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계 ‘카파’, ‘돌핀’…한국 시계의 현주소는 [김범수의 소비만상]
명품시계의 고장을 꼽는다면 흔히 스위스를 필두로 독일, 일본, 경우에 따라서 이탈리아나 미국 등을 꼽는다. 최근에는 가성비 시장에서 중국 시계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고부가가치인 시계 산업이 한국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은 아쉬울만 하다. 한국이 처음부터 시계산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감성, ‘카파’와 ‘돌핀’ 시계
4일 업계에 따르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시계로 대표되는 시계는 단연 ‘카파’(Kappa) 브랜드를 꼽을 수 있다. 카파 시계의 역시는 1970년 삼성전자의 시계 부문에서 시작됐다. 1983년에는 SWC(Samsung Watch Company)의 전신인 삼성시계로 분사됐다.
손목시계 브랜드의 카파 역사는 2018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카파 브랜드는 신영정밀이라는 업체에 매각돼 벽시계와 탁상시계로 찾아볼 수 있지만, 추억속의 카파 손목시계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카파 손목시계는 외국 브랜드 시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청소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졸업이나 입학선물용 시계로 인기가 있었다. 기자 역시 중학교 졸업선물로 한 선생님에게 받은 시계도 카파였다. 또한 1990년대 이전에는 예물시계 시장에서도 카파를 찾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카파 손목시계는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사실상 존재 가치를 잃게 됐다. 학생들은 더 이상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고, 사실상 회중시계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게 됐다.
물론 ‘수능시계’ 등 시험 볼 때 시간을 확인하는 아날로그 시계의 명맥은 유지됐는데, 카파 손목시계는 아날로그보다 전자시계가 주력이었다. 아날로그 기능만 가능한 수능시계 시장은 카파보다 더 저렴하고 심플한 일본의 카시오가 사실상 ‘싹쓸이’ 하게 됐다.
최근에는 ‘레트로’(Retro) 열풍이 불면서 30~40대 세대들이 과거 학창시절에 사용했던 시계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카파 손목시계는 사라졌지만, ‘돌핀’(Dolphin) 시계의 인기는 역주행 중이다.
돌핀 시계 역시 국내 스포츠 시계 브랜드로, 모든 제조 공정이 중국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이 아닌 국산 공정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과거보다 물가가 급격히 오른 오늘날에도 10만원 이하의 엄청난 ‘가성비’를 자랑한다.
돌핀 시계는 과거 10대와 20대는 물론 군대시계로 인기가 많았다. 기자도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생일선물로 돌핀 시계를 받았다고 자랑하면 부러워했고, 기자 역시 어렸을 때 선물로 돌핀 시계를 받았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스마트폰 시장의 발전, 군대시계 같은 오프로드용 시계는 ‘지샥’(G-SHOCK)을 필두로 카시오 시계가 장악을 하고 있어서 인기가 식고 있었다.
하지만 레트로 붐으로 돌핀 시계는 추억을 자아내는 30~40대는 물론 10~20대 중 ‘영트로’(Young+retro) 계층들도 찾는 시계로 달라졌다.
◆한국의 대표시계…‘로만손’과 마이크로브랜드 ‘티셀’
시계 산업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서 ‘국가대표’ 시계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는 무엇이 있을까. 시계 애호가들이 첫 번째로 꼽은 브랜드는 ‘로만손’(Romanson)이다. 로만손은 1988년에 창립돼 무려 35년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흔히 ‘절대시계’로 불리는 국가정보원의 기념 시계 역시 로만손에서 제작된다.
로만손 시계 중 ‘카이로스 클래식’ 모델은 ‘빅5’ 브랜드엔 브레게(Breguet) 디자인을 닮아 ‘로레게’(로만손+브레게)로 불리며 찾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일명 로레게는 심플한 로마자 인덱스와 블루핸즈(Blue Hands), 6.5mm의 얇은 두께 등으로 흔히 정장을 입을 때 착용되는 ‘드레스워치’로 잘 어울린다.
시계 제조로 시작한 로만손은 2003년 귀금속 브랜드로 출범했는데 흔히 알려진 ‘제이에스티나’다. 제이에스티나 브랜드가 더 유명해지면서 모기업이었던 로만손이 거꾸로 자회사가 된 경우다.
로만손 시계는 시계의 엔진에 해당하는 무브먼트 연구와 개발을 통해 자체적으로 무브먼트를 제조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존의 무브먼트를 수정해 제조하는 수준으로 예상된다.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독자적인 기술로 제조되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많은 연구개발 비용이 발생하지만, 글로벌 주요 시계 브랜드 매출액 수준이 안될 경우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이에스티나의 매출액은 673억원으로 이 중 로만손 시계의 매출 비중은 10% 전후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로 언급되는 국내 브랜드는 ‘티셀’(Tisell)이다. 기성세대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브랜드에 속한다. 티셀은 2011년에 시작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마이크로 브랜드다. 티셀의 모든 제품은 기계식 시계로 이뤄져있다. 젊은 계층 사이에서 입문용 기계식 시계로 알려진 브랜드다. 기자 역시 10년전 기자 초년차 때 두 점 구입해 꾸준히 사용하다가 최근에 처분한 시계 브랜드이기도 하다.
다만 대놓고 브랜드 명까지 따라한 ‘짝퉁’이라고 치부하기엔 억울한 감이 있다. 대부분의 시계 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하지만 짝퉁이나 저가 시계에 들어가는 형편없는 기계식 무브먼트가 아닌 어느정도 검증된 무브먼트와 재료를 검수한다.
또한 시계에 들어가는 유리(글라스) 종류 중 흠집에 강한 사파이어 글라스나 도금이 아닌 열처리 공법으로 마감한 블루핸즈를 30만원 이내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강점이다.
로만손 시계나 티셀 시계를 보면 한국 시계가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것과 동시에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로만손과 티셀을 포함한 한국 시계 중 그나마 잘 팔리는 모델은 브레게, 롤렉스, IWC 등 명품브랜드 시계의 모습을 많이 따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마이크로 브랜드 역시 할말은 있다.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모델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명품시계 디자인을 따온 시계 모델이 꾸준히 팔린다는 점은 한국 시계 산업이 점차 하향세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시계, 갤럭시 워치가 대안이 될까
애플워치와 갤럭시워치 등 스마트워치의 장점은 다양한 기능의 탑재다. 이는 수 천만원 이상에 팔리는 기계식 시계의 기능성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에는 ‘스마트워치는 아저씨나 차는 시계’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 출시되는 스마트워치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개선돼 젊은 계층들이 많이 찾는 시계로 달라졌다. 또한 100만원 이하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다.
기자가 최근에 만난 50명의 사람 중 시계를 차고 있었던 사람은 35명이었다. 이 중 애플워치나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사람은 23명이었다. 물론 기자 주변의 직장인 중 30~40대를 표본으로 조사한 수치라 신뢰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직장은 상당수는 스마트워치를 선호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스마트워치의 시작을 알렸던 2014년,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애플워치의 매출액은 2015년 유명 스위스 시계업체의 매출액 총합을 25~30% 수준까지 상승했다. 또한 2019년 애플워치 판매량은 약 3100만개로 같은 기간 2110만개가 팔린 스위스 전체 시계 판매량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는 손목시계의 패러다임이 ‘사치재’ 시장을 제외하면 기계식 또는 쿼츠시계가 스마트워치로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계를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싶거나, 시계 자체에 매료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 개에 수 백만원 하는 시계보다 100만원도 하지 않은 스마트워치가 훨씬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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