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로 간 파독 광부…한인 사회 위한 나눔 실천 50년
[앵커]
올해는 독일에 한인 광부가 파견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파독 광부들은 기본 계약 기간 3년을 마친 뒤 현지에 정착하거나 귀국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미주와 유럽 등지로 다시 이주했는데요.
전 세계 한인들의 다양한 삶을 소개하는 <글로벌 코리안>, 이번 주는 파독 광부 출신으로 캐나다에 이주해 한인 사회를 위해 오랜 세월 기부를 실천해온 동포를 소개합니다.
[구자선 / 파독 광부 출신 식품회사 대표]
옥탑방에서 이제 자취를 하고 있는데 거기 누워서 이제 잠을 자고 있는데 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요. (친구가) 야, 자선아 너 3일을 굶었으니까 배고프지? 그러면서 이거 먹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 밥을 먹으면서 얼마만큼 고마웠던지 그래서 그때 제가 하느님 제가 받은 이 고마움을 앞으로 제가 돈을 벌면 천 배로 갚겠습니다. 천 배로….
6.25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 7남매가 졸지에 아버지 없는 참, 고아가 돼버렸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뭐 누구나가 다 그랬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생활이. 독일 광부 모집이 있어서 독일 가면 돈을 더 벌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외국 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잖아요. 광부가 실상 얼마나 힘이 들고 또 독일에서의 광산 조건이 어떤지도 모르고 이제 지원해서 독일 가서….
독일에서는 철두철미하게 힘들고 위험한 일에는 대가가 따라요. 돈을 더 받는단 말이죠. 그래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서 제가 '슈펠템' 기둥(쇠기둥)을 세우는 일을 했는데 그걸 하다가 기둥이 넘어지면서 내 왼쪽 머리를 쳐서 거기서 이제 정신을 잃고…. 두 달 정도 병원에 있으면서 치료를 받으면서 그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내가 여기서 살아서, 광산에서 살아서 나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상태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결국은 이제 다 퇴원하고 나서 다시 광산에 들어가면서 제가 마음속으로 결심한 것이 내가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하든지 막장에 가서 일을 안 할 정도의 일은 좀 해야 되겠다….
(당시 한인이) 한 1,500명, 한 2천 명 정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인데 주로 이제 독일에서 오신 분들이 주 이제 많이 계셨죠. 가정을 이루어 나가고 이렇게 하는 한인사회의 하나의 모티브, 모태가 됐다고 보면 되겠죠. (동료와) 50대 50으로 돈을 대고 전체 자본금이 7천 달러였습니다. 그래서 임대료 내기도 어려워서 처음에 이제 지상에서 시작하지 않고 지하에서 시작해서 그때는 그 콩나물이나 두부를 하는 분들이 없었어요. 한국분들이. 그리고 또 한국 식품들이 많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제 주로 이제 중국 사람들한테 의지해서 (사다가) 왜 우리가 왜 콩나물을 못 길러 그다음에 두부를 왜 만들 수가 없어 해서 이제 둘이서 의기투합해서 콩나물서부터 두부 이렇게 시작했죠.
나도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도 어떻게든지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회사에 학교를 들어가는 자녀, 대학 들어가는 자녀가 있으면 제가 장학금을 줬고 여기 아주 장학금 수여식을 했어요. 직원들한테 사기를 북돋워 주는 것도 있고 또 이렇게 장학금 받고 일한다면 그 부모도 더 의기양양할 것 같고 그래서 장학금 수여식도 계속 해오고 그다음에 이제 한인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이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 힘껏 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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