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먹다가 고지혈증 ‘날벼락’…와인은 괜찮다고?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11. 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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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프랑스의 역설이라니 뭔가 이름부터 와인의 향기가 풍기지 않나요? 1990년대 와인이 미국 등에 등장한 세태를 일컫는 말 입니다. 현재는 ‘믿었던 상식이 배신을 때리는’ 시장 상황을 얘기하는 경제 용어로도 쓰이죠.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와린이(와인+어린이)’에게 와인을 권유할 때 단골 소재로도 종종 쓰이고, 오히려 요즘에는 그 반대로 와인만 우겨대는 ‘와인무새(와인+앵무새)’들을 조롱하는 말로도 쓰이는데요. 도대체 와인과 무슨 관련이 있는걸까요?

오늘 와인프릭은 프렌치 패러독스와 이를 만들어낸 와인 속 특별한 물질, 폴리페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프렌치 패러독스를 나타낸 그림. [HealthFundaa]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쏘’의 배신?
삼겹살과 소주(a.k.a. 삼쏘), 민족의 소울푸드로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조합입니다. 고소하고 노릇하게 익은 육향의 삼겹살과 시원하고 씁쓸한 소주 한 잔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텨낸 나에게 주는 포상’으로 부족하지 않죠.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이지만, 안타깝게도 건강을 해치는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은 몸에 이상을 느낄 때 병원을 찾습니다. 대부분 병은 전조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 처방을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병은, 고지혈증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죠. 우리의 삼쏘가 대표적인 고지혈증 유발 음식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입니다. 삼겹살의 고소한 기름기와 소주의 알코올이 고지혈증을 폭발적으로 유발한다고 하죠.

실제로 국내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에서는 밥과 삼겹살, 소주를 먹은 후 체내 혈액의 변화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40대 남성을 대상으로 2명은 삼겹살 2인분에 소주 2병씩과 밥 1공기씩 먹게 했고, 1명은 된장찌개와 각종 야채반찬의 한식차림 식사를 시켰습니다.

식후 2시간30분이 지나 채혈한 혈액 중 밥·삼겹살·소주를 먹은 성인들은 식전과 비교해 혈중 중성지방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A씨는 224㎎/㎗에서 789㎎/㎗로, B씨는 260㎎/㎗에서 701㎎/㎗로 평균 3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반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 C씨 역시 108㎎/㎗에서 132㎎/㎗로 소폭 증가했는데, 이는 밥 속 탄수화물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지혈증이 어떤 병을 유발하냐고요? 혈액 속 필요 이상으로 많아진 지질(지방의 일종)이 혈관을 막아 동맥경화, 심하면 심뇌혈관질환으로 발전합니다. 쉽게 말해, 뇌경색이나 심장병 등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중증 질환을 유발한다는 겁니다.

국민 소울푸드인 삼쏘(삼겹살과 소주) [출처 미상]
삼쏘만의 문제? 고지혈증, 모두의 고민거리
체감이 편하도록 삼겹살과 소주를 예로 들었지만, 어디 삼겹살과 소주만 문제일까요. 모든 고기와 알코올 음료가 입에서는 맛있지만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1900년대 후반, 그러니까 경제의 발전과 그에 따라 함께 진화한 식문화(생존→즐거움)의 변화로 점차 서구 세계의 일반적인 문제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1979년 미국의 한 연구진이 재밌는 점을 찾아냅니다. 프랑스인들은 미국인이나 영국인 못지않게 기름진 음식을 즐기지만, 심장병에 덜 걸린다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빗대는 말로 프렌치 패러독스(프랑스의 역설)가 태어납니다.

당시 연구진은 18개 선진국을 골라 55~64세의 사람들을 표본으로 심장병 사망률이 어느 요인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지 조사했는데요.

프랑스 사람의 지방 섭취량은 미국 사람보다 많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비슷한데도 미국인의 심장병 사망률은 인구 1만명당 182명, 프랑스는 102~105명 정도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프랑스 남쪽 도시 루즈는 78명대로 가장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인 국민소득이나 의사와 간호사의 비율, 지방 섭취량 등 보다는 와인 소비량이 많은 나라일수록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레드와인의 폴리페놀(Poly phenol) 성분이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라는 게 추가적으로 밝혀지게 되고요.

결국 1990년대 초반 미국의 TV프로그램 <60 Minutes>를 통해 소개된 이 이야기는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미국 내 레드와인 판매량을 크게 늘리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보다 술도 적게 마시고 운동도 더 많이 하는데도 사망률이 높으니 미국 사람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고지혈증 일러스트. [출처 미상]
폴리페놀이 뭐길래?
그래서 도대체 폴리페놀이 뭐냐고요? 폴리페놀은 레드와인을 마실때 향과 맛의 복합미를 나타내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입니다. 붉은 색과 텁텁하고 씁쓸한 맛을 발현하죠. 포도의 껍질과 씨에서 주로 추출되는데, 레드와인을 오크통에 숙성할 때 오크통에서 우러나오기도 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카테킨과 쿼세틴, 레스베라트롤 등으로 불립니다.

폴리페놀은 레드와인 뿐만 아니라 색이 진하고 쓴맛과 떫은 맛을 지닌 일반 과일이나 채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레드와인의 폴리페놀은 특별합니다.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한 번 작용한 폴리페놀을 다시 환원시키므로 그 작용이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독보적인 특성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는 다른 과일이나 알코올 음료에서는 볼 수 없죠.

물론 폴리페놀이 만병통치약이거나, 고지혈증의 절대적인 특효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 더 도움을 주는 정도로 인식해야겠죠.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추가로 밝혀집니다. 현대 의학계에서는 포도의 영양 성분이 매우 뛰어나긴 하지만, 와인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을 낮추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양조용 포도송이. 적포도의 껍질과 씨앗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다. [출처 미상]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폴리페놀은 몸에도 좋지만 와인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와인은 흔히 색, 향, 맛으로 총 3번 마신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 모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와인 관련 국제 인증 과정인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에서도 와인의 시음·평가 방법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레드 와인 양조에서 폴리페놀이 가장 많이 추출되는 곳은 껍질입니다. 와인 양조자는 껍질 접촉(Skin Contact) 과정을 통해 원하는 색을 뽑아냅니다. 진한 색을 원하면 접촉 기간을 늘리고, 맑고 연한 색을 원한다면 기간을 짧게 잡는 식이죠. 이 과정에서 껍질의 폴리페놀이 와인으로 추출되고 색을 구분 짓게 됩니다.

폴리페놀은 향으로 맡을 수 있는 과실미에도 기여합니다. 많은 수의 레드 와인은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데요. 이를 통해 포도의 품종이 지닌 본연의 향(아로마)과 함께 오크나무의 향이 덧입혀지게 됩니다. 오크통 속에 폴리페놀이 와인으로 추출되는 시기이기도 하죠.

입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폴리페놀의 일종인 타닌은 향과 냄새는 존재하지 않아 색과 향으론 구분할 수 없지만, 입속에 넣었을 때 확연히 구분됩니다. 꺼끌한 느낌(질감)과 구조감(균형미) 등 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핵심 요소죠. 이렇게 보면 와인은 색과 향, 맛 모두에서 폴리페놀이 함께하는 음료라고 할만 합니다.

오늘은 와인 속 물질인 폴리페놀에 대한 잡학적인 담론을 이야기 해봤습니다. 폴리페놀의 이야기를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만, 레드 와인을 마실 때 입 속의 꺼끌한 질감이나 나무향이 느껴진다면 폴리페놀을 떠올리며 음미해보시길 바랍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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