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화물매각, '반대1·기권1'에 담긴 숙제
아시아나 이사회, 격론 끝에 화물 매각 승인
숨통 트인 대한항공…해결 과제 여전히 많아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대한항공, 큰 산 넘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위한 중대 고비를 넘겼습니다. 아시아나가 화물 사업부를 분리 매각키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EU집행위원회(EC)의 승인이 절실한 대한항공은 이로써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대한항공에게 EC의 승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EC가 승인하지 않을 경우 남아있는 미국과 일본도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EC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안 제출 기일을 연기해가면서까지 매달려왔습니다. 그 핵심에는 바로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 매각이 있었습니다. EC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할 경우 유럽 노선의 화물 사업 경쟁 제한을 우려해왔습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의 알짜로 꼽히는 화물 사업부 매각 카드를 꺼내든 이유입니다.
대한항공은 EC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을 해소할 방안을 제시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3년여간 끌어왔던 아시아나 합병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안도감을 내쉬고 있습니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대한항공이 겪어야 할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점쳐졌던 만큼 대한항공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가 화물 사업부 매각을 결정한 만큼 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명분이 없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승인'을 받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치열했던 이사회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 매각 결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대한항공이 아무리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 매각을 원한다고 해도 절차상 아시아나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때문에 대한항공도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아시아나 이사회의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이사회 전 낙관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차피 합병 주체인 대한항공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의 뜻대로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사회 내부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아시아나 이사회는 총 6명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4명으로 이뤄져 있었죠. 사내이사로는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와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안전보안실장(전무)이, 사외이사로는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배진철 전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위원장,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변수는 지난달 30일 열린 이사회 직전에 일어났습니다. 화물 사업 매각 반대 입장으로 알려졌던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안전보안실장(전무)이 돌연 이사회 이사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남은 이사회 멤버는 5명. 이중 3명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이사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했고 결국 밤 9시가 넘어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첫 이사회 당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합병을 자문하고 있는 김앤장 소속 윤 고문의 자격 문제와 알짜인 화물 사업을 매각하면 손실이 당연한데 이것은 '배임'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이사회는 지난 2일 다시 열렸습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된 이사회에서도 또다시 격론이 오갔습니다. 그리고는 진통 끝에 찬성 3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습니다.
'찬성 3·반대 1·기권 1'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에 대해 그동안 아시아나 이사회 멤버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확연히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 대표와 박 선임연구위원, 윤 고문은 찬성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반면 배 전 위원장과 강 명예교수는 반대의 입장이 확고했다고 합니다. 첫 이사회에서 윤 고문의 '이해 상충'에 따른 자격 문제로 표결에 이르지 못했고 이것이 두 번째 이사회로 이어진 이유로 꼽힙니다.
두 번째 이사회에서는 첫 번째 이사회에서 문제가 됐던 윤 고문의 자격 문제에 대해 국내 대형 로펌 등에서 "자격에 이상이 없다"는 해석을 받아 윤 고문이 자신의 표를 행사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로써 찬성 3표가 됐고 매각 반대를 주장해왔던 배 전 위원장은 자신의 뜻대로 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매각 반대 입장이었던 강 명예교수는 표결 전 중도 퇴장해 기권으로 처리됐습니다.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 매각은 이사회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진행될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 매출은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 전체 매출의 21.7%를 차지했습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을 당시 아시아나는 화물 사업부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나와 같은 대형 항공사(FSC)에서 화물은 여객과 함께 사업을 책임지는 두 날개 중 하나입니다.
아시아나가 화물 사업을 매각하면 주요 사업은 여객만 남습니다. 최근 여객 수요가 늘어나면서 FSC들도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화물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FSC에게는 여객의 비중이 크지만 화물 사업을 함께하는 것이 전체 사업 구조상 유리하다"며 "무엇보다도 아시아나는 그동안 화주들과 쌓아온 네트워크와 신뢰가 탄탄해 다른 누군가가 인수한다 해도 이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은 불씨
어찌 됐건 아시아나 화물 사업은 매각이 결정됐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한항공인 곧바로 아시아나에 대한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이는 대한항공도 아시아나가 화물 사업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큰 출혈을 감수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더불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는 숙제도 떠안았습니다. 대한항공은 내년 1월 말까지 EC의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입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이 그리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누가 살 것인가 입니다. 현재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4곳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격이 문제입니다. 업계가 추산하고 있는 가격은 5000억~7000억원 선입니다. 여기에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를 인수할 경우 약 1조원 가량의 부채도 떠안아야 합니다.
최근 화물 운임료도 크게 하락한 상태입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당시 대비 약 60%가량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에 대한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EC의 심사도 통과해야 합니다. 이번 결정으로 EC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충족하긴 했지만 또 어떤 문제를 걸고넘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대한항공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EC의 벽을 넘었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과 일본이라는 관문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EC에 비해서는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대한항공에 알짜 노선 반납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 결정으로 대한항공은 한숨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대한항공의 다음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제와서 쿠팡 따라해봐야' 퀵커머스 '몰빵'하는 GS리테일
- 건물 외벽 2만개 핀의 정체는? 아모레 사옥의 '비밀'
- '현대차 이어 기아까지'…인증중고차 시장 뜨겁다
- '13억은 비싸지' 이문아이파크자이 청약 저조…'철산'은 1순위 마감
- 상장주식 62% 매도 대기…영풍제지, 끝없는 하한가 '늪'
- [단독]바디프랜드 전 대표,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검찰 통보
- 셀트리온 '허쥬마' 미국에서 고전하는 까닭
- [공모주달력]에코프로 자회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수요예측
- 배터리 냉각 기술의 새 지평 '액침냉각'이란
- [르포]이문 청약 대어…"분양가 비싸 한산할줄 알았는데" 바글바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