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전문' 전직 검사가 본 전청조 "허술하다고요? 90점 짜리"

원다라 2023. 11.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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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전 서울동부지검 검사가 본 전청조]
"이혼 후 남현희 취약한 심리 노려 속였을 것"
"자산가·사회초년생 대상 맞춤형 사기 전략"
"사기, 누구나 당할 수 있어"...피해자 32만 명
사기 통상 10년 이하 징역·기소율 20% 불과
남현희 전 펜싱 국가대표의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혐의를 받는 전청조씨가 3일 오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한국 사회가 남현희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27)씨의 사기 행각에 떠들썩하다. 경찰이 3일 현재까지 확인한 전씨의 사기 피해자만 15명, 피해액은 19억 원을 웃돈다. 재벌 3세 행세를 하며 경호원을 대동하고, 학력과 성별, 가족관계 등을 속이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전씨의 황당한 사기 수법에 대중들은 다수의 피해자들이 고액의 투자금을 선뜻 내놓은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씨는 고단수의 노련한 사기꾼일까 아니면 허황된 거짓말로 자신마저 속인 성격장애 환자일까.

33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사기 사건을 전문으로 다뤄 온 법무법인 민의 임채원 변호사(전 서울동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에게 전씨의 사기 수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전씨 사기 수법은 100점 만점에 90점이다"라며 "모든 사기 전략을 쏟아부어 피해자를 속였다"고 평가했다.

검사 출신 임채원 변호사가 2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민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재벌 3세, 남장 여자, 경호원 등 전씨 사기 수법이 허술하다.

"검사 시절 사기 피해자들에게 나도 '아니 이 말을 믿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피해자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그러게요. 저도 뭐에 홀린 것 같았어요'였다. 그런데 전씨 사기 수법을 점수로 매기면 사기꾼들을 많이 접해본 전직 검사나 변호사도 당할 수 있는 수준인 80~90점은 줄 만하다. 전문가들이 보는 사기 전략이 총 13가지 정도 되는데, 전씨는 모든 전략을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인가.

"처음에는 미안할 정도로 잘해주면서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약점을 공략해 거액을 건넬 정도의 친밀함과 신뢰를 짧은 시간 안에 쌓는다. 이혼이나 자녀 문제 등이 치명적 약점이다. 사기꾼들은 추후 '내가 너한테 이렇게 했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못 믿어?'라는 식으로 피해자의 미안한 감정을 활용하는 전략도 쓴다.

말솜씨와 임기응변도 사기꾼들의 주 무기다. 피해자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도 사기꾼이 재력이나 유명인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면 이내 의심을 거둔다. 돈을 뜯어낼 때는 작은 거래부터 시작한다. 목표 금액까지 이자 지급 등 약속도 잘 지킨다. 그 뒤에 거액을 요구하는 식이다.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것도 주요 전략 중 하나다. '너한테만 알려준다' '너와 나만의 비밀'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주변인으로부터 피해자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전청조는 어떻게 남현희를 속였나.

"언론에 알려진 사실만 보면, 전씨는 모든 전략을 쏟아부었다. 우선 고가의 수입차와 명품 등의 선물 공세를 했다. 고가의 주상복합 건물에 살면서 여러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녔다. 재력을 과시하는 병풍효과를 썼다. 남 전 선수가 이혼 후 심리적으로 취약했던 상태도 전씨가 이용했을 것으로 본다. 또 남 전 선수가 운영한 펜싱학원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사건 무마에 전씨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신뢰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의 첫 만남을 보면 남 전 선수가 속을 수밖에 없었겠다고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있다. 전씨는 '열심히 펜싱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으로 접근했다. 여러 역경을 딛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남 전 선수로서는 열정적으로 펜싱을 배우는 전씨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거다. 게다가 키와 체격이 작아 과거 자신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전씨가 첫 만남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펜싱 대결을 한다고 했다는데, 보통 사람들은 허황된 얘기 같지만 남 전 선수는 '재벌 3세의 세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전씨가 남 전 선수를 상대로 고도의 심리전과 치밀한 시나리오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남현희와 공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남 전 선수가 전씨에게 속은 것 같다. 남 전 선수를 공범으로 보는 건 주객이 전도된 거다. 경찰 수사를 통해 공범 여부가 밝혀져야 하지만 대중이 섣불리 남 전 선수에 대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봐서는 안 된다. 남 전 선수는 전씨에게 속은 피해자이고, 경찰 수사를 통해 공범 여부가 밝혀지면 그때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사기 피해자만 15명, 피해금액이 19억 원이다. 피해가 큰 이유는.

