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에 약탈된 고려 불상의 주인은 일본이 맞는가?
2023년 10월26일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고려시대인 1330년 서주(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 모셔졌다가, 1527년 일본 쓰시마의 간논지(관음사)에 모셔졌고, 2012년 10월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불상)이 과연 누구의 소유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판결이었다. 약탈 문화재의 소유권이 약탈당한 쪽에 있는지, 아니면 약탈한 쪽에 있는지에 대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라고 할 만했다.
1300년대 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불상
이날 대법원은 이 불상의 소유자는 서산 부석사가 아니라, 쓰시마 간논지라고 판결했다. 이 불상의 소유자를 둘러싸고 1심 대전지방법원은 부석사, 2심 대전고등법원과 3심 대법원은 간논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 세 판결을 종합하면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 불상의 원래 소유자는 부석사다. 둘째, 그럼에도 이 불상의 현재 소유자는 간논지다. 얼핏 보면 모순된 이 두 가지 결론은 역사적, 법률적, 정치적, 외교적 관점에서 두루 살핀 뒤 나왔다.
이 불상은 많은 국내 문화재, 또는 국외 소재 문화재와 달리 그 제작을 둘러싼 사실이 명확하다. 왜냐하면 이 불상의 몸 안에서 이 불상을 설명한 ‘결연문’(인연을 맺는 글)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결연문을 보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1330년 2월 당주 등 불제자 30여 명이 서주 부석사에 관음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다. 이 결연문은 1951년 간논지의 주지 안도 료슌이 발견했다.
그런데 이 불상은 만들어진 지 약 200년 뒤인 1527년 일본 쓰시마의 간논지에 홀연히 나타났다. 3심 재판 때 부석사 쪽이 낸 상고 이유서에 그 이유가 잘 설명돼 있다. 이 불상이 모셔진 뒤인 1352~1381년 쓰시마에 본거지를 둔 왜구가 다섯 차례 서산 일대를 약탈했고, 그 와중에 이 불상이 왜구의 지도자인 고노 집안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집안의 후손인 고노 모리치카가 1527년 고향인 고즈나에 머물면서 간논지를 창건해 이 불상을 모셨다. 이 불상은 1973년 나가사키현 문화재로 지정됐다.
1980년대에 이 고려 불상의 존재는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1996년 부석사 주지 도광이 간논지를 직접 방문했고, 2004년부터 서산 주민과 조계종단을 중심으로 이 불상의 환수를 위해 간논지와 교류를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 10월 한국인 도둑들이 이 불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도둑들은 곧 경찰에 잡혔고 정부는 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원래 소유자인 부석사가 이 불상을 일본에 넘겨주지 말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10년에 걸친 소송전이 시작됐다.
2017년 1월 대전지방법원이 내린 1심 판결은 부석사 손을 들어줬다. 이 불상의 결연문에 기록된 ‘서주 부석사’가 현재의 서산 부석사와 같은 절이고, 이 불상은 왜구가 부석사에서 간논지로 비정상적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심 재판부는 비정상적으로 가져갔다는 근거로 불상의 몸 안에서 나온 글에 이전 과정이 담기지 않은 점, 이 불상을 소유하고 절을 창건한 사람이 왜구의 지도자였다는 점, 14세기 후반 왜구가 서산을 약탈한 기록이 있는 점, 불상에 화상 흔적이 있고 머리관과 받침이 없는 점 등을 들었다.
일본법 따라 일본 손 들어준 우리 법원
그러나 1심에서 패소한 법무부는 즉시 항소했다. 이때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았다면 이 불상은 부석사에 가게 돼 있었다. 법무부는 “이 불상의 소유권에 대해 부석사와 일본 관음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외교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분쟁의 실질적, 종국적 해결을 위해 사법부의 면밀한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2023년 2월 대전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라졌다. 2심 재판부는 서산 부석사가 이 불상의 원래 소유자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신라 때 창건됐고 1330년 이 불상을 만들어 모신 서주 부석사와 이 소송을 제기한 서산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서산 부석사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682년 <동여비고> 등에 나오지만, <조선왕조실록>엔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황당한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는 만약 같은 절이라 하더라도 불상의 소유권은 부석사가 아니라 간논지가 가졌다고 판결했다. 왜냐하면 국제사법(私法, 옛 섭외사법)상 동산과 부동산의 물권은 그 소재지의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상의 소유권에 대한 준거법은 일본 민법이고, 일본 민법에 따라 이 불상에 대한 간논지의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일본 민법 제162조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돼 있다. 일본 간논지의 법인이 1953년 1월26일 설립됐으므로, 1973년 1월26일부터 소유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부석사의 소송대리인인 김병구 변호사는 “제국주의, 침략 국가의 문화재 약탈을 합법화하는 판결이었다.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는 취득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와야 했으나, 그 반대의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2심 판결은 2023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두 가지 판단 가운데 하나는 받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취득시효에 대한 판단은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1973년 1월 일본 민법에 따라 쓰시마 간논지가 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동시에 불상의 원래 소유자인 서산 부석사는 소유권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서산 부석사의 원우 주지는 “대법원의 판결은 약탈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고 점유한 경우에도 취득시효를 인정한 것이다. 장물임을 알고 점유했는데, 그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1997년 대법원은 “소유권 취득의 법률행위 등이 없음을 잘 알면서 타인 소유의 부동산을 무단 점유한 것이 입증된 경우, 점유자는 타인의 소유권을 배척하고 소유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산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법원, 약탈 문화재 은닉·불법점유 조장”
