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이냐,신본이냐..한·중·일·서역 가면극 비교[함영훈의 멋·맛·쉼]
삼청동 가는길 민속박물관 MASK展 인기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신라때 임금이 지금의 울산 남구 해안가에서 길을 잃고 힘겨워할 때, 서역상인 처용이 탈춤을 추면서 황망한 마음을 달래준다.
신라와 페르시아 교역의 상징 인물 처용이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료함을 달래주던 지점, 처용암이 있는 울산 남구에는 국민 휴식처 삼호대숲이 운치있게 조성돼 있다.
▶처용과 탈춤= 처용은 왕의 발탁으로 신라의 중급관리가 되고, 처용과 그의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요즘의 강남사거리, 즉 당시 황룡사 일대에서 신라 여성들과 밤늦게 노닌다. 처용 방식의 탈춤 장르는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며 우리나라 탈춤 문화를 더욱 확장시킨다.
탈은 인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반상과 격을 없애며, 사물과 생물을 의인화해 친구로 만들고, 신을 인간 가까이 불러내거나 인간이 신적인 파워를 갖고 있음을 시위 해주는 영능까지 지녔다.
힘겨운 세상살이 탈을 늘 쓰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현대인들은 복잡다단한 시대를 적응해 살아가면서 얼굴표정의 변화라는 가면을 쓴다. 고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탈이 필요한 듯 싶다. 탈의 모든 것이 국민 앞에 펼쳐진다. 탈을 보고 의미를 되새기며, 나를 본다.
경복궁에서 삼청동 가는 길목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는 2024년 3월 3일 까지 일정으로 기획전시실1에서 특별전 ‘MASK-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서역, 일본, 중국 등 많은 나라의 가면들을 전시하면서 그 곳에 깃든 의미를 짚어보는 전시이다.
고려시대 하회별신굿탈놀이, 1930년대 북청사자놀이 탈, 중국 나희(儺戲)의 가면이 등장하고, 일본 가구라(神楽) 가면은 국내 첫 선을 보인다.
1부 다른 이야기에서는 삼국 가면극의 각기 다른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향을 전시하였다.
말뚝이 대 양반, 취발이 대 노장, 할미 대 영감의 대결 구조로 극을 이끌어가다가 결국 화해하고 다 같이 춤을 추며 끝나는 한국의 탈놀이, 역사 속 영웅과 이웃들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연희하는 중국의 나희, 신화와 민간 신앙 속의 여러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일본의 가구라까지 삼국 가면극의 특징적인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구성하였다.
▶한-중-일-서역 미묘한 차이= 가면극에는 집단의 의식과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 가면극이 이루어지는 놀이판에서는 문화에 따라 각자 독특한 세계관이 펼쳐진다.
한국 가면극 놀이판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열린 세계이고, 중국 가면극의 놀이판은 영웅의 레드카펫이며, 일본 가면극의 놀이판은 신을 위한 신전이라고 민속박물관 전문가들을 설명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바람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가면극을 통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꿈꿨다. 농사가 잘되고, 동물과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질병을 일으키는 액을 없애 아프지 않길 바랐다.
2부 같은 마음에서는 멀고 먼 사막을 건너 삼국에 온 사자가 벽사의 왕이 된 이야기, 흉악하게 생겼지만 사실 액을 없애고 복을 주는 착한 가면들, 풍농․풍어․다산 등 풍요를 목적으로 연행되는 가면극들까지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소망이 담긴 가면과 가면극을 소개한다.
3부 다양한 얼굴에서는 한이 담긴 여인의 얼굴, 웃음기 가득한 익살꾼의 얼굴,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까지 위용을 떨쳤던 옛 한국인의 얼굴들을 소개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한자로 통하고, 서로 다른 가면극을 하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삼국의 얼굴과 표정을 통해 K-컬쳐를 넘어 Asia-컬쳐의 연결 가능성과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탈을 태우다= 가면극이 끝나면 가면을 태우는 탈소제가 열린다. 이때 연희자들은 연희에 사용했던 가면을 태우고, 관람객들은 다 같이 어울려 춤을 추며 가슴 속 한(恨)을 함께 태운다.
신명 나는 탈판 한마당으로 꾸민 전시장에서 팍팍한 현실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풀어내 끝나가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한 해 잘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한 공연도 마련되어 있다. 대사와 노래 없이 오직 몸짓과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무언의 가면극, ‘예천청단놀음’을 초청하여 전시를 개막하는 10월 24일, 오후 두 시에 박물관 앞마당에서 탈춤 한판을 펼친다. 마침 예천박물관과 이것을 주제로 공동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일상 회복과 행복을 주제로 한 특별전시를 연속 기획해왔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역병, 일상’, 2022년 ‘그 겨울의 행복’에 이은 이른바 ‘행복 3부작’의 완결판이다.
민속박물관은 지난해부터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가면과 가면극 연구 조사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시와 동시에 발간하는 ‘한국·일본·중국의 가면과 가면극’ 3권은 ‘북청사자놀음’ 등 한국 가면극 20종, ‘고토 카구라’ 등 일본 가면극 23종, ‘무안나희’ 등 중국 가면극 24종을 망라한 학술 총서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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