"전씨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 사기도 굉장히 치밀했다. 피해자들은 전씨가 어디에 투자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투자금이 사용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전씨의 배경과 말 등에 속아 묻지마 투자 사기를 당한 거다. 전씨는 고급 주거지 거주자와 사회초년생들이 모인 독서모임 등을 통해 상대방의 약점을 간파하고,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사기 전략을 촘촘하게 마련해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재테크 열풍을 악용해 '고수익 보장'을 내건 투자 사기가 요즘 유행하고 있다. 전씨도 이 같은 대중의 투자 심리를 활용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임채원 변호사는 2일 "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임 변호사는 유년 시절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무허가 건물에 살면서 가난에 시달린 아픈 경험이 있다. 그의 부모는 폐품을 분류하는 일을 하며 20여 년간 사기로 진 빚을 갚았다. 그의 어머니는 폐섬유증으로 숨졌다. 그가 사기 전문 검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힘들었던 삶을 돌아보며 그는 "사기는 한 사람의 생명은 물론 한 가정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며 "누구나 쉽게 몰라서 당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2017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기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임 검사의 사기 예방 솔루션' 책도 펴냈다.

-지난해 사기 피해자가 32만5,848명이다. 범죄 유형 중 피해자가 가장 많다.

"누구나 사기를 당할 수 있다. 나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경험에 비춰보면 △스스로 통이 크다는 점을 자랑하는 사람 △치밀하지 않은 사람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기 피해를 입기 쉽다. 또 '나는 사기를 당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잘 당한다. 특정 대상이 없다는 게 사기 피해의 특징이다.

사기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비상장 주식 상장 △ 기획부동산 △코인 투자 △전세금 △신도시 신축 상가 분양 사기 등이 많다. 이 과정에서 회사명을 조금 바꿔서 투자를 유도하거나 신분증이나 서류 위조 등으로 피해자를 손쉽게 속일 수 있는 수법도 많다."

-사기 예방 방법은 뭔가.

"무조건 증거를 남겨야 한다. 사기꾼들은 인간관계와 비즈니스를 뒤섞는다. 차용증이나 투자약정서 등을 요구하면 '우리 사이에'라는 말로 뭉갠다. 금전거래 목적도 분명해야 한다. 돈을 빌려줄 때는 계좌이체 등으로 하고, 투자금 명목일 때는 투자약정서를 써야 한다. 통상 사기꾼들은 투자금을 받고 수익이 나지 않아 수익금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 투자 용도 등이 있는 투자약정서를 써야 한다.

상대의 말이 맞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는 등기부 열람이 필수다. '회사 대표' 등으로 소개받으면 실제 그 회사가 존재하는지, 직책이 맞는지 등 기초 조사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인맥을 과시할 때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전씨처럼 '재벌 혼외자'라는 신분을 제시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어 속기 쉽다."

-법적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전씨도 사기 전과가 있었다.

"사기 혐의는 많아야 징역 10년 이하다. 사기꾼들이 스스로 '고수익 화이트칼라'라고 부를 정도다. 심지어 증거가 없거나 부족해 기소율이 20% 수준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이 '속은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고소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기를 당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피해자도 있다. 사기는 중대 범죄다.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서 '칼만 들지 않은 살인'으로 불린다. 사기 형량을 늘리기에 앞서 피해자들이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사기꾼을 처벌할 수 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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