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국적인 ‘이 과일’ 때문에…중남미에 대학살 벌어졌다고? [김기철의 역사를 바꾼 사물들]
1953년 7월, 의사 면허를 받은 직후 체 게바라는 바로 세 번째 여행길에 나섰다.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페루,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를 도는 여행이었다. 1953년 12월, 코스타리카에서 게바라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스 이모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체 게바라는 당시 자신이 지나왔던 에콰도르, 코르타리카, 온두라스 같은 나라들을 ‘유나이티드 프루트의 영토’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이들 중남미 국가의 경제권을 유나이티드 프루트라고 하는 바나나 회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바나나는 미국의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이었지만 정작 바나나가 생산되는 나라에서는 수탈과 억압의 상징이었다. 바나나가 상징하는 풍요와 수탈의 패러독스가 어쩌면 체 게바라를 혁명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51년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64%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당선된 아르벤스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과테말라를 반(半)식민경제의 종속 국가에서 경제적 독립국가로 전환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아르벤스는 토지개혁에 착수했다. 지주들의 땅을 수용해서 농민들에게 나눠주고자 한 것이다. 물론 무상몰수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주들에게 연 3% 이자가 붙는 25년 만기 채권을 지불하고 땅을 수용하려고 했다. 지주 출신이었던 아르벤스 대통령은 먼저 자신의 땅부터 내놓았다.
문제는 당시 과테말라 전체 농지의 70%를 바나나 기업인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FC)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UFC는 아르벤스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저항했다.
UFC는 공공연히 아르벤스 정부 전복 시도를 진행했다. 우선 존 클레멘츠라는 신문기자를 고용해서 아르벤스와 소련의 관계를 ‘조사’해서 기사를 쓰게 했다. 이렇게 작성된 <과테말라 보고서 1952년>이라는 문서가 워싱턴 정가에 뿌려졌다. UFC는 선전 영화도 만들었는데 영화 제목이 <크렘린은 왜 바나나를 싫어하는가>였다.
UFC의 선동에 즉각 미국 정치권이 호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UFC 뉴욕 법률사무소의 동업자였고 덜레스의 형 앨런 덜레스는 CIA 국장이자 UFC 이사회 출신이었다.
1953년 중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에 아르벤스 대통령 축출 작전을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고 CIA는 이런 보고서를 올렸다.
“과테말라 현 정부에 불만은 가진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뿐만 아니라 온두라스에 기반을 두는 카스티요 아르마스 장군(과테말라 출신 군인)의 군대도 고작 몇백에 지나지 않는 소수일 뿐이다.”
미국은 카스티요 아르마스를 직접 지원해서 쿠데타에 나서게 했다. 미국의 전투요원들이 과테말라로 이동할 때 UFC의 화물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1954년 6월 27일, 아르벤스 대통령은 결국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붙잡힌 아르벤스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속옷 차림으로 멕시코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그후 다시는 자신의 나라에 돌아올 수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체 게바라는 역시 베아트리스 이모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루스벨트가 씌워준 선한 얼굴의 가면을 쓴 양키들이 마침내 그 가면을 벗었습니다. 공군력과 현대장비로 무장된 그들의 군대와 재래의 방식으로라도 싸워야 한다면 우리는 그럴 것입니다. 지금 과테말라에서는 민중 정신과 진정한 투쟁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의사 자격으로 긴급구호대에 지원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군사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 청년여단에도 지원했습니다. (중략) 저는 이제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머지 않아 무장혁명에 뛰어들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바나나 기업인 UFC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 쿠데타를 지원하고 정부를 전복했다. 이것은 단지 과테말라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20세기 내내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 칠레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왜? 그런 의미에서 바나나는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메익스는 자신의 조카 마이너 키스를 코스타리카로 불러 수도 산호세에서 동쪽 항구도시 리몬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을 감독하도록 했다.
1877년 메익스가 사망하자 키스는 철도 사업을 이어받았다. 키스는 정부 지원없이 철도를 완공하는 대신 코스타리카 정부로부터 99년간 철도 노선과 리몬 항구 이용권, 그리고 32만 헥타르의 철도 주변 토지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냈다.
