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 장기화 피해자’ 삼성 기흥연구소 전 연구원, 끝내 숨져
최근 국정감사에서 ‘역학조사 장기화의 피해자’로 소개된 삼성디스플레이 연구노동자 최진경씨(49)가 끝내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숨졌다. 유방암과 싸우던 최씨는 사망 전 “꼭 산재보험법이 개정돼 더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현재 국회엔 역학조사 기간을 180일 이내로 정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국가가 피해자에게 선보상하도록 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4일 “삼성디스플레이 기흥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최씨가 오늘 별세했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내어주신 최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2000년 삼성디스플레이 기흥연구소에 입사해 LCD용 핵심 소재인 감광제 개발업무를 하면서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됐다. 퇴사 이듬해인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019년 3월 산재 신청을 했다.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따지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그 사이 최씨의 온몸엔 암세포가 퍼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역학조사를 근거로 지난 7월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이후 최씨는 불승인에 대한 불복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최씨가 환노위 의원들에게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최씨는 편지에서 “무엇을 조사하느라 4년이 필요한 것인지요. 인력부족을 떠나 직무유기 같다”며 “제가 사용한 수많은 화학물질과 모든 방사선 설비에 대해 조사도 못하고 4년을 끌더니 납득할 근거도 없이 불승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 인정을 받으면 치료비와 생계비에 보탬이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제 몸 상태가 당장 하루 앞을 장담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우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1~8월 처리된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1072일, 직업환경연구원 581.5일이다. 산재 신청 노동자가 역학조사 진행 중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사망자는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59명이었다.
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대신 읽어드렸던 최씨의 편지는 고인께서 우리 사회에 보내는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무엇을 조사하느라 4년이 필요했느냐’는 최씨 질문은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거대하고 관료적인 국가의 제도 앞에 납득할 만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최씨께 한없이 죄송할 뿐”이라고 적었다. 우 의원은 이어 “직업성 암과 희귀질병에 걸려 산재를 신청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몇 년을 기다리다가 결국 결과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수많은 ‘최진경들’의 억울한 죽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11월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공청회를 열어 역학조사 장기화와 국가의 산재 책임성 강화를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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