지 이뤄낸 '기동타격대'다.
포항은 4일 오후 2시15분 경상북도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전에서 전북을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포항은 이 우승으로 FA컵 5회 우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전북, 수원 삼성과 함께 FA컵 최다 우승 구단이 됐다. 2013년 대회 결승에서 전북을 승부차기 끝에 꺾었던 포항은 2023년에 같은 상대를 결승에서 만나 10년 만의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황인재가 든든히 지키고 있던 포항의 골문을 연 것은 야속하게도 포항에서 뛰었던 전북 공격수 송민규였다. 전반 16분 구스타보가 오른쪽에서 왼발로 올린 크로스를 송민규가 문전에서 오른발로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포항 골키퍼 황인재가 팔을 뻗어 막아냈다. 하지만 송민규가 왼쪽으로 흐른 공을 재차 왼발로 때린 것이 황인재 골키퍼를 지나 포항 수비수 하창래와 골대를 연달아 맞고 골라인을 넘어 송민규의 득점이 됐다. 포항 그랜트가 끝까지 공을 걷어내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포항은 그럼에도 결국 동점골을 만들며 승부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전반 44분 고영준이 왼쪽에서 박스 안으로 낮게 투입한 왼발 크로스가 전북 수비수 정태욱의 발을 맞고 굴절돼 박스 중앙으로 향했다. 이를 뒤에서 달려온 한찬희가 오른발로 밀어넣으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양 팀은 점수 균형을 이룬 채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 균형을 무너뜨린 것은 페널티킥이었다. 후반 3분 포항 수비수 신광훈이 포항 박스 안에서 전북 수비수 정우재에 태클을 걸어 넘어뜨렸고, 정우재가 고통을 호소했다. 주심이 이 상황을 온필드 리뷰로 확인한 후 전북의 PK를 선언했다. 후반 6분 키커로 나선 구스타보가 오른발로 마무리하며 전북에 2-1 리드를 선사했다.
포항은 리드를 다시 내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북의 골문을 공략하며 동점골을 노렸고, 결국 결실을 맺었다. 후반 29분 김종우가 헤딩한 것을 고영준이 가슴으로 떨어뜨려 놓은 것을 포항 외국인 공격수 제카가 공이 바닥에 닿기 전에 오른발 발리 슈팅을 때린 것이 그대로 전북의 골문 왼쪽에 꽂혔다.
포항의 집념은 결국 역전을 만들어냈다. 후반 33분 포항 미드필더 김종우가 전북 박스 앞 오른쪽에서 패스를 받음과 동시에 오른발로 공을 컨트롤하며 골문 방향으로 돌았다. 이후 가져간 왼발 중거리 슈팅이 땅으로 낮게 깔려 전북 골문 오른쪽 아래 구석을 그대로 파고들어 골망을 흔들었다. 포항의 3-2 역전. 포항은 후반 추가시간 홍윤상의 오른발 감아차기 골을 더해 4-2로 도망갔고, 안방에서 5번째 FA컵 별을 달았다.
포항은 2022시즌 K리그1 12팀 중 선수단 연봉 지출 11위를 기록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기동 감독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승점을 적립하며 최종 3위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까지 성공했다. 올해는 그보다 높은 리그 2위(승점 60)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김기동 감독은 포항 사령탑 부임 5년차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며 K리그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불렸다. 하지만 리그 3경기를 남기고 라이벌 울산에 리그 우승을 내주며 씁쓸함을 얻었다. 심지어 다가오는 36라운드가 울산과의 동해안 더비인데, 맞대결 승리로 뒤집어볼 시도도 못하고 우승을 내줬다.
포항은 이날 홈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도 전북에 1-2로 끌려가며 무관에 그치는 듯했다. 하지만 집념으로 3골을 몰아치고 꿈에 그리던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포항의 5번째 FA컵 우승이자, 김기동 감독이 팀의 사령탑으로서 거둔 첫 우승이었다. 상대가 울산과 함께 K리그 구단 연봉 지출 1,2위를 다투는 전북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있었다. 김기동 감독의 포항은 올 시즌 전북 상대 4승1무의 압도적인 전적도 세웠다.
경기 후 김기동 감독은 "2021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우승을 해서 이날은 이기고 싶었다. 선수들에게 경기 전에 '자신 있다. 우승한다' 고 얘기했다. 선수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항 유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포항에서만 뛰고 있는 '성골' 고영준은 "어릴 적 포항의 2013년 FA컵 우승을 지켜봤는데, 10년 후 포항 선수로 뛰면서 우승하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이것보다 기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포항과 함께한 우승이어서 그런지 지금이 진심으로 더 좋다"고 밝혔다.
리그를 놓치고 이날 FA컵에서도 한때 전북에 리드를 내주며 트로피와 연이 없나 싶었던 김기동 감독의 포항. 하지만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지로 기적의 역전 우승을 만들며 구단 역사에 또 하나의 별을 추가했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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