철도 노선을 손에 넣은 뒤 키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나나 재배였다. 처음에는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식량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철도를 이용해 리몬 항으로 운반한 뒤 거기서 미국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스는 바나나 수출을 목적으로 3개의 회사를 설립했고 사업을 카리브해 연안 전체로 확장했다. 1899년 키스가 보스턴에 기반을 둔 바나나 수입업자인 앤드루 프러스턴의 회사와 합병해 만든 회사가 바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FC)였다.
UFC는 코스타리카에서 성공한 사업 방식을 그대로 이용해서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로 확장했다. 철도 사업권과 토지 사용권을 확보한 뒤 여기에 바나나를 심어서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이었다.
정부가 UFC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CIA를 동원해 정부를 전복하기도 했고, 친미 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UFC는 미국의 중남미 전략의 첨병이었다. 쿠바에 처음 상륙해 바나나 농장을 건설한 것도 UFC였고 1912년 발생한 미국의 온두라스 침공도 UFC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국에 사실상의 경제 주권을 뺏긴 중남미 국가들을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이라고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 리퍼블릭을 미국의 중저가 패션브랜드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멸칭으로 처음 쓰인 말이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였다. 오 헨리는 1901년 온두라스에서 6개월간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독>이라는 작품을 썼는데 바나나 경제에 의지하는 가상의 국가인 앵추리아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국가 경제가 단일 작물에 의지한 나머지 문제의 작물을 통제하는 민간 기업에 좌지우지되는 나라를 의미했다.
1928년 콜롬비아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그들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한 것이었다. 작업장에 화장실을 만들어 줄 것과 임금을 UFC 소유 점포에서만 쓸 수 있는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현금으로 지불해 줄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UFC는 콜롬비아 정부를 향해 계엄령을 요구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계엄을 선포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항의 차원에서 시에네가 시 광장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모였다. 콜롬비아 군 수뇌부는 “5분 안에 구역을 깨끗이 비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콜롬비아 군인들은 기관총으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미국 대사는 군인들이 10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희생자가 최대 2000여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역사는 이를 ‘바나나 학살(Banana Massacre)’이라고 기억한다.
‘12시가 가까워 오자, 3,000명이 넘는 노무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역 앞 공터로 몰려나와 설 자리도 없어 옆길로 밀려 들어갔다. 줄지어 늘어선 기관총을 둘러싼 군인들이 길목을 모두 막고 버티고 있어 빠져 나갈 수도 없었다.’
‘14개의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처음에는 굳어버린 듯 아무런 반응도 비명이나 한숨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한쪽에서 찢어져 나온 죽음의 비명이 신비한 침묵을 깼다. 아아아악, 어머니! 지진처럼 진동하는 목소리, 화산 같은 숨소리, 홍수의 성난 부르짖음이 군중 한가운데서 폭발해 단숨에 사방으로 흩어졌다.…(중략)…무자비한 군대는 무릎을 꿇은 여자와, 그 여자가 있던 곳과, 높고 가뭄에 찌든 하늘과…너저분한 터전을 깡그리 쓸어내렸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하나인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가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나 고향인 세군도에 돌아와 중얼거린다.
‘아마 3,000명은 될 거야’. ‘뭐가요?’.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었을 겁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지상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여호와는 이 세상을 나누시어
코카콜라, 아나콘다사,
포드사와 그 외 회사들에게 주셨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사는
가장 큰 땅을 차지했으니
이 땅의 중부해안지대
아메리카의 날씬한 허리였다
자기 땅을 새로 명명하길
“바나나 공화국”이라 하였고
죽어 잠들어 있는 자들 위에,
자유와 국기,
영광을 쟁취했던
애국심에 불타는 선열들 위에서
어릿광대 극을 펼쳤다
자유의지를 멀리하게 하였고
시저의 왕관을 주었다
탐욕이 드러나게 했고
파리 같은 자들의 독재를 부추겼다
- 파블로 네루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사〉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 거의 한 종류의 바나나만 먹고 있다. 야생의 바나나는 씨로 번식을 하지만 인간이 재배하는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대신 우리는 바나나의 땅속 줄기를 잘라 심는 방식으로 바나나를 재배한다. 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해도 바나나가 열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만 얻게 된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한 품종인데, 처음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바나나 재배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우세 품종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품종이었다. 이 품종은 맛과 향이 진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 상품가치가 높았다.
