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끝판왕’의 몰락…현대차가 미소 짓는 이유는?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3. 11. 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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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급격한 가격 인상에 고객 이탈
합리적 가격 등 가성비 차량 끌면서
현대차·도요타 등 신규 소비자 흡수
지프도 부랴부랴 ‘저가형 모델’ 출시
2024년형 지프 랭글러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캠핑과 차박(차에서 숙박) 유행은 순수 자연을 탐닉하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과거 맨발로 야생을 뛰어다녔던 인류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거친 자연 속에서 자신의 발이 되어줄 이동수단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수요를 발판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장을 누볐던 미국 자동차기업 지프는 오프로드 정복을 갈망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브랜드로 거듭났습니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점점 더 많아지자 지프 모회사 스텔란티스(전 피아트크라이슬러)는 견고하고 단단한 지프 이미지를 앞세워 거침없는 시장 영향력 확대에 나섰습니다.

시장 장악에 나선 지프는 전례 없는 차량 가격 인상에도 시동을 걸었습니다. 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지프 이미지를 ‘럭셔리 브랜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지프가 생산하는 일부 풀사이즈 SUV 모델 가격은 10만달러(약 1억4000만 원)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지프는 곧 미국시장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자동차기업 중 하나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전략은 동시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습니다. 차량 가격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리까지 급등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지프에 충성심을 보였던 기존 고객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프로드 대명사’로 불리는 지프는 미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점점 입지를 잃고 있습니다. 소비자 변심으로 인한 여파가 그대로 시장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던 지프 판매량은 올해 3분기에 4% 줄어들며 9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올해 1~9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는데, 지프 대표 모델인 ‘컴패스’와 ‘그랜드체로키’를 제외한 모든 모델의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프 판매량은 이미 2021년 2%, 지난해 12% 감소한 바 있습니다.

지프에 위기가 닥쳤지만 반대로 다른 경쟁기업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프가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자 일부 소비자들은 조금 더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차량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도요타,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은 차량 재고 회복과 소비자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지난 분기 개선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특히 현대차와 도요타 등은 저가 옵션을 갖춘 가성비 모델을 선보이며 새로운 고객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프 모회사 스텔란티스를 밀어내고 곧 미 자동차시장 4위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짐 모리슨 지프 북미 총괄 부사장이 지난 9월 13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된 북국제오토쇼에서 지프 글래디에이터 픽업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지프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 자동차 산업의 주요 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튼튼한 차체와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무장했음에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본인 취향을 실현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지프 랭글러 모델 등을 구입하며 입소문을 탔습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추가 비용을 들여 랭글러 등 모델을 튜닝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덕분에 랭글러를 생산하는 지프 매출도 수직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지프가 랭글러 등 주요 모델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가성비’라는 최대 무기 중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지프는 지난 5년 동안 인기모델 랭글러의 가격을 40% 인상했습니다. 이는 관련 업계 평균 인상가인 31%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입니다. 여기에 근 20년 만에 가장 높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은 5만달러(약 6700만 원)를 넘는 차량 구입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시절 제품기획 디렉터였던 마크 쿠들라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이탈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며 “지프는 수많은 난관과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지프이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화위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가성비를 위한 ‘저가형 모델 출시 확대’가 대표적입니다. 지프는 지난 9월 그랜드체로키 저가형 모델을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가격은 3만6000달러(약 4900만 원)로 책정됐는데, 이는 오리지널 모델의 시작가보다 약 3000달러 낮은 수준입니다. 또 다른 대표 모델 랭글러 저가형의 ‘2도어 스포츠’ 모델은 3만2000달러(약 4300만 원), ‘4도어 기본 모델’ 가격은 그랜드체로키 저가형 모델과 같은 3만6000달러부터 시작합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일각에서는 간단한 몇 가지 옵션을 추가하면 순식간에 가격이 1만~2만달러가 올라가는 만큼 저가형 모델이 여전히 완전한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례로 랭글러 기본 모델을 구입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색상은 흰색 한 가지 뿐이지만, 만약 소비자가 595달러(약 80만 원)를 추가하면 선택할 수 있는 색상은 9가지로 늘어나게 됩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옵션 중 하나인 ‘검은색 하드톱’을 선택할 경우 1495달러(약 202만 원)가 추가됩니다. 미 자동차 전문조사기관 스트래티직비전의 알렉산더 에드워즈 대표는 “지프가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좋지만 소비자 충성심을 유지하려면 그들이 가격 인상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격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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