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살다 떠난 故신성일..영원한 우리의 청춘스타 [Oh!쎈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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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계의 큰별, 배우 고 신성일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흘렀다.
이후엔 다시 배우로 돌아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2013년에는 배슬기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을 찍으며 영화인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결국 신성일은 하늘의 별이 됐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인의 연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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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박소영 기자] 대한민국 영화계의 큰별, 배우 고 신성일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흘렀다.
1937년생인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잘생긴 외모와 중후한 목소리로 수많은 청춘 멜로영화의 주인공을 따냈다. '연산군', '눈물 젖은 두만강', '망부석',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등이 그것. 아내인 엄앵란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멜로 호흡을 맞췄다.
1978년엔 정계에 입문했고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해 정치인으로 지냈다. 이후엔 다시 배우로 돌아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2013년에는 배슬기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을 찍으며 영화인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폐암 투병 사실도 당당하게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2017년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신성일은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담당 의사는 "폐에 5cm 이상 되는 암 덩어리가 있다. 3기 이상 되는 정도의 암 병기"라고 설명했고 여든이 넘은 신성일은 자신의 회복 가능성을 80% 이상이라고 잡았다.
늘 당당한 행보를 걸었던 그이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투병 중에도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시상식에 참석하며 공로상을 받은 뒤 암세포를 이겨내겠다 했고, 사망 한 달여 전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영화인으로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노신사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만 그의 생사를 두고 사망설과 위독설, 서울 병원으로의 이송설 등이 혼재했고 유족과 측근들 사이 말이 엇갈리는 혼선을 빚었다. 이는 의료진도 힘들다고 한 상황에서 고인이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않았기에 벌어진 감동의 사투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신성일은 하늘의 별이 됐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인의 연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comet568@osen.co.kr
[사진] OSEN DB,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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