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 심슨은 더 이상 바트의 목을 조르지 않는다” [정양환의 데이트리퍼]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스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 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 |
왜 그럴까. 아들이 리모컨을 들 때마다 움찔한다. 아이가 ‘더 심슨(The Simpsons·한국명 심슨 가족)’을 본 게 벌써 여러 해. 심지어 직접 추천까지 해줬다. 근데 “그래, 봐”란 답이 곧장 튀어나오질 않는다. 분명 끝내주는 만화이자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인데. 심슨은 왜 언젠가부터 ‘계륵(鷄肋)’이 돼 목구멍에 걸리는 걸까.
지난달 미국에선 드디어 ‘더 심슨’의 시즌35가 시작됐다. 서른다섯 번째라니. 1989년 12월 17일이니 공식 데뷔일이니 30년 넘은 장기근속. “20세기 최고의 TV 시리즈”(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방영된 TV시트콤·애니메이션.”(영국 기네스) 숫자를 맞추려고 그랬는지, 지금까지 받은 에미상도 딱 35개. 그간 쌓은 업적만 놓고 보자면, 비슷한 수준이라 견줄만한 작품도 떠오르질 않는다.
발음이 ‘얼간이(simpleton)’가 떠오른단 이유로 낙점된 이름인 심슨은, 이미 만화란 장르로 국한할 수 없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지금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캐릭터 상품의 위력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좀 잦아들었다지만, 심슨이 다루면 다 얘깃거리다. 2021년 심슨이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하거나 지난해 블랙핑크의 노래만 삽입해도 화제를 모은다. 역사상 이런 파급력을 지닌 애니메이션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게다.
물론 그 세월 동안 심슨이라고 부침이 없었겠나. 대중성에서나 작품성에서나 최고의 평가를 받았던 90년대가 지난 뒤, 21세기 심슨은 수많은 비판을 견뎌왔다. 특히 ‘영원한 악동’ 바트를 두고 벌어진 미국 교육계의 공방은 꽤나 치열했다. 아이가 심슨을 보는 게 찜찜해진 이유도 비슷하다. 어린이에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건 심슨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양측 모두 공감할 터. 허나 그보다는, 우리에게 온 지 10년이 지나며 심슨은 왠지 ‘참신함’이 떨어졌다.
심슨이 노력하지 않았단 뜻은 아니다. 살짝 정체기를 겪었던 시즌 20대 이후, 최근 시즌들의 환골탈태는 왜 심슨이 심슨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그저 날카로운 해학만 살아난 게 아니다. 특히 해마다 선보이는 대표 에피소드인 핼러윈 특집 ‘공포의 나무집(Treehouse of Horror)’들을 보면, 최신 장르와 형식을 넘나드는 과감한 실험성은 범접하기 힘든 탁월함까지 선보인다.
여전히 상품성 높은 심슨에게 하차를 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 그의 유머가 현실보다 재밌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예견이 대표적 사례다. 심슨이 던진 농담들이 실제로 더 리얼하게 벌어지며, 스프링필드는 “미국의 흔한 중산층 시골마을”(미 뉴욕타임스)이 아니라 ‘박물관에 박제된 멸종생물’이 돼버렸다. 뭣보다 호머 심슨은 더 이상 평범한 중산층 백인 가장을 대표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며 단란한 2층집을 유지할 여력이 이젠 우리에겐 없다. 세상은 더 비루하고 더 웃겨져 버렸다.
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시즌33부터 심슨에서 사라진 게 있다. 이 만화의 대표적인 클리셰인 ‘호머가 바트 목을 조르는’ 장면이다. 줄기차게 아동학대 지적이 일었던 이 장면은, 결국 심슨에도 등장한 대사처럼 “시대가 바뀌었기에” 이젠 나오질 않는다. 이거 하나 빠졌다고 심슨의 위용이 꺾일 리야 만무하지만, 그만큼 세상은 변하고 또 변했다. 30년 넘게 재즈 한 길만 파던 리사가 두 번째 좋아하는 음악장르로 ‘K-팝’을 꼽을 만큼. 그 시대의 흐름에 굳이 심슨까지 발맞춰 갈 필요가 있겠나. 제왕은 제왕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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