이 사건의 초기 소송대리인이던 김형남 변호사는 “국제사법에 따른다면 이렇게 결론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국내에 들어온 과정이 절도에 의한 것이므로 재판보다는 조정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가 나서서 약탈 문화재이자 절도품이라는 점을 모두 고려한 중재를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은 서주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는 같은 절이라고 판단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역사 기록이나, 주변에 ‘부석사’라는 이름의 다른 절이 없었던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조계종은 10월26일 바로 입장문을 내어 “약탈된 문화재에 대해 취득시효를 인정하는 것은 약탈 문화재의 은닉과 불법점유를 조장하는 것이다. 약탈 문화재에 대한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은 반역사적 판결이고, 전세계 약탈 문화재 문제의 해결에서 최악의 판례가 될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역사적·법률적 문제를 넘어 국내 정치, 한-일 외교 문제까지 담고 있다. 왜냐하면 2017년 1월 촛불 혁명의 와중에 부석사가 승소한 판결이,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뒤인 2023년 간논지의 승소로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2022년 정권교체와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이 2심과 3심 판결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온다. 원우 주지는 “정권이 바뀐 뒤 재판부의 태도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외교부는 한-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해 이 불상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간논지의 자발적인 반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예상도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 간논지 쪽도 한국이 먼저 불상을 반환한다면 이후 재반환 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원우 주지는 전했다. 또 강제동원 문제의 졸속 해결로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나 정치인들이 이 불상의 반환을 추진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은 “일본 보수 신문들이 이번 사건을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도한다. 따라서 일본의 일부 보수 정치인이 윤석열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 불상을 다시 한국에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불상은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에 보관돼 있는데, 아직 일본 반환 일정은 결정되지 않았다. 불상 반환을 집행할 법무부는 아직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도 “법무부로부터 아직 연락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대사관의 담당자는 “일본 정부는 불상이 소유자인 간논지에 빨리 돌아가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간논지와 연락해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협약에선 원소유자 반환이 대원칙
부석사나 조계종의 비판처럼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의 논란을 가라앉히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리상으로는 ‘동산에 대한 취득시효’를 인정한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 동산이 약탈 문화재임을 고려하면 합리적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협약은 약탈되거나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 원칙적으로 원래 소유자나 출처국에 반환하도록 규정한다.
1995년 맺은 위니드루아(UNIDROIT) 협약은 도난된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청구권 협약이다. 이에 따르면, 도난 문화재의 점유자는 그 문화재를 원래 소유자와 출처국에 반환해야 한다. 반환하지 않는 경우 한 당사국은 다른 당사국의 법원 등에 도난 문화재의 반환을 명령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또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은 출처국이 요청하는 경우 양 관련국은 문화재의 회수와 반환에 관한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을 규정했다.
외국에서도 이번 불상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82년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 변호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프랑스가 약탈한 14~15세기 아즈텍 달력을 훔쳐 멕시코로 가져가버렸다. 당시 프랑스는 “명백한 절도 행위를 통한 문화재 회복은 인정할 수 없다”며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2009년 프랑스가 멕시코에 ‘영구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문화재를 약탈해온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환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박물관은 약탈 문화재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례인 ‘엘긴마블스’를 원래 소유국인 그리스에 돌려주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엘긴마블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장식된 대리석 조각이었다. 그러나 1800년 전후 영국의 엘긴 백작(토머스 브루스)이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간 뒤 현재 영국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리스는 1983년부터 이 조각품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한국에서도 약탈 문화재를 일부 돌려받은 사례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된 외규장각의 문서 297권은 2011년 ‘영구 임대’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반환됐다. 또 1913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일본으로 불법 반출해 도쿄대학 도서관이 소장해온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47책도 2006년 서울대에 기증됐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이 빼앗아간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도 2007년 임대 형식으로 강화전쟁박물관에 돌아왔다.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을 때 가치 있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통계를 보면, 2023년 1월 기준으로 27개국 784곳에 한국 문화재 22만9655점이 있다. 이 가운데 일본에 41.6%인 9만5622점이 있고, 미국에 28.4%인 6만5241점이 있다. 이 재단은 2012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문화재적 가치가 크거나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 1204건 2482점을 국내로 환수했다.
김형남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선 서산 부석사가 패소했지만, 앞으로 일본에 약탈 문화재와 관련해 협상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잘 알 수 있다는 국제적 원칙을 가지고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을 설득해가야 한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반환 요구와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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