바나나의 권력 지도를 바꾼 것은 파나마병으로 불리는 식물 전염병이었다. 파나마병은 푸사륨(fusarium) 속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병으로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특히 단일 품종 재배로 생물학적 다양성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파나나병은 긴 시간 동안 바나나 생태계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UFC 역시 그로 미셸로 미국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로 미셸은 이 병에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바나나 농장들은 바나나가 집단 폐사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UFC의 수익은 1950년 6600만 달러였다가 1955년 절반인 3350만 달러로 감소했고 1960년에는 21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UFC가 파나마 병으로 고전할 때 스탠더드프루트는 캐번디시라는 새로운 바나나 품종에 도전했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조금 부대껴도 흐물흐물해질만큼 부드러워서 장거리 수송이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탠더드 기술자들은 더 나은 운송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박스에 담아 운송하는 것이었다. 박스에 담아 옮기다 보니 트럭을 이용하는 것이 기차를 활용하는 것 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이 같은 품종 전환과 운송방식 변화는 UFC가 바나나 사업을 시작하면서 열었던 중앙아메리카의 철도 시대를 막내리게 했다. 결국 UFC도 캐번디시로 갈아탈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947년 미국에서 바나나 1파운드의 가격이 15센트였다. 지금 달러 가치로 치면 1.7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8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바나나 1파운드의 가격은 56센트로 3분의 1 수준도 안된다.
놀라운 것은 바나나 가격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놀랍도록 일관적으로 일정하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나나 맛 역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똑 같다는 점이다. 어딜 가도 저렴하고 일관된 가격, 어떤 바나나든 비슷비슷한 맛은 바나나라는 식물이 거둔 상업적 성공의 이유였다.
단일 품종 플랜테이션을 통한 생산량의 극대화, 물류 혁신을 통한 비용의 최소화라는 자본주의적인 비즈니스 매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그래서 바나나는 가장 세계화된 과일이자 가장 미국적인 과일이 됐다.
최근에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고 그것을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이 작품이 1억5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카텔란 역시 바나나가 가진 의미를 차용해서 “무엇이 예술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올해 5월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이 벽에 붙어 있던 바나나를 떼어내 먹어치우는 일이 발생했다. 그 학생 역시 그 행위를 통해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인 캐번디시는 1960년대 치명적인 곰팡이균이 일으킨 파나마병이 그로 미셸 종을 멸종시키면서 인위적으로 개발된 ‘클론 바나나’다. 곰팡이균에 강한 내성과 대량 재배가 되는 상품성으로 인해 지구에서 단 하나의 품종이 됐다.
그로 미셸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유전적으로 동일한 품종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 동시에 소멸될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캐번디시 앞에 놓인 위기 역시 여기에서 연유한다. 파나마병을 일으킨 곰팡이균이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하면서 캐번디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품종이 개발되지 않는 한 바나나는 인류의 식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학계는 멸종 기한을 향후 15년으로 예측한다.
멸종을 막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나섰다. 유전가 가위를 활용해 곰팡이균에 내성이 있는 바나나 품종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자체 유전자로 교정한다는 점에서 GMO와 다르다.
과학자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야생 바나나를 상품화하면 단일 품종, 대량 생산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다. 야생 바나나 중에는 여전히 씨를 가진 종류도 있다. 씨앗을 뿌려 키우면 꽃가루받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제이디테크라고 하는 국내 생명과학 벤처기업이 바나나를 썩게 만드는 파나마병으로 인해 멸종한 그로미셸 품종과 태국 등 동남아에서 주로 재배하는 ‘남와(Namwah) 바나나’ 등 신품종 10종을 재배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의 힘을 빌러서라도